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유산유도제(임신중지약) 도입, 트럼프 행정부의 약가 인하 행정명령에 따른 글로벌 제약회사와 한국의 약가 정책, 그리고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등 약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이 논의들을 다 이해하고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의약품의 접근성과 공공성이 확대되고,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이 복원돼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민주적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의 이동근 사무국장을 만나 어렵지만 알아야 되는 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10월 16일 건약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백혈병 치료제 접근권 투쟁, 저희가 했습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실에서 이동근 사무국장을 만났다. ⓒ 참여연대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동근 사무국장이라고 합니다. 건약 회원으로는 2016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 상근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활동을 하시는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어서 혼자 활동한다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건약에서 상근 활동은 혼자 하고 있어요."
- 어떻게 상근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졸업 후 약사일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어요. 건강보험 정책 관련한 논문도 썼고요. 그전에는 건약 회원은 아니었는데 석사 과정을 하면서 갈증이 있어서 건약에 가입을 했죠. 그러다가 뭔가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근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 상근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 건약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고,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에 활동했던 약사 그룹들이 있었어요. 그 그룹들이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다가 전국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합의에 이르게 되면서 1990년 건약이 출범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특정한 목적이나 구체적인 결의를 한 게 아니었다고 알고 있어요. 1980년대 후반 산업재해 피해자이신 문송면씨 사건,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 등을 보건의료 과제로 인식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의약분업이나 전국민건강보험 도입 등 여러 계기별 보건의료 이슈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건약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의약품 접근권에 관련된 이슈나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 등 조금 더 약사 직능에 특화된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대표적으로 백혈병 치료제였던 글리백이 과거에 엄청 비싸서 환자들이 사용을 못하는 문제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한 접근권 투쟁을 했습니다. HIV 치료제인 푸제온이나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타미플루같이 꼭 필요한 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안전하지 않거나 불필요하게 남용되는 약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해왔는데요. 대표적으로는 프레팔시드라고 하는 위장약이 있는데, 이 약은 심장 독성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됐거든요. 그래서 그런 약을 퇴출시킨다거나, 감기약이나 다이어트약이나 위험하다고 보고가 됐을 때 그것을 식약처가 빨리 수용하게끔 하는 운동도 했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때 백신 접근권 관련해서는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해질 수 없는 감염병 문제였고, 국가 단위에서 대응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불평등을 함께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중저소득 국가도 백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도 했습니다.
건약에서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은 보통 '미프진'으로 알려진 유산유도제 혹은 임신 중지약과 관련한 활동이에요. 미프진은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에만 도입되지 않은 약이에요. 그게 약의 안전성이라든지 효과가 불분명해서 사용을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도입이 안 되고 있는데요. 2019년 낙태죄 폐지 이후에 계속 접근권 운동을 하고 있지만 6년 넘게 아직도 허가가 되지 않고 있어요. 그 부분이 최근 국정 과제에 포함이 되긴 했는데, 이재명 정부가 과연 이번에는 할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제약바이오산업? 국내 제약산업 과대포장 돼 있어"

▲'성소수자/HIV 감염인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길리어드 규탄 기자회견' 개최2023년 6월 30, 길리어드 코리아 본사 앞에서 '성소수자/ HIV 감염인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길리어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이동근(본인제공)
- 건약은 일반 시민단체와 달리 약사들의 모임인데, 회원은 어떻게 모으고 계세요?
"저희 단체는 약사를 회원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대중을 상대로 단체 활동을 홍보하고 회원을 유치하기 보다 약대생이나 약사들을 상대로 회원을 모집해야 해요. 숨은 보석을 찾는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최근에 약대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기후나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약대생들한테 동아리처럼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거기서 같이 활동하게 한다든지, 의약품 접근권에 대해 공부하자고 모인 학생들과 같이 스터디하면서 건약 활동에 대해 이해를 시킨다든지 하고 있어요.
또, 약사들을 대상으로는 의약품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서 이에 관심있는 약사들을 상대로 조직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건약에서는 의약품 정책팀, 새약사팀 등 팀별 주제에 맞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어요. 게다가 중앙사업 이외에 광주전남지부, 대구경북지부, 서울경기지부, 울산지부도 활동하고 있고요. 지부에는 상근 활동가가 따로 없지만 지부 회원들끼리 사업도 하고, 그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도 내고 있습니다."
