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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에 매달리느라 미뤄뒀던 정원손질을 다시 시작했다. 목적지인 도스 시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할배의 고물트럭 차창 밖으로 전형적인 일본 농촌 풍경이 흐른다. 드문드문 기와 지붕을 덮은 농가들이 서 있고, 손질이 잘된 콩밭 이랑마다 가을이 노랗게 내려앉고 있다.
첫번째 작업대상은 시라이시(白石)씨네다. 벌써 3년 째 손질이니 눈에 익은 정원이다. 바깥 쪽으로 생 울타리가 3면을 둘렀고 안쪽으로는 금목서, 배롱나무, 서양 산딸나무 등 다양한 정원수가 군데군데 서 있다. 정원주는 경관을 감상하겠지만 정원사는 작업 규모로 본다. 짱짱한 하루 일거리다.
생울타리는 모양을 좀 낸 곳이다. 위쪽엔 산다화를 아래쪽으로는 철쭉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둘 다 꽃이 피는 화목이다. 꽃나무는 제 때 손질하지 않으면 다음 해 꽃눈이 맺히지 않는다. 낙화 후 한 달, 그 짧은 기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정원사의 일이다. 이곳에서 사잔카라 부르는 산다화는 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핀다. 철쭉은 개화기가 봄철이다. 10월 손질은 양쪽 다 어정쩡한 시기다.
개화를 염두에 둔다면 봄과 가을, 두 차례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손질이 늘어나므로 비용이 더 든다. 그래서 그런지 정원주도 손질 시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눈치다. 물론 꽃을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생울타리 용도로 심은 것이므로 굳이 시기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정원의 특급 지휘자
산다화는 상록이어서 차폐에 유리하다. 새순이 잘 돋아나는 나무라 손질하기도 수월하다. 돌아다녀보면 이렇게 두 종류로 구색을 맞춘 곳도 많다. 산다화 대신 마키나무를 넣어 마키·철쭉으로 구성한 곳도 있다. 마키도 상록에 맹아력이 좋아 생 울타리 소재로 빼놓을 수 없는 나무다.
생울타리로 그치지 않는다. 마키는 전정에 강해 인위적 조형미를 살릴수 있는 만능 수종이다. 구름처럼 부드럽고 둥근 형태로 다듬어 놓으면, 정원 풍경을 한결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정원 전체에 통일된 흐름과 리듬을 불어넣는 특급 지휘자 같은 존재다. 일본 전통 정원수로서 마키의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사다리를 세우고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나는 현관 쪽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다. 첫 손질은 눈에 띄는 중요한 곳부터 마무리하고 싶어서다. 청소를 고려한다면 나무 위에서 아래 순서로 작업하는 게 요령이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 경우엔 아래를 먼저 끝내고 위로 올라가는 편이다. 쉬운 일부터 먼저 하는 것이다. 정원사의 취향에 따라 작업 스타일이 정해진다.
들쭉날쭉 솟은 가지들을 밀고 나간다. 기계음이 경쾌하다. 불규칙했던 선들이 정리되며 깔끔한 수평선을 그려낼 때, 시험으로 뒤엉켰던 생각들도 함께 정돈되는 것 같았다. 전에는 가끔 일손을 놓고 멀리서 수평을 확인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것 필요없다. 한번 쫙 밀고 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신통하게 자로 잰듯 좌우가 맞아 떨어진다. 물이 오른 것이다.
쉬는 참에 정원주가 차를 들고 나왔다. 앞 쪽에 있는 동백을 좀 낮춰줬으면 좋겠단다. 세 그루인데 각각 변화를 주기로 했다. 입구 들어서는 곳 첫 머리를 많이 낮춰 놓고, 두 번째는 그대로 살렸다. 세 번째 것은 다소 낮춰서 보기 좋은 천지인(天地人) 구조로 배열했다. 일본의 전통적 구성미다.
내친김에 주차장 옆 낮은 침엽수도 불규칙 조형으로 다듬어 줬다. 울타리를 다듬는 단순한 일보다 이런 창조적인 일이 훨씬 재미있다. 정원주가 차에서 내릴 때마다 부드러운 곡선이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정원사는 나무 손질을 통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복 받은 직업이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다. 시간이 널널하면 주변 식당을 찾지만, 이날처럼 일정이 빡빡하거나 주변 식당이 여의치 않으면 할배가 편의점에 다녀온다. 오늘 메뉴는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볶은 중화 덮밥이다. 전자렌지에 데워오기 때문에 부드러운 식감에 불맛까지 갖춰서 식욕을 자극한다. 시장한 참에 단숨에 한 팩을 비웠다. 점심을 마치면 나무에 기대어 두 다리를 펴고 잠시 쉰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B씨 한테서 문자가 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빨리 메신저 앱 좀 확인해 보란다. 나는 일본에서 데이터를 차단하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없으면 앱을 볼 수가 없다.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해졌다.
틀림 없이 내 이름이었다

▲위쪽엔 산다화를 아래쪽엔 철쭉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둘 다 꽃이 피는 화목이다 ⓒ 유신준
눈치 빠른 할배가 얼른 가보란다. 트럭에 실려있는 작업 부산물을 내일 아침에 내리자고 배려해 준다. 자전거로 요시다 선생네로 달렸다. 확인해보니 내 실기 작품이 B씨의 작품과 함께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화면을 다시 봤다. 또 봤다. 틀림없는 내 이름이 거기 있었다.
울컥했다. 현직 행잉바스켓 디자이너인 B씨 작품이 은상인것은 당연한데, 내 것이 나란히 2위에 올라있는 것이다. 정성을 쏟았던 세로 왕자대신 부랴부랴 간택된 가로 공주였다. 실기 통과만 해도 감사할 일인데 입상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공주는 몇 가지 볼만한 구석이 있긴 했다. 연초록 배경에 빨간 코리우스를 대각선으로 배치한 구성은 내가 봐도 균형감이 확연했다. 큰 잎 코리우스와 작은 흰꽃들의 대조도 괜찮아 보였다. 그걸 시험관이 발견했다면 단점도 함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알테르난테라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라 아랫부분이 비어 있었다. 좀 더 원만하게 자라줬더라면 완전한 돔형태를 제대로 이루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단점만 크게 보여서 내심 불안했다. 예쁜 내 새끼, 기특하기도 하지.
실기 심사는 행잉바스켓 콘테스트를 겸하는 행사다. 오사카 꽃박람회 다음 해인 1991년에 처음 개최되어 올해로 57회를 맞는다. 일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행잉바스켓 콘테스트 행사로 유명하다. 행사는 마스터와 일반 부문으로 나눠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고 경쟁한다. 실기로 마스터를 배출하는 시험장이자, 배출된 선배 마스터들이 실력을 겨루는 무대 역할을 겸하는 자리다.
시험이 끝나고 수호 천사 아카시 부인이 시험이 어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럭저럭 본 것 같다고 설렁설렁 대답했었다. 아마 파죽지세의 OX 덕분에 그런 대답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려웠다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겸양모드로 말한 것이고, 나는 솔직모드라서 그런 거다.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고 했다. 그녀는 웃었다. 물론 시험이 어려웠다고 한자락 깔아두는게 슬기로운 처세라는 건 나도 안다. 완충지대를 둠으로써 차후 발생될 수 있는 불행한 결과에 대비하려는 생존의 지혜일 수도 있다. B씨가 어려웠다고 하는 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험 결과는 개별 통보되니 그걸 알 도리도 없다. 어느 쪽이건 시험을 잘 못본 것 같다고 걱정하는 그녀에게, 수상 소식이 좋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