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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행정은 신념보다는 책임, 노무현 대통령 보고 깨달았죠"(https://omn.kr/2fs29)에서 이어집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DMZ에서 북미 양국 정상이 만나고 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DMZ에서 북미 양국 정상이 만나고 있다. ⓒ 미국 백악관-Public Domain

'공정' 논란이 '감동'으로 끝나다

― 2018년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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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남북 단일팀 결정이 워낙 갑작스러웠죠. 1월 9일 장관급회담에서 전격 합의가 나왔고,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그때 해외 원정 중이었습니다. 귀국하자 외국인 감독이 '사전 논의는 없었지만 단일팀을 환영한다'고 말했는데 언론은 앞부분만 크게 보도했어요.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문장만 따서 불공정 논란이 커졌습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올림픽 직전 부정 평가가 높았다가 대회 후에는 긍정 인식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특히 20대가 가장 크게 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제 경기와 선수들의 교류를 직접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죠.

북한 선수단이 장비가 없어 남측 선수들이 스틱을 나눠주고, 서로 생일을 챙기며 노래를 가르쳐 주는 장면들이 매일 보도됐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같은 핏줄이구나' 하고 느낀 것이지요. 그때 한국 코치가 저한테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부가 우리를 만나게 해줬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별을 강요했다'는 것이었어요.

이후 김여정·김영철 등 북측 고위 인사의 방한 보도가 집중되면서 이러한 여론 반전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체험과 감정이 추상적인 가치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진다고요. '공정'이란 말로 시작된 논란이 '감동'으로 끝났습니다. 통일 논의도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같이 웃고, 같이 경기하고, 같이 노래할 때 생각이 바뀌는 겁니다."

하노이 회담, CNN 보던 직원이 결과를 예감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 때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그때는 연락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성 직원이 와서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군요. 밤새 CNN에서 마이클 코언 청문회를 봤다는 겁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코언이 비리를 폭로하던 그날이었죠. 그 직원이 '트럼프의 몸은 하노이에 있지만 마음은 워싱턴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제가 '아침부터 초 치지 말라'고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보니 그 말이 딱 맞았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워크아웃을 결정해놨습니다. 참모들에게 '스몰딜로 합의하는 게 충격이 클까, 노딜로 퇴장하는 게 클까'를 물었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존 볼턴의 강경 개입이 회담을 망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이 더 큰 요인이었습니다. 워싱턴의 코언 청문회 스캔들을 덮기 위한 판단이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하노이 결렬의 진짜 이유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CNN을 보던 그 여직원이었구나."

하노이 이후 김정은, 고르바초프에서 스탈린으로

―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리고 그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하노이 회담이 끝난 뒤 남북관계는 완전히 멈췄습니다. 남북관계가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추락한 것이지요. 그건 성취이자 상처였습니다. 당시 통일정책비서관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어떤 변명도, 회피도 없이 일을 맡았던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노이 이후 북한 내부도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협상장을 떠난 뒤 김정은 위원장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0월,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두 번 오르며 상징적인 메시지를 냈습니다. 김일성의 항일신화를 재현한 '혁명서사 복원 연출'이었죠. 하노이 이전의 김정은이 '개방의 고르바초프'였다면, 이후의 김정은은 '봉쇄의 브레즈네프, 스탈린'으로 변했습니다.

그 뒤로 김 위원장은 '웅대한 작전(2019~2024)'을 내세워 군사력 강화, 자립경제 확충, 대미 의존 탈피를 선언했습니다. 그 흐름이 지금의 미사일 고도화, 원산갈마지구 건설, 핵전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노이의 결렬은 단순한 회담 실패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분기점이었습니다."

하노이 실패 후에도 남북 간 친서 주고받아

―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쳐도 남북관계가 결국 멈춘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첫째, 장기 비전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금강산 행사며 6·15 1주년 기념행사까지 활발했죠. 그때는 다 잘 되는 줄 알았습니다. 장기발전전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베트남도, 북한도 (장기발전전략이) 다 있습니다.

둘째, 정책의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니까 대북정책이 계속 끊겼습니다. 계승이 안 됐습니다.