- 건약이 만들어진 지 37년이 됐는데 제일 큰 성과랄까, 가장 두드러진 활동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과거에 건약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약 부작용 때문에 퇴출된 약이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제를 시정하라는 요구를 많이 했어요. 식약처는 늘 늑장대응을 해서 건약에서 많은 비판을 했거든요. 예를 들어 감기약 중에 콘택600이라는 약을 들어보신 적 있을 거예요. 콘택 600이 복합제인데요. 여러 성분 중 하나가 심혈관계 문제로 외국에서 퇴출당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이후에도 수년간 이걸 감기약으로 먹고 있었어요. 건약에서 빨리 판매 중단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을 했고 결국 판매가 중단됐어요. 그리고 제약사가 문제되는 성분을 빼고 출시한 제품이 현재 콘택 골드라는 제품이에요.
이러한 문제제기를 오랜 기간 지속해 오면서 식약처도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해외 규제기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수집하고 이를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요. 식약처가 관련해 레터를 만드는 관행도 생겼는데요. 이건 건약에서 오랜 기간 문제를 제기하면서 바뀐 변화라고 느껴요.
또, 생각났어요. 지금도 치매 예방약이라고 처방되는 콜린알포세레이트라는 약이 있어요. 정말 많이 사용해요. 매년 5천억 원 정도가 팔려요. 그런데 이게 알고보면 한국만 약으로 쓰고 있어요. 검증된 효과가 없거든요. 그런데 딱히 부작용도 없다보니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예방약이니까 먹어서 나쁠 건 없어'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게 매출액이 5천억 원이 넘다 보니 건보 재정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10년 전부터 퇴출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죠. 올해 급여 범위가 축소됐고, 내년에 식약처에서 재평가 결과가 나올 텐데요. 만약에 이게 완전히 퇴출되면 큰 성과이긴 해요.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해서 건약에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는 'K-바이오' 육성인 것 같아요.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제약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 완화라든지 산업적인 지원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재생의료 관련해서, 검증이 안 된 약을 의사들이나 제약회사들이 팔 수 있게 하는 규제 완화들을 시행하자는 주장들이 최근 토론회에서 논의되었고, 국정과제에서도 언급됐어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환자에게 제공한다고 접근권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분명 제2의 인보사가 될 거예요. 걱정이 많이 되는 부분이에요.
또 다른 의약품 관련 국정과제는 필수의약품 안전 공급이에요. 의약품이라는 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생산하다 보면 결국 특정 약은 공급이 중단되거나, 충분하게 생산하지 않거나 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이를 해결하겠다고 국정과제를 제시하긴 했는데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결국 제약회사 인센티브만 더 주는 걸로 끝날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에요.
앞서 언급했던 임신중지 약물 도입도 있어요. 사실 특정 약 하나를 허가하겠다는 걸로 국정 과제를 삼아야 하는지 웃프긴 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게 과연 정말 실현될지도 의문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를 가장 반대하던 사람이 현 식약처장이거든요.
이재명 정부에 의약품 관련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국내 제약산업이 너무 과대 포장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 수출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자세하게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게 보기 힘들어요. 최근에 그나마 수출이 늘어난 이유가 복제약과 같은 지위의 바이오시밀러, 혈액용 제제, 보톡스 같은 약들이에요. 또 다국적 제약사의 용역을 받아 위탁생산하는 의약품이 많아요. 한국 제약회사가 엄청난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수출하는 산업이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 유럽이나 미국 기업이 아니라 인도나 중국에 있는 기업들과 경쟁해야 해요.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제약산업이 현 정부에서 3대 신성장동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위험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요. 이 때문에 진짜 문제인 필수약 품절사태 같은 것들은 해결이 난망한 상황이에요. 결국 제약기업 눈치보면서 약값 올려주기로 마무리되지 않을지 걱정되는거예요. 제약산업이 주도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겪는 다양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위고비가 '국제 필수의약품'인 이유는..."
- 건약에서 오마이뉴스에 '그 약이 알고 싶다'를 연재하고 계시는데,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그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앞서 푸제온 투쟁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는데, 건약은 오랜 기간 HIV 감염인 인권활동과 연대를 하고 있어요. HIV 치료제는 국제적으로 접근권 문제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역이에요. HIV 감염인은 대부분 중저소득 국가에 많은데 치료제는 대부분 백인,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만들어져요. 그런 과정에서 엄청나게 비싼 약값을 자랑해요. 관련해 한국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고민하는 단위가 있고, 이를 알리기 위해 처음 칼럼을 쓰게 됐는데 이후에도 오마이뉴스에 연재(
https://omn.kr/29wlg)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어요."
