이재명 정부 출범 뒤 맞이한 반가운 뉴스 하나를 떠올린다. 정부가 내년부터 5년 간 6조5000억 원을 투입해 요양병원 간병비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취임 첫 해부터 이재명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던 간병비 급여화를 본격 추진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의료중심 요양병원 500곳을 선정해 약 8만여 명의 간병비 부담을 크게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100%였던 간병 개인 부담이 30% 안팎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간병비 급여화는 시대적 요구다. 아픈 가족을 구성원이 전적으로 떠맡는 한국의 현실은 누구 한 명이라도 아픈 이가 발생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두려움을 안긴다.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병을 앓는 이가 있을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 병원비는 물론, 돌봄과 간병부담까지 껴안아야 하는 상황이 환자 본인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되었을 테다.
김유나 작가의 소설 <내일의 엔딩>은 간병이 돌보는 이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자경은 30대 직장인이다. 영화를 전공했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그녀는 6년 전 쓰러진 아버지의 돌봄을 외동딸로서 맡아 해내고 있다.

▲김유나 소설 <내일의 엔딩> 책 표지 이미지 ⓒ 창비
간병, 갈수록 납작해지는 삶을 감당하는 일
한 사람의 벌이로 아버지를 감당하는 일은 버겁기 짝이 없다. 입원한 요양병원비에 더해 자경이 일하는 동안 아버지 곁을 지키는 간병인까지 월급을 전부 털어넣고도 부족할 정도다. 급할 땐 사채에도 손을 댔고, 카드사 두 곳을 돌려막기 하며 빚은 갈수록 불어났다. 처음 아버지가 입원하고 간호사가 사오라는 물건들을 사서 건넨 뒤 "이제 뭘 하면 될까요?"하고 물었을 때 간호사는 이렇게 답했었다. "이제 가시면 되세요."
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병원에서도 간병인이 일을 제대로 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일상, 자경의 삶은 갈수록 납작해져 간다.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가 그대로 변을 보았을 때, 자경은 뒤처리를 하며 말했었다. "창피할 것 없어. 내가 살아보니까, 먹고 싸는 게 인생이야 아빠" 하고. 또 언젠가, 아버지가 쓰러지고 3년이 지났을 적엔 다이어리에 이렇게도 적었다. '산다는 건 희망도 절망도 아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은 세상의 규칙일 뿐이고, 신에게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자경의 삶은 먹고 싸는 일상을 지속하는 것, 또 희망도 품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은 채로 어떤 기대도 없이 오늘을 버텨내는 일이다. 그는 얼마나 납작한가.
소설은 아버지를 간병하며 일상을 버텨가는 자경의 삶을 비춘다. 선택지는 따로 없는 듯도 보인다. 아버지가 죽지 않는다면 빠져나갈 수 없는 삶, 그러나 자경은 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온 세상에 아버지와 자경뿐이 아닌가. 그가 없으면 자경은 온전히 혼자가 된다. 그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자경이다. 쓰러져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아빠가 있어야 내가 버텨" 하고 출근하던 그녀의 말이 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목 '내일의 엔딩'이 적고 있듯, 마침내 끝은 오고야 만다. 오늘은 아니라도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나는 날이 오리란 걸 자경 또한 알고는 있다. 유능하다고는 할 수 없는 교사였고, 시내에 돈가스집을 열었다가 망한 사장이었던 아버지, 그러나 나름대로 그에게도 삶이 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있었다. 삶에 치여 딸 자경과 그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 흔한 아버지와 딸의 사이가 그러하듯, 자경은 어느 순간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더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라는 인간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헤아리려 들지 않았으니까.
