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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7일 오후 5시 53분]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지난 5일 채널A의 '[단독] 이 대통령, 중국 독립운동유적지·유해발굴 전수조사 지시'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중국 내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와 독립유공자 유해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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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가장 주목되는 사업이 바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이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이듬해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생전에 안 의사는 "내가 죽은 뒤 나의 유해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일제가 유족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아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도록 안 의사의 유해는 행방이 묘연하다.

2008년 남북한 합의와 중국 정부의 협조로 뤼순감옥 일대에서 유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지역인 '뤼순감옥구지묘지'가 새롭게 거론되면서, 민간단체들이 해당 지역에 대한 2차 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내 독립운동가 유해 발굴이 추진된다면,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자 국민 모두의 염원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이 제1순위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여름 안중근 의사의 유해매장추정지인 '뤼순감옥구지묘지'를 답사하는 기자(오른쪽)의 모습
2011년 여름 안중근 의사의 유해매장추정지인 '뤼순감옥구지묘지'를 답사하는 기자(오른쪽)의 모습 ⓒ 김경준

임시정부 가족들이 잠든 '화상산' 발굴 조사도 시급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못지않게 시급히 조사해야 할 지역이 있다. 바로 중국 충칭(重慶) 화상산(和尚山) 일대의 독립운동가 묘역이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이 잠든 공동묘지다.

대표적으로 곽낙원(백범 김구 주석의 모친), 김인(김구 주석의 장남), 송병조(임시의정원 의장), 차리석(임시정부 비서장), 이달(조선의용대 선전조장), 박차정(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이 이곳에 묻혔다. 이밖에도 약 20명의 조선의용대 대원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해방 후 고국으로 유해가 봉환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2020년 1월, 필자는 화상산 일대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그곳은 한때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역시 굴삭기가 오가는 공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로부터 벌써 5년이 흘렀다. 이제 화상산 유해 발굴의 가능성은 안중근 의사 유해보다도 낮을지 모른다. 그러나 혹시 모를 1%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조사가 필요하다.

 공사장으로 변한 화상산 한인묘지 터 (2020년 1월 당시의 모습)
공사장으로 변한 화상산 한인묘지 터 (2020년 1월 당시의 모습) ⓒ 김경준

홍범도 장군과 함께 싸운 이들의 유해도 봉환해야

발굴 조사가 필요한 지역이 또 있다. 바로 중국 지린(吉林)의 '봉오동 전투' 현장이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대한북로독군부와 신민단·의군부 등 우리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독립전쟁 제1회전'이다. 독립군은 봉오동 상촌(上村)에 진입한 일본군을 삼면 포위해 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문헌에 따르면 독립군 역시 피해를 입었다. 봉오동 전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회고록 <홍범도 일지>에는 신민단 군사 수십 명이 동쪽 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끝에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민단을 이끌었던 박승길의 구술을 채록한 <간도독립군약사>에는 전사한 이들이 신민단 5명(문회길·양기순·이만재·김일환·최길룡) 및 홍범도 부대 2명(황양진 외 1명)으로 기록돼 있다. 정확한 숫자는 미상이지만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참전자 김재규에 따르면 전투가 끝난 뒤, 신민단 군사들의 시신을 그들이 싸우던 자리에 매장했다. 박승길은 신민단 군사들이 '봉오동 동쪽 산 입구 쳇코봉'에 배치돼 싸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증언들을 종합하면 신민단 전사자들의 매장 추정 지역을 특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학계에서도 구글어스 등을 활용해 봉오동 전투 지역을 비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늦었지만 이제야말로 봉오동 전투 현장에 대한 발굴을 시도할 때가 아닐까?

 이인섭의 <회상기> 中 봉오동 전투 당시 전사한 신민단 군사들의 장례에 대한 김재규의 회고
이인섭의 <회상기> 中 봉오동 전투 당시 전사한 신민단 군사들의 장례에 대한 김재규의 회고 ⓒ 독립기념관

봉오동 전투 현장 발굴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가 또 있다. 그곳에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품들 때문이다. 현재 독립군 관련 유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필자는 과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아래 국유단)에서 복무하며 국내 여러 전투 지역을 직접 발굴했다. 현장에서 유해보다 더 많이 출토된 것이 바로 탄피, 소총, 대검, 전투화 밑창, 수첩, 손거울, 약병, 도장, 깡통 등 각종 유품이었다.

이런 유품들은 유해의 신원 파악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쟁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유물이기도 하다. 봉오동 전투 현장에도 다양한 유품들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발굴해 독립기념관 등에서 전시한다면, 독립군의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를 국민에게 보다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국방부, 독립군 유해 발굴로 뿌리와 정체성 되찾아야

중국 내 독립운동가 유해 발굴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면, 국유단의 투입도 고려해봤으면 한다. 국유단은 6·25 전사자 유해 발굴에 특화된 기관이지만, 세월호 희생자 수색 등 사회적 사안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과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로 논란을 빚었던 국방부가 독립군 유해 발굴에 적극 나서는 것이야말로, 우리 군의 뿌리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21년 8월 15일,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하늘을 날아 고국으로 귀환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홍범도 장군과 함께 봉오동 전투를 치렀던 독립군 용사들도 모셔올 때가 됐다. 이번 기회에 성공적인 선례를 만들어, 청산리 전투 현장 등 독립전쟁 격전지에서의 유해 발굴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면 어떨까.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재명#봉오동전투#독립기념관#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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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kia0917) 내방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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