- 요즘 동네 약국에서도 '위고비 판매'를 홍보하고 있고, TV 프로그램에서도 위고비에 대해 다루고 있을 정도로 이슈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약이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전달되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관점을 봐야 하는데요. 오젬픽이라고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 있어요. 이 약의 부작용이 식욕 억제였죠. 그래서 식욕억제제로 재출시된 것이 위고비예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오젬픽을 먼저 사용하다가 위고비라는 약이 출시돼서 위고비도 함께 쓰는 추세인데, 한국은 거꾸로죠. 오젬픽은 허가를 받았지만 출시는 안 했고, 위고비만 허가받은 다음에 출시를 했고, 이제야 오젬픽이 곧 출시되거든요. 오젬픽은 내년 초쯤에 출시될 텐데 위고비가 그보다 먼저 출시돼 그로 인한 문제가 한 블록 이렇게 있고요.
두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식욕 억제제라고 하면 그전에는 대부분 다 마약성 식욕 억제제를 먹었어요. 내성이나 중독의 위험이 있는 정신신경계에 관련된 치료제이다 보니 마약류로 분류되고, 위험해서 미국·영국 등 몇 개국에서만 쓰고 있는데 말이죠. 이미 위험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허가가 철회된 약을 한국에서는 연간 100만 명씩 사용한 거죠. 이런 상황에서 위고비가 들어오니 또 다른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그전에는 식욕 억제제를 누가, 어떻게 먹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위고비를 먹으면 인증을 해요. 자신이 위고비를 먹는다는 게 자랑인 거예요. 뭔가 '나 관리하는 사람이야'라는 하나의 증표로서 비만약을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약품 사용이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어떻게 보면 관리하는 사람 대열에 끼고 싶은 욕망도 불러일으키고, 또 유명인이 쓴다니까 그것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과 별개로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위고비를 국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어요. 비만은 질병이고, 그 치료제로 위고비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이렇게 세 차원에서 다 같이 봐야 할 것 같고, 한국의 위고비가 문제인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는 당뇨약이 먼저 허가되고 나중에 비만약이 허가됐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위고비가 앞에서 말한 오젬픽보다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는 거예요. 심지어 다이어트를 엄청 좋아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훨씬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다른 나라에서 10만 원 하는 약을 우리나라에서는 50만 원에 파는 거죠.
최근에 일라이 릴리라는 경쟁 제약회사가 비슷한 성분의 마온자로라는 약을 만들고 허가가 됐는데, 가격 경쟁이 붙어서 위고비 가격이 내려가기도 했고, 오젬픽이 곧 출시될 예정이라 지금은 25만 원 정도에 거래가 되고 있어요.
약을 원하는 사람은 매우 많고 공급하는 곳은 딱 한 곳이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그것을 이용해서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측면도 있어요. 원래 약이라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해 사용되는 게 기본적인 목적이고 원리인데, 뭔가 명품을 입는 것과 같이 마케팅을 하다보니 원래 위고비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임상적인 중요성, 필수성, 의료적인 필요성은 완전히 숨어 버리고, 엔터적인 측면만 크게 드러나는 거죠.
그렇게 되면서 진짜 비만약을 맞아야 하는 사람은 비싸서 못 맞거나 또는 약이 부족해서 못 맞거나, 구하지 못해서 못 맞거나 이런 다양한 이유로 접근에 제한이 생기는 반면, 돈이 많거나 엔터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줘서라도 사는 그런 구조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이중약가제, 가장 큰 문제는 투명성 결여"
- 약값이 제약회사에 의해서 그렇게 결정이 되는군요. 그러면 약가제도, 이중약가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독점입니다. 약은 특허 제도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점 시장이 형성되죠. 만약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제약회사가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게 됩니다.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다 보면 많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약값이 너무 비싸서 건강보험이 있는 사람들조차 캐나다로 넘어가 약을 사야 하는 상황이에요.
한국은 이런 독점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가 제약회사와 협상해 가격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의 정부는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약회사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제약회사에게는 한국에서 조금 더 비싸게 파는 것보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약값을 유지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실제 약값을 숨기려고 노력하죠. 다른 나라들이 한국 약값을 참고해서 "우리도 그 가격에 팔아달라"고 요구하는 걸 막기 위한 전략입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중약가제입니다. 이중약가제란 환급 제도를 활용해 실제 거래 가격을 감추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건강보험공단이 "A약을 5만 원에 구매하기로 협상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합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제약회사가 "A약 매출의 80%를 공단에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비밀 계약을 맺는 거예요. 그러면 제약회사는 실제로 매출의 80%를 환급하니까 실제 판매 가격은 1만 원이 됩니다.
하지만, 이 실제 가격은 비밀 협상 당사자들만 알 뿐,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죠. 결국 공시된 가격과 실제 가격 사이에 큰 차이가 생기고, 이 불투명한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 그러면 그 괴리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나요?
