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지난 11월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 연합뉴스

택배노조가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제안한 '초심야(00시~05시)노동 제한(완전 폐지도 아닌)'에 대한 자본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소비자의 불편을 전면에 내세우며 스스로는 꼭꼭 숨어 있다. 심지어 의견이 다른 택배 노동자들도 옆에 끼고 있는 모양새다. 노노간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택배노조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수많은 필자들이 앞다투어 이 문제에 개입하고 있고 나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과로사에 관심을 두고 있던 한 사람으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택배노조가 야간노동을 제한하자고 제안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미 너무 많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내일 또 어느 택배노동자가 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됐다. 그 이유는 과로노동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쉴 틈 없이 움직여야 되는 노동, 중량물 취급 노동이 택배배달이다. 장시간 노동은 사회적 합의로 주당 60시간을 넘지 않는 것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나머지는 문제는 여전히 살아 있고 강화되어 가는 추세다. 이번에는 야간 노동이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야간노동 방식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3조2교대제'(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휴일)에서 '4조2교대제'(주간→야간→비번→휴일, 3조2교대제에서 연속 야간을 제거한 형태)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또한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의 경우 거의 24시간 체제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로의 개편을 이루는 성과를 이미 10년 전 확보했다.

그런데 쿠팡의 택배노동자들은 주당 6일 야간만 12시간씩 일하는 새벽배송을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최근 지속되는 쿠팡 배달노동자들의 과로사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야간배송을 하지 않는 CJ나 다른 택배사 노동자들의 사망이 줄어드는 반면 쿠팡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없는 야간노동 규제

AD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는 야간노동과 관련해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제56조 3항)하고 임금 대신 휴가를 줄 수 있다(제57조)는 내용만 명시되어 있다. 결국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반면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야간교대근무의 스케줄을 정할 때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밝히고 있다. ▲ 규칙적인 순환, 짧은 주기를 유지하라(예를 들어 아침→저녁→밤→휴가) ▲ 연속해서 근무하는 밤근무를 최대한 줄여라 ▲ 주말에 쉴 수 있어야 하고 안 되는 경우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의 전일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 근무사이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 노동자가 원할 때 근무시간을 변경하거나 주기를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야간노동시 8시간 이상으로 업무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고 벨기에와 스페인의 경우 야간노동을 하게 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핀란드와 영국은 법에 명시된 매우 한정된 업무에 대해서만 야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의 경우 2개조로 나뉘는 업무는 23시에서 새벽 1시까지만 일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영국은 야간에 8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간근무 후에는 주당 평균 90시간 이상 쉬도록 하는 규제 조항을 넣었다.

현재 쿠팡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근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 규제가 존재하고 있지만 역시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쿠팡 택배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끔찍한 구조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다시 '사장님'으로 등극했다. 사장님이니까 노동자가 아니니까 죽도록 일해도 된다는 것이다.

사실 택배노조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게 된 배경도 이 때문이다. 종속성이 너무 강하지만 '특고'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도,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대상이 아니었기에 노조는 죽음의 행진을 끊기 위해 투쟁했고 주당 60시간을 확보하였다. 물론 그 전에는 70시간 이상 일하다가 많은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다.

소비자가 택배노동자 죽음을 원할까?

 지난 11월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지난 11월 5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 연합뉴스

기업은 소비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소비자들이 새벽배송을 원하는데 노조가 정신줄을 놨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벽배송 수요는 급증했고 기업의 마켓팅이 적중했다. 장 보러 가지 않고도 새벽에 반조리 된 신선한 식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야간노동의 위험에 빠져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들의 생각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국민의견조사 결과(2020.11)'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 처우가 개선된다면 배송 지연을 감내할 수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8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2024년 10월 전국택배노조가 의뢰하여 우리리서치가 수행한 '공휴일․새벽 배송 및 택배노동자 과로에 대한 국민인식 설문조사(500명 대상)' 결과에서도 휴일배송이나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이지만 그 서비스가 중단된다 해도 불편하지 않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60% 이상이었다. 심지어 새벽배송이 택배노동자 과로를 유발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수치가 더 올라간다(65.8%). 그렇다, 충분히 변할 수 있다.

현재 집 앞에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지역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상 편의점은 집 안 냉장고와 다를 바 없다. 조금만 걸어가면 신선한 식재료와 반조리 식품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새벽배송을 받지 않았지만 큰 불편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해 새벽배송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것이 틈새시장을 노린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었던 것이다. 낮 시간 중에 배송을 의뢰하고 저녁에 받는 방법도 있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선보이는 마케팅에 아무런 주저 없이 클릭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기업의 이런 극악무도한 노무관리 방식을 알았더라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 친구들도 그렇다.

쿠팡은 숨지 말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야간노동이 주간노동보다 힘들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명제이다. 따라서 부득이 24시간 근무가 필요한 업무(병원·치안·소방, 석유화학 또는 철강과 같은 흐름공정)를 제외하고는 야간노동을 없애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순차적으로 줄여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도 노동자 보호는 시급히 필요하다. 야간노동 시간은 하루 8시간 이내로 줄여야 한다. 야간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휴식권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월 야간노동 일 수는 14일 이내로 제한해야 하며 연속 야간근무는 2일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 야간근무를 2일 이상 연속한 경우 4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러기 위해서는 배송료 현실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득을 크게 깎이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노동자는 고임금 노동자 뿐인데 택배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 군이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소비자들도 굳이 야간노동을 원한다면 이에 합당한 비용지불을 할 각오도 필요하다.

이젠 쿠팡이 대답해야 한다.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야간노동에 내몰고 있고 이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있으며 국내 야간 배달 노동시장을 재패했다. 정작 이득은 기업이 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과로사를 딛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도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입니다.


#새벽배송#쿠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인임 내방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