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돔플레인 광장에서 수단과의 무기 거래에 대한 제재와 긴급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025.11.9 ⓒ EPA=연합뉴스
픽업 트럭 뒤에 탄 무장 대원들은 줄지어 놓인 아홉 구의 시신 옆을 지나 석양이 있는 쪽으로 질주했다. 그중 한 명이 "우리가 한 일을 봐. 이 학살을 보라고"라며 환호했다. 그는 카메라와 동료 무장대원들을 돌아보면서 "모두 이렇게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는 사회관계망에 올라온 학살 관련 영상 중 하나의 내용이다. BBC는 이들의 유니폼에 수단 반군인 신속지원군(RSF)의 견장이 붙어 있었고 분석 결과 이들이 환호하는 건 지난 10월 26일 수단 서부 북다르푸르의 수도 엘파셰르 점령 후 저지른 학살이라고 보도했다.
RSF가 10월 26일(현지 시각) 수단 서부 북다르푸르의 수도 엘파셰르를 점령한 후 저지른 학살을 본 세계의 충격과 분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RSF 대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광고하려고 올린 영상들은 그들의 야만과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줬고 RSF가 얼마나 광기 어린 집단인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유엔 인권사무소 수단 지부는 8일 사회관계망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엘파셰르에서 지금도 "잔인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곳은 "비탄의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RSF의 학살은 절대 허용될 수 없지만 흔히 '불가피한'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민간인 피해가 아닌 의도적인 살해였다. 살해 방법 또한 즉결 처형과 무차별 학살 등 잔인한 것이었다. 수단 정부군은 학살된 사람들이 2,000명 정도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국제시민단체인 아바즈(Avaaz)는 수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RSF는 살해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집단 매장했다.
정부군-반군 예외 없이 잔인한 전쟁 범죄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학살을 증명할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학살이 알려지면서 수단 내전에 대한 보도가 많아지고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유감스럽게도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RSF의 학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지난 2023년 4월 15일 내전이 시작된 이래 대량 학살, 인종 청소, 여아를 포함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 잔인한 전쟁 범죄가 계속됐다. 수단 정부군 또한 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RSF의 의도적인 구호품 반입 차단과 그로 인한 심각한 기근 상황 또한 계속됐다. 유엔은 수단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도주의 재난 지역이라며 세계의 관심을 호소했다. 국제인권단체들 또한 만연한 전쟁 범죄를 보고했다. 그러나 언론을 포함해 세계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학살이 일어난 이제야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무척 씁쓸한 일이다.
최악의 전쟁 범죄와 인도주의 재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세계가 수단 내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지구 전쟁에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전쟁은 모두 서방국들의 이해 관계와 관련되어 있고 서방국들이 무기 공급과 외교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개입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두 전쟁의 영향이 전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의미했고 실제로 지금도 전 세계의 정치경제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두 전쟁에 대한 뉴스는 거의 매일 톱뉴스로 보도됐다. 이런 가운데 수단의 참혹한 내전은 시선을 끌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는 수단 내전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에 상관없이 전쟁은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고, 특히 전쟁 범죄와 인도주의 재난이 있는 경우 세계는 전쟁에 개입할 정치적·윤리적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서방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 정치에서 아프리카의 전쟁과 재난 등은 서방국들의 경제적 이익 및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되곤 한다. 이런 이유로 수단 내전은 아프리카에서 자주 발생하는 무장세력 간 충돌 중 하나로 취급됐다. 국제 언론 또한 유엔과 인권단체 등이 특별 보고서를 낼 때를 제외하곤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결과 세계인들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군에 무기 지원하는 UAE
사실 수단 내전에는 복잡한 국제 정치와 여러 국가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고 그런 점에서 수단의 학살과 인도주의 재난 상황은 수단만의 일이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고 국제 해상로인 홍해에 면한 약 500마일의 해안선이 있는 수단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있다. 또한 광활한 농지와 금광이 있고 식품, 의약품, 화장품 원료 등의 대량 생산국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수단 내전을 자국의 경제, 안보 문제 등과 연결 짓고 정부군 또는 RSF를 지원하면서 내전에 정치적으로 개입해 왔다. 와그너 그룹을 통해 RSF를 지원했던 러시아는 홍해 이용과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제 수단 정부군과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UAE는 RSF에 무기를 공급한 것과 관련해 유엔과 인권단체들은 물론 서방국들의 비난을 받아왔다. 2025년 3월 수단 정부는 UAE가 RSF에 군사·재정·정치적 지원을 하고 다르푸르 지역 비아랍계 주민 학살에 공모했다며 UAE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UAE는 RSF에 대한 무기 공급을 부인했지만 무기 금수 조치를 감시해 온 유엔 전문가들은 UAE가 차드를 통해 무기를 밀수해 RSF에 공급한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조오지타운 대학 현대아랍연구센터의 방문 교수인 카릴 알-아나니는 CNN에 UAE가 RSF를 지원한 우선적인 이유는 농업·금광·천연자원 등 경제적인 것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면서 UAE는 자국 이익을 위해 수단이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국가의 개입 및 외교적 지원과 관련해 "수단 내전에 중립적인 국가는 없다"면서 "수단을 통제하는 건 전체 사하라 이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자신만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개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RSF에 대한 UAE의 무기 공급은 UAE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 미국, 영국과도 관련되어 있다. 미국의 무기가 수단 내전에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의회 일부 의원들은 UAE가 미국의 중요한 중동 협력국임에도 무기 수출 중단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 하지만 금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RSF의 엘파셰르 점령과 학살이 알려진 이틀 뒤인 10월 28일 영국 <가디언>은 유엔 안보리 문서에 영국제 무기가 RSF에 의해 사용된 것이 명시돼 있다고 독점 보도했다. 보도 후 영국 정부는 약간의 영국 장비가 수단 내전에서 사용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영국 외무부는 이는 '무기'와는 다르다며 영국산 무기가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UAE가 RSF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영국이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데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내전 종식, 전 세계 관심에 달려
중동 국가들의 수단 내전 개입과 RSF에 대한 무기 공급 그리고 UAE의 RSF 무기 공급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감시와 조치 부족 등은 수단 내전에서의 학살과 인도주의 재난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학살이 있은 직후인 지금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여러 국가의 개입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보도가 많아지고 있는 건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내전 종식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비난이 높아지자 RSF는 지난 6일 미국이 제안하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주선하는 인도주의 휴전 제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RSF는 전쟁으로 인한 재앙적인 인도주의 문제에 대응하고 구호품의 "긴급한 보급"을 위한 3개월의 휴전을 언급하면서 "정의롭고,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대해 논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RSF가 세계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휴전 동의를 밝혔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RSF의 휴전 동의에 대한 수단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수단 국방장관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의 노력과 제안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RSF에 대항하는 수단 국민의 전투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전쟁은 합법적인 국가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내전이 시작된 이후 거의 2년 7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 전쟁과 학살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질병 등으로 사망한 숫자는 약 150,000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추산일 뿐이고 정확한 숫자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약 1,400만 명의 국내.외 이주민이 발생했다. 내전과 학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향력 확대와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국가들의 개입도 중단되지 않았다.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은 수단 정부군과 RSF 모두 세계의 관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의 관심이 얼마나 높게 유지되느냐에 따라 수단 내전의 종식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