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문원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는 23일 저녁 <국가는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가> 강연에서 “(현행 법상) 국회사무처와 국회도서관이 생산한 기록은 남기게 돼 있지만, 국회의원실이나 의원들이 했던 비상계엄 관련 기록은 (보존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 유성애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기록원법'이 통과돼 인력·예산 등 설립근거가 마련된 가운데, 국회기록원에서 12.3 비상계엄 관련한 개별 의원들과 정당 차원의 활동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전 한국기록관리학회장 역임 등 20여 년 넘게 체계적인 기록관리 중요성을 설파해온 설문원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는 23일 저녁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아래 정보공개센터)'가 준비한 <국가는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가> 강연에서 "(현행 법상) 국회사무처와 국회도서관이 생산한 기록은 남기게 돼 있지만, 국회의원실이나 의원들이 했던 비상계엄 관련 기록은 (보존 근거가)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시민 알권리를 위해 2008년 설립된 시민단체로, 설 교수는 교수 정년퇴직 뒤 지난 10월 초 정보공개센터 상근 정책위원으로 합류했다. 설 교수는 이날 서울 마포구 정보공개센터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50여 명 참석자를 대상으로 국가가 '책임성' 관점에서 어떤 기록을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현 상황은 어떤지 등을 설명하고 현장 질의응답을 나눴다.
설 교수는 "국회의 기록이, 즉 국회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실 이번에 12.3 비상계엄 상황을 겪으면서 시민들이 잘 알게 됐지 않느냐"며 "사실 계엄과 관련해서 했던 국회의 활동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이 당연히 남겨져야 하는데, 현재 국회 기록 관리(체계)에선 그런 게 안 남겨진다"라고 말했다.

▲설문원 교수는 정년퇴직 뒤 최근 정보공개센터 상근 정책위원으로 합류했다. 설 교수는 23일 서울 마포구 정보공개센터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50여 명 참석자를 대상으로 국가가 ‘책임성’ 관점에서 어떤 기록을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현 상황은 어떤지 등을 설명했다. ⓒ 유성애
설 교수는 지난 7월 11일 '국회기록물의 체계적·전문적 관리를 위한 국회기록원법 제정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해 "지금도 12.3 비상계엄 기록은 사라지거나 흩어지고 있다. 지금 확보하지 않으면 휘발될 기록을 획득해 시민들에게 입법 활동을 보여주는 자산으로 활용하고 역사적 자원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당론 반대' 이유는... 국회의장 "기록원은 민주주의 자산으로 남을 것"

▲2024년 12월 3일 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직후인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하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날 강연에서 설 교수는 "곧 국회 기록원이 생길 것 같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면서도 현 국회 기록 관리의 가장 큰 허점이자 문제점으로 '의원 기록물'과 '정당 기록물' 공백을 꼽았다. "현재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임기가 끝나면 다 파쇄기를 사다가 파쇄하고 일부는 가져가기도 한다. 국회기록원 설립의 제일 중요한 취지 중 하나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의정기록을 가져가지 말고, 의무적으로 기록원에 내놓게 하자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어 "우리가 세금으로 내는 정당 보조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잖나. 그런데 왜 정당 기록물에는 시민이 아무 권리가 없는 거냐"라며 "기록원에서 의원 기록물과 정당 기록물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기록원이 생기고 차후 기록들이 모이면 이걸 시민들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등 보여주는 방식 또한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기록원의 '대국민 서비스'도 강조했다.
26일 통과된 국회기록원법은 향후 설립될 국회기록원 지위 및 독립성, 인력 및 예산 규모, 핵심 직무 범위 및 권한과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국회도서관 산하 국장급 조직이던 '국회기록보존소'가 국회기록원으로 승격되며, 기록원 원장도 차관급 보수를 받게 격상된다. 공식 직급이 차관은 아니지만, 그와 동등한 수준의 예우와 책임, 권한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국회도서관 직무 중 '의정활동 기록물 업무'는 삭제, 이관됐다.
해당 법은 본회의 당시 재석 266인 중 찬성 180인·반대 84인·기권 2인으로 통과됐으나, 국민의힘은 당론 반대했다. 9월 24일 국회 운영위 회의록에 따르면, '인력·예산 확대가 과도하다'는 게 반대의 핵심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시 "정당·의원 활동에 대한 과도한 개입(최수진 의원)", "차관급 기관을 신설하면서 이렇게 쉽게 처리하는 건 맞지 않다(곽규택 의원)", "다른 중요한 국가 업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강선영 의원)"는 등 논리로 반대했다.
이에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은 "중립성과 예산, 차관급 등 여러 우려가 있지만, 저희(국회사무처)가 분석한 바 예산과 인력은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며 "왜 차관급이냐, 300명 헌법기관인 의원님들의 다양하고 중요한 자료가 생성되면 기록원장이 수집을 요청하거나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자료 생산의 주체가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국회기록원장은 차관급으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6일 통과된 국회기록원법은 향후 설립될 국회기록원 지위 및 독립성, 인력 및 예산 규모, 핵심 직무 범위 및 권한과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반대했다. ⓒ 국회 화면중계
한편 국회기록원 설립에는 우원식 현 국회의장의 강한 의지 또한 반영됐다. 26일 법 통과 뒤 우 의장은 "기록원 설립은 22대 국회가 처음 추진해 온 사업으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결실을 보게 됐다"며 "국회기록원은 국회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를 온전히 기록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며 후대에 전하는 '민주주의 아카이브'다. 300명 의원의 의정활동, 수많은 논의와 고뇌, 민의를 담아낸 입법 과정과 정책 변화 기록들이 국가적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오늘 법안 통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국회 입법 지원 기관들이 협력하여 개원준비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라며 "국회기록원 설립을 통해 더 투명한 국회,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우 의장은 지난 6월 11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도 "돌아보면 역시 가장 큰 일은 비상계엄에 맞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온 과정", "국회가 비상계엄을 158분 만에 해제시켰다"는 등 계엄 관련 국회의 역할을 강조해 회고한 바 있다.
28일 국회도서관 측에 따르면 통과된 법안의 대통령 재가, 공포를 거치는 동시에 기록원 설립·개원에 박차를 가하는 등 속도를 낼 예정이다. 해당 법 부칙에 시행일은 '공포 후 2개월 뒤'로 돼 있어, 국회기록원은 빠르면 연내 설립 및 개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