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청년추모문화제 현장전국민주일반노조 누구나노조지회 운영위원 신현수 씨는 "우리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실을 규명하며,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고, 청년들의 즐길 권리와 애도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 이향림
벌써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3년이 되었다. 3년 전 그날 밤, 나는 자는 도중에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오래된 친구부터 자주 연락하지 않던 사촌 언니들까지 모두 안부를 물었다.
당시 나는 이태원에 살고 있었다. 비몽사몽한 채 전화를 받고 잠시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확인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살려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현장 바로 건너편에는 소방서와 파출소가 있었다. 외진 곳이 아니었다.
아침이 되어 뉴스를 확인했을 때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쏟아졌다. 지난 밤, 내가 영상으로 본 심폐소생술을 받던 사람들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월호 때처럼 황망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구할 수 없었던 우리의 무능은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10년도 채 되지 않아 반복되었다.
대처 또한 세월호 때와 다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자식의 시신을 찾아 직접 뛰어야 했고, 용산구는 우왕좌왕했다. 고위직의 사과는 찾아볼 수 없었고,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으며 피해자들을 개인의 불운으로 몰았다. 코로나19로 을씨년스러웠던 이태원이 다시 활기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즐거움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은 홍대와 강남으로 흩어졌다.
"친구 몫까지 열심히 놀겠다"
그해 시청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한 희생자의 친구가 마이크를 잡았다.
"친구가 원했던 건 그냥 재밌게 노는 거였어요. 그런데 우리는 구조하지 못했죠. 다음 세대는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친구 몫까지 열심히 놀 거예요."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는 정부가 강제 애도기간을 지정하고 공연 예술인들의 생업까지 막았던 그 시절의 침묵을 찢어내는 듯했다. 그 외침이 내 마음 깊숙이 남았다.
참사 3주기를 맞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태원에 살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한동안은 그 골목을 피해 다녔고,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윤석열 정부가 탄핵된 후에는 '이제 좀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AI 교육 행사를 보기 위해 용산구청을 찾았을 때, 구청장이 여전히 장황한 인사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달라진 건 거의 없구나."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용산구청장은 그대로였다.
청년추모문화제서 다시 마주한 기억
잊혀가던 10월 22일 수요일 저녁, 시청광장 인근 세월호 기억공간 앞(세종대로 125)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청년추모문화제' 소식을 듣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전국민주일반노조 누구나노조지회 운영위원 신현수씨가 울먹이며 발언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기 전에도 문제였지만, 일어나고 나서도 피해자들을 잘못으로 몰아갔습니다. 애도할 권리를 빼앗고, 강제로 침묵하게 했죠. 현장을 목격한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처우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실을 규명하며,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하고, 청년들의 즐길 권리와 애도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이 장막을 뚫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발언은 현장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이후 추모공연과 성명서 낭독이 이어졌고, 우리는 경복궁역 인근 '별들의 집'까지 행진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걸음 속에서 조금은 풀렸다. 이순신 동상 근처에서는 트럼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도로 건너편 사람들은 큰 함성으로 응답했다. 가을 밤, 경복궁과 북한산이 어슴푸레 비쳤다.
이태원 추모공간 '별들의 집'에는 참사의 경과를 담은 타임라인과 159명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정민(고 이주영씨의 아버지)씨를 만났다. 이정민씨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분노보다 깊은 피로가 담겨 있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심에서 자유의 몸이 됐어요. 수사기록이 부실했고, 검찰도 적극적으로 기소할 의지가 없었죠. 사법부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2심 재판에 항소 중입니다.
처음엔 욕을 먹더라도 (구청장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길 바랐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한 번도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어요. 나중엔 조롱당하는 기분이었죠. '참사는 하나의 현상이었다'는 말을 듣고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책임의 자리, 부재의 언어
이태원은 관광특구이며 매년 축제를 치르는 지역이다. 2022년의 핼러윈은 첫 번째 축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용산구는 대비하지 않았고, 참사 후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왜 구조가 실패했는지 설명을 기다렸지만, 정부는 '우리 책임은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심지어 정부는 희생자들의 카드 내역을 3개월치나 조회했다. 이유를 묻자 경찰은 '이태원역 출입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마약 연관성을 찾아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슬퍼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조마조마해야 했고, 불안하고, 억울하고, 분노했다.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은 공감이어야 합니다."
이정민씨는 3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공감하는 지도자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추모제가 열린다며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난 25일 토요일 오후 1시 59분, 희생자 159명을 기억하는 4대 종파의 종소리가 이태원에 울렸다. 오후 6시 34분, 첫 신고 시각에 맞춰 서울광장에서도 불빛이 켜진다.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까지 초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생각했다. '기억한다'는 건 단지 슬픔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다시 걸으며, 다시 묻는 일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태원은 여전히 살아 있는 거리다. 그곳을 다시 걷는 일은 단지 추모가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는 행위다.
"다음 세대는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 청년의 외침이 우리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밤은 깊었지만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기억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밝히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이태원으로 향했다. 159개의 이름이 종소리로 울릴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기억의 빛을 만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