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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4 17:49최종 업데이트 25.11.24 17:49

"당신의 세월호는 끝났습니까"

세월호 활동가 황용운씨, 100회 피켓 앞에서 다시 묻다

100회 피켓팅 날, 기자회견을 진행한 황용운씨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대통령기록물 공개를 촉구하며 황용운씨가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100회 피켓팅 날, 기자회견을 진행한 황용운씨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대통령기록물 공개를 촉구하며 황용운씨가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다. ⓒ 이향림

지난 22일 토요일 오후, 황용운씨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여름부터 매일 시작해온 1인 시위 100회차 피켓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제주로 이주한 시민기록가이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가다. 지난 여름 그를 보았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무더운 햇볕 아래 묵묵히 서 있던 그는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세 번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의 실질적 진전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 말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진상규명은 제자리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무시받아야 합니까." 12년 동안 국가는 침몰 원인은 '미상', 구조 방기는 '사실이나 이유는 모름'이라는 답만 되풀이해 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는 왜 아직도 길바닥에 있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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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는 세월호 시민행동, 그리고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도 함께 섰다.

"대통령은 '다시는 유가족이 길바닥에서 울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용산 집무실 건너편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무안공항 유가족이 100일 넘게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입니까."

황씨는 세월호와 제주항공 참사에서 모두 '증거 은폐 → 시간 끌기 → 관점 흐리기'라는 동일한 국가의 패턴이 있었다고 말했다. 황씨가 대통령실에 요구한 세 가지는 침몰 원인과 구조 방기 이유 규명, 책임자 처벌, 박근혜 정부 대통령기록물 및 국방부·국정원·기무사 자료 등 대통령기록물 포함 모든 정보 공개이다.

세월호 집회에 연대해 참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나명례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 노상훈(35세)과 예비 며느리를 잃었다.
세월호 집회에 연대해 참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나명례씨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 노상훈(35세)과 예비 며느리를 잃었다. ⓒ 이향림

황씨가 세월호에 발 딛게 된 것은 2014년 봄이었다. 출근길에 접한 '전원 구조' 속보, 뒤이어 뒤집힌 참혹한 현실, 그리고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질문. 참사 직후 그는 제주로 내려가 2015년 4월 16일, 세월호가 향하던 그 땅에 '기억공간 re:born'을 만들었다.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이자,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10년 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에 남은 그 선미 잔상이 떠나지 않았어요. '내가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그의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광화문, 목소리를 낸 첫 날

황씨가 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결정적인 장면은 2014년 5월 18일 광화문이었다.

페이스북 라이브로 "모여 달라"는 외침이 올라오던 날, 그는 집 대신 광화문을 선택했다. 현장에는 경찰 삼중벽에 갇혀 스크럼을 짜고 누워 있는 청년들, 그리고 그 모습을 카페 2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보는 사람들, 버스 창문 너머로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들이 있었다.

"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가는가… 그 냉담한 눈빛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날 도로교통법·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돼 성동경찰서에서 이틀을 보냈다. 그 경험은 이후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카메라를 들다 – 뉴탐사와 제주, 그리고 기록의 확장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그가 제주로 내려간 후 사회 참여 활동은 더욱 넓어졌다. 제2공항 갈등, 강정마을, 비자림로 등 지속되는 제주 현안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촬영·기록 역할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탐사보도 매체 '뉴탐사'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국토부·제2공항·지역 권력 구조를 취재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온 기자단과 연결되며 그는 이장, 대책위원, 천막촌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뛰었다.

"만약 제주에 살지 않았다면 감각이 무뎌졌을 겁니다. 강정마을과 제2공항 싸움의 현장이 제 시야를 더 넓혀줬어요."

세월호는 한 사건이 아니라 국가 구조의 문제라는 인식은 이때 더욱 선명해졌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로, 다시 길 위에서 – <침몰 10년, 제로썸>

그의 기록활동은 결국 다큐멘터리 <침몰 10년, 제로썸>과 연결됐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온 시민·감독·활동가 네트워크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는 배급 PD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작품은 상업 배급사에서 잇따라 거절당했지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시민들의 요청으로 시민배급위원회 방식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전국 공동체 상영이 이어졌고, 올해 정식 극장 개봉까지 닿았다. 또한 그는 '휘슬러 영화제'의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에 알려져야 할 영화들이 외면당한 채 사라지는 걸 보고 시작한 일"이라 했다.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기자회견 말미,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의 말을 인용했다. "중립은 가해자를 돕고, 침묵은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황씨는 "304명의 별이 된 사람들, 생존자들, 그리고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해 다시 별이 된 이들 편에 서기 위해 앞으로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참사 12년을 앞둔 오늘, 황용운씨의 100번째 외침은 다시 묻는다.

"당신의 세월호는 끝났습니까?"

#황용운#세월호#무안공항참사#침몰10년제로썸#뉴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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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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