또 한 번의 기회를 선사하는
<내일의 엔딩>은 너그럽게도 자경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선사한다. 아버지가 죽고 없는 아버지의 옛 집을 찾아 정리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저의 지난 시절과 마주한다.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그녀가 대학시절 만든 작품이 아버지의 공간 한 복판에 있는 것이다. "자경이가 감독한 영화 <소설>을 보았다"고 쓰인 아버지의 일기로부터, 자경은 아버지의 DVD장 가운데 꽂힌 제 영화 CD케이스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를 재생한다. 삶에 치이기 전, 꿈을 좇아 나아가던 저의 작품이다.
소설은 그로부터 2부를 연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자경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잊고 있던 저의 과거와 대면한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를 만나게 해준 것도 아버지였다. 집 앞 비디오 가게로 데려가선 보고픈 영화를 보라고 했던 것이다. "영화엔 러닝타임이라는 게 있어. 네 속도만 고집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다른 시간도 좀 따라가보고 그래라"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말은 이제와 돌아보면 자경이가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세계가 나름대로 넓고 깊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경이 이날 만난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역작 <쉰들러 리스트>였고, 이 영화는 그대로 자경의 청춘 시절을 얼마쯤 결정한다.
아버지의 DVD장에 꽂힌 자경의 첫 작품, <소설>이 만들어지던 과정이 이후 펼쳐진다.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에도 불가능을 이루자며 마음 맞는 선배며 스태프들과 무주를 찾은 자경이다. 자경의 할머니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시나리오에 따라 장면들을 찍으려 했으나,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눈이 온 것이다. 계획을 망가뜨리는 폭설 앞에서 자경과 촬영팀은 어찌 됐든 해낼 수 있는 최선을 감당하려 든다. 많은 컷들을 버려야 했고, 앞으로 더 많은 컷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그 사이 어떤 컷들은 지켜냈고, 또 지켜내야만 하는 컷들이 남아 있었다.
자경이 '완전히 망해버린 최종본'이라 표현한 영화는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영화제에 내지 못하고 CD로만 제작해 고생한 배우며 스태프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그중 한 장이 아버지의 DVD장에 꽂혀 자경과 만났다.
상실 뒤에 닿는 이해에 대하여
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 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다'고, '이러한 통찰은 어떠한 교육으로도 가르칠 수 없는 인생의 선물'이라고 말이다. 자경은 제 영화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그런 빛은 제 작품에 담겨 있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시 본 영화에서 자경은 그 빛을 발견한다. 끝내 담아내지 못했던, 그러나 그를 응시하던 얼굴들에서 말이다.
<내일의 엔딩>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그를 이해하는 딸의 이야기다. 산 아버지를 지탱하며 6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던 자경이 아버지를 보내고서야 그와 저 자신을 새로이 돌아보는 순간을 담았다. 소설은 쉽고 편한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만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경은 아버지의 집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신세이고, 아버지가 떠난 지금 이 세상에 혈육 하나 없이 남겨진 신세다.
그러나 가만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 듯도 하다. 이제와 자경은 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했는지를 확인했다. 지난 6년, 어쩌면 그 이전 온 생애 동안에도 하지 못했던 다가섬을 자경은 해내고야 만 것이다. 저의 실패한 줄로만 알았던 지난 작품이 어떤 이 한 명, 심지어 더없이 중요한 한 사람에게만큼은 다가가 제 의미를 발했단 사실 또한 확인했다. 자경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달라졌다.
<내일의 엔딩>은 상실을 그린다. 영화를 실패하고 꿈을 포기했으며 아버지를 감당하다 빚을 지고 직업도 잃어버린 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의 중간에 아버지는 끝내 죽음을 맞고, 그와 함께 살았던 옛 집을 팔아 빚을 얼마쯤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뭐 하나 밝고 희망차지 못하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나면 자경은 빛을 얻은 듯도 하다. 아버지가 딸의 영화에서 발견했다던 그 희미한 빛,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을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일상의 버거움에도 끝끝내 꺼지거나 흔들릴 일 없는 그 빛을 자경이 마침내 얻어냄을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의 엔딩은 오늘이 아니다. 오늘을 일으킨 뒤에야 맞을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