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초겨울의 바람이 언 땅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 바람 속에는 아직도 울음소리가 섞여 있다. 총소리가 멎은 지 45년이 되었건만, 그날의 피와 비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분노한다.
지난 6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묘지 입구는 분노와 절규로 가득했다.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광주시민에 막혀 분향과 묘지 참배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 배동민
"내란 동조범은 오지 말라."
"오월 영령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수많은 시민과 유족들이 피켓을 들고 그를 막아섰다. 결국 그는 방명록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날의 광주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정치적 모욕이, 또 한 번의 상처가, 민주주의의 성지 위에 떨어졌다. 그 방문이 진심이었다면 왜 시민들의 분노가 그토록 컸겠는가. 그것이 쇼였기 때문이다. 역사 앞에 무릎을 꿇는 대신,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기 때문이다. 장동혁 대표는 몇 달 전, 이렇게 말했다.
"이번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그 한 문장은 광주의 심장을 찢었다. 계엄이라는 말, 그것은 광주에서 금기다. 그 단어 속에는 죽음과 피, 억압과 고통이 뒤섞여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엄을 미화하는 그 말은, 그날 총을 들고 시민을 향했던 손길을 다시 정당화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가 후에 "오해였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이미 광주의 심장을 찔렀다. 5.18의 진실은 신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 권력의 광기, 그리고 시민의 절규였다. 계엄을 '하나님의 계획'이라 부르는 순간, 그는 가해자의 언어로 역사를 다시 쓰고 있었다.
왜 지금 와서 묘역을 찾았는가
그는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호남을 방문하겠다.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계엄을 옹호하던 언어를 거두지도 않은 채, 광주를 찾는 발걸음이 어떻게 진정성으로 읽힐 수 있겠는가. 정치는 사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는 사과 대신 해명을 택했다. 유족의 가슴에 다시 못을 박고, 화해의 이름으로 상처를 건드렸다. 그것이 광주시민들의 분노였다. 참배는 죄책감 위에 서야 한다. 그런데 죄의식이 없는 참배는 모욕이다. 그는 그 차이를 몰랐다.
5.18은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역사이며,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다. 그날의 희생 위에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 세워졌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다시 헌정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12.3 불법계엄 사태로 국회가 유린되고, 헌법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농락되던 그날의 그림자가 다시 우리 앞에 드리워져 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며 손이 떨렸다. 또다시 '계엄'이라는 단어가 뉴스의 첫머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권력은 위기를 핑계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책임을 감추려 한다. 그것이 가장 큰 모욕이다.
유족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입구 앞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묘역 참배를 반대하는 광주시민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배동민
나의 처남 김의기(22세, 서강대 무역학과 4년)열사는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에서 신군부의 참혹한 살해 행위를 목격하고 광주를 탈출하여 5월 30일, 서울 기독교회관 6층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광주 학살의 진상을 촉구하는 유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고 계엄군의 장갑차 위에 투신했다.
"...<중략>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 또 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의.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 유신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동포여! 내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 바쳐 싸우자, 동포여!"
-1980년 5월 30일 김의기 유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그는 스물두 살의 청춘이었다. 그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와 선거, 이 모든 민주적 일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분노한다. 단지 한 정치인의 무례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아직도 5.18을 '이용 가능한 사건'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주를 향한 진심이 아니라, 호남을 향한 계산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그들은 사과가 아니라, 사진을 남기려 한다. 그들이 말하는 '통합'은 기억의 삭제를 뜻한다. 그것이 내가 참을 수 없는 이유다.
진심어린 참배는 말이 많지 않다. 그저 묵념과 침묵, 그리고 사죄의 눈물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장 대표의 참배에는 말만 있었다. 사진 기자들이 서 있고, 수행원들이 둘러 서고, 그 속에서 눈물 대신 메시지가 있었다. 그날 유족들은 외쳤다.
"무릎을 꿇을 자격이 있는가."
그 물음은 단지 장동혁 개인에게 던진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정치인, 모든 권력자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당신들이 5.18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단지 이용하는가. 기억은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자는 침묵해야 한다. 광주는 단 한 번도 피해자의 이름을 잊은 적이 없다. 유족들은 매년 그 묘역을 찾는다. 묘비를 닦고, 이름을 부르고, 바람 속에 속삭인다.
"괜찮다.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곁에 서서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이가 나타날 때마다, 그 상처는 다시 피를 흘린다. 5.18은 한 번의 폭력이 아니라, 반복되는 망각의 폭력으로 다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진정한 화해는 사과에서 시작되고, 사과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이다. 나는 말한다. 더 이상 5.18 희생자와 유족들을 욕 보이지 말라. 우리의 눈물은 정치의 장식이 아니다. 우리의 상처는 여론조사의 재료가 아니다. 우리가 지킨 민주주의는 표를 얻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정치인이 진정으로 오월 영령 앞에 서려면, 먼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먼저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참배'다. 그날 그 묘역을 찾았던 그가, 언젠가 진심으로 무릎을 꿇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 무릎이 카메라를 향하지 않고, 양심을 향하길 바란다. 그 묵념이 연출이 아니라 회개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광주는 오늘도 묻는다.
"그날의 진실을 잊었는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정치라면, 그 어떤 통합의 말도 공허하다. 더 이상 희생자들의 이름을 정치의 무대로 올리지 말라. 우리의 분노는 기억이며, 기억은 다시 민주주의를 지킬 불씨다.
덧붙이는 글 | 박철, 글쓴이는 은퇴목사이며 시인이다. 각종 매체에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