"크게 세 가지를 다룰 수 있어요. 우선 제일 큰 문제는 투명성이 결여된다는 것인데요. 약값 협상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에요. 건강보험공단은 제한된 재정으로 약제비를 지출하는 상황에서 만약 어떤 약은 후하게 가격이 결정되고, 다른 약은 박하게 가격을 결정하다가 급여가 되지 않는다면 이걸 누가 문제제기 할 수 있을까요? 시민들이 속사정을 알기 힘들 거예요. 모든 약의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우리는 정부가 제약회사와 성실하게 협상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투명성은 민주주의 원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에요.
두 번째는 모든 나라의 약값이 불투명하다면 제약회사에 너무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모든 나라의 약값이 불투명하면 제약회사는 '다른 국가들도 모두 5만 원에 사니까 너도 5만 원에 사'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는 협상력이 뛰어난 국가는 1만 원에 사지만, 협상력이 떨어진 국가에는 제약회사가 굉장히 비싸게 팔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바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약회사는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숨겼어요. 각 국가들과 비밀계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코로나 백신 가격이 국가마다 다 달랐어요. 우리나라는 지금도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몰라요. 시간이 지나서 몇몇 국가들의 백신 협상가격이 공개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유럽보다 남아공 같은 중저소득 국가들이 훨씬 더 비싸게 샀더라고요. 당시에 조금 힘이 약하고 협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이 힘이 세거나 협상력이 강한 국가보다 훨씬 더 비싸게 사야 되는 그런 구조가 발생했던 거예요.
저는 한국이 남아공과 같은 처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만일 불투명성이 국제적으로 확산된다면, 한국은 계속해서 약값을 비싸게 구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행정비용의 문제도 있어요. 예를 들어, 환자가 A약을 5만 원에서 본인부담률만큼 샀다고 하면, 나중에 비밀협상에 따라 기업이 매출 80%를 환급해 줄 때 이는 환자에게도 환급이 이뤄져야 해요. 그럼, 공단은 각 환자들에게 따로 환급을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이런 환급형 약이 많지 않지만, 만약 우리가 먹는 모든 약이 다 이중약가제가 돼 버린다면, 우리는 매년 공단에 환급 신청하느라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약을 한두 개 먹는 것도 아닌데 그 약들마다 다 환급률을 일일이 계산해 청구해야 하니 엄청난 행정비용이 발생하겠죠. 원래는 발생할 이유가 전혀 없는 행정비용이 막대하게 발생할 거예요."
"제약산업 공영화 고민 필요"

▲'의약품 수급불안정 해소 및 안정공급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 국회 토론회 참석2023년 11월 29일, 의약품 수급불안정 해소 및 안정공급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다. ⓒ 이동근(본인제공)
- 얼마 전 국회에서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 토론회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성분명 처방은 무엇이고, 건약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먼저 의약품 종류을 설명드리면, 신약이라고 하는 오리지널 의약품이 있고, 특허가 만료되면 똑같은 구조를 가진 약을 생산하게 되는데 이를 제네릭 의약품, 복제약이라고 하죠. 과학적으로 생물학적 동등성을 평가받고 허가되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 약은 사실상 같은 약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해요. 같은 약이니까 A 또는 A'라고 표기해야 하는데, 이것을 브랜딩해서 A약, B약, C약, D약, E약 이렇게 다르게 부르면서 각자의 선호가 생기게 됩니다. 같은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취향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실질적으로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은 브랜드 이미지나 마케팅으로 취향을 잘 저격하면 선택되는 시장이 돼 버렸습니다.
성분명 처방의 원래 취지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같은 성분의 약들이 A, B, C, D, E가 아니라 A, A', A" 이런 식으로 표기되니까, 결국 경쟁은 가격으로만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성분명 처방의 본래 목적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약가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성분명 처방이 인기가 없었어요. '성분명 처방을 해도 제약회사들이 가격 경쟁을 안 하는데 왜 하냐?'는 논리가 어느 정도 통했던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성분명이 같은 A~E약이 있는데 갑자기 수요가 폭증하다 보니 A, B약은 품절되고 C, D, E는 남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C, D, E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A, B약만 달라고 하는 겁니다. C, D, E를 주려고 설명해도 환자들은 찝찝해하고, 결국 품절이 아닌 품절 사태가 계속 발생했죠.
이런 상황에서 약사회와 민주당은 품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한국형 모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성분명 처방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격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약 품절이 발생했을 때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즉, A, B가 품절일 때는 C, D, E를 성분명 처방으로 처리해서 환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겠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 접근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성분명 처방의 가장 우선돼야 할 제도적 이익은 가격 경쟁이 돼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우리나라 약가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분명 처방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거든요. 그런데 약사회와 민주당은 가격 경쟁보다는 품절 상태에서만 성분명 처방의 제도적 이익이 있다고 보고, 품절 상황을 대비해 성분명 처방을 하겠다는 겁니다.
건약 입장에서는 성분명 처방의 원래 취지는 약값을 싸게 하기 위한 목적이 달성돼야 하는데, 이 한국형 모델은 약값과는 무관한 성분명 처방이기 때문에 애매하다고 보고 있어요. 실질적으로는 성분명 처방이 돼서 환자나 약사가 가장 저렴한 가격의 약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함께 열려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약값이 저렴한 것에 대한 선택 유인이 거의 없어요. 약값 절감 효과가 없기 때문에 이건 반쪽짜리 정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는 품절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성분명 처방을 하기 때문에 '한국형'이라는 특별한 모델이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도 제대로 하려면 약가 제도 개선과 함께 성분명 처방이 도입돼야 할 필요가 있어요."
- 의약품 공공성이 무엇인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건의료 전체를 놓고 보면, 의약품은 가장 구하기 쉽고, 가장 효과적이며, 가장 값이 싼 수단입니다. 의사를 양성하거나 병원을 짓는 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병원과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정한 약을 제때 공급하는 게 훨씬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공중보건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약은 공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재화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약들이 어떤 재화보다도 자본주의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고,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니 환자의 건강에 가장 적합한 약을 제공하기보다는 가장 돈이 되는 약을 판매하게 됩니다. 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소수라면 아예 그 약을 생산하지 않기도 하고, 적정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제약회사는 오로지 이윤추구에만 충실하면 되니까요.
다시 말해 보건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공공성 있게 제공해야 될 재화가 자본의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다 보니 '필요에 의한 생산, 필요에 의한 공급'이 아니라 그냥 '이윤에 의한 생산, 이윤에 의한 공급'이 되는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는거죠. 그 불일치를 극복하려면 전반적인 의약품 공공성이 어느 정도 확립돼야 하고, 그 과정에 정부나 시민사회가 노력해서 적어도 몇 가지 약들은 공공성 있게 생산해야 된다는 합의가 필요해요.
제약회사도 어느 정도 일정 부분의 공공성, 그러니까 어떤 약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으로 생산하더라도 몇몇 약은 공공성 있게 책임을 다해서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약회사도 의료 공급자의 일원으로 일정 측면에서는 공공성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공공적 의약품 생산체계란, 제약회사, 약사,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해 공공성 있게 생산할 품목을 정하고, 적정한 양을 생산·공급, 그리고 가격 등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프랑스 등 실제로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나라도 있기 때문에 저의 주장이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 이와 관련한 건약의 로드맵이 있을까요?
"한국에 비슷한 성격으로 한국 희귀·필수의약품센터라는 게 있어요. 식약처 산하에 있는데 거기서는 환자에게 의약품 접근을 높이기 위해 특정약을 제약사에게 위탁 생산을 의뢰한다거나, 또는 해외에 있는 약을 직수입해 온다거나 이 정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저는 이 기관에 주도적 성격을 부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수적인 치료제의 생산규모를 결정해 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중요 의약품을 목록화하고, 그 약의 적정 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한 다음에 제약회사들의 협력을 통해 이를 달성한다면 그게 의약품 공공성 로드맵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주장은 희귀약 하나, 생산성이 떨어져서 생산되지 않는 약 한두 개를 공공영역에서 생산하자고 얘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현재 식약처가 필수약이지만 제약회사가 기피하는 한두 개의 약을 조금 웃돈을 줘서라도 생산하게끔 하자는 것을 의약품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저는 이건 잔여적인 방식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AI시대에 적정한 의약품 생산량을 추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현재 생산은 되고 있지만 가격이라든지 공급량 때문에 환자가 충분하게 접근하는 데 문제를 겪고 있다면, 정부가 직접 생산량을 통제하는 방식의 결정 구조를 가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해요. 거기에 더 나아가서는 약값과 제약회사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만드는 구조가 공공성의 달성이라고 보여요. 지금의 제약산업은 완전히 금융화되고 분절화돼서 최대이윤만을 위해 경영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되돌려 놓아야 해요."
- 마지막으로 <복지동향>을 보는 독자들에게나, 전반적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라는 단체가 의약품 접근권, 건강권 관점에서의 의약품 사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의약품도 전기처럼 공공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만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전기를 민간에서 생산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공공에서 하잖아요. 다른 나라에서 한국처럼 전기 공영화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고 제약산업의 공영화를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복지동향>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전은경·정성진 활동가가 인터뷰하고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