셋째, 남북문제가 늘 이념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조금만 진전돼도 남남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커지면 남북관계도 멈췄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한반도 문제가 지나치게 국제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하노이 회담이 깨지고 나서도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았습니다. 굉장히 공손하고 따뜻하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말이 자주 등장했어요. '우리 힘으로 하기에는 국제적 벽이 너무 높다', '우리 힘이 부족했다.', 두 가지에요. 그 뒤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으로 나아갔고요."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의 평행한 꿈

―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때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날까요.

"올해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때 김정은은 '우리가 이만큼 했다'는 걸 이미 보여줬어요. 내년 9차 당대회에서 그걸 마무리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성과를 정리하는 시기지 회담을 열 시기는 아닙니다. 물론 트럼프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면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는 있겠죠."

하노이 이후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트럼프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 이야기만 했어요. '평창올림픽은 내 덕분에 성공했다'고 자랑하고, 'LA올림픽(2028)을 제2의 평창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반면 김정은은 원산갈마 개발과 핵·미사일 강화로 '백두산 신화'를 완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창 신화', 하나는 '백두산 신화'를 쫓는 셈이죠. 저는 그걸 두 정상의 '평행한 꿈'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입니다. 북한은 내년 당대회 이후 몸집이 커졌다고 느낄 테고, 몸값을 세게 부를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감당할 돈이 없어요.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미국이 피스메이커, 한국이 페이스메이커'라는 구상이 중요합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전·현직 대통령.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틀을 만들었다면 노무현은 그 틀을 제도로 만들려 했고, 문재인은 사람과 감정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전·현직 대통령.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틀을 만들었다면 노무현은 그 틀을 제도로 만들려 했고, 문재인은 사람과 감정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 대통령기록관

세 대통령의 통일철학, 결과보다 과정

―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대통령의 통일 철학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세 분 다 평화를 지향했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큰 틀을 만든 사람이에요. 오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6·15 정상회담으로 문을 열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 틀을 제도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NSC를 정상화하고 '포괄안보'라는 개념을 넣은 게 그 시도였죠.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사람과 감정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창 단일팀, 남북 정상회담의 포옹, 백두산 공동 등정 같은 장면들이 그랬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대중은 틀(구조), 노무현은 제도, 문재인은 감정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결국 하나의 축을 이뤘죠. 세 분 모두 통일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셨다는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노련한 상대, 충돌하는 파트너, 따뜻한 안내자

― 세 분 대통령이 북한 수뇌부, 그러니까 수령과 맺은 관계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확실히 다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훨씬 연장자였고, 김정일 위원장도 국가를 오래 운영한 아주 노련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노련한 지도자들끼리의 관계였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학습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집권 2~3년 차쯤 되면 다자회의나 정상회담에서 의제 전체를 장악했어요.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노회한 김정일을 만나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죠. 실제로 '자주' 문제를 두고 격하게 논쟁했고, 회담이 깨질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거 안 되면 돌아가 버릴까' 생각할 만큼 치열했어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또 달랐습니다. 처음의 김정은은 제가 생각할 때 '소년소녀 가장' 같았어요. 막 지도자로 나왔지만 미숙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포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죠.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이야기해 주니까 김정은에게는 편안한 안내자였습니다. 하노이 회담이 깨진 뒤에는 김정은이 독자 노선을 가겠다고 했죠.

세 관계를 정리하자면, 김대중은 노련한 상대, 노무현은 부딪히는 파트너, 문재인은 따뜻한 안내자였습니다."

이재명 정부, 우리가 속도와 리듬을 만들 때

― 이재명 정부의 통일정책은 이전 정부와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보십니까.

"첫째,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써야 합니다.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지금은 새로운 '적대적 공존'의 시기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대화 중심의 한 흐름에 있었다면, 지금은 대결과 공존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예요.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피스메이커에서 페이스메이커로' 전환은 아주 옳다고 봅니다.

이전까지 우리는 평화를 중재하는 피스메이커였지만, 이제는 흐름과 리듬을 만드는 페이스메이커가 돼야 합니다. 미국이 피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우리는 속도와 방향을 조율해야 하죠.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이야기를 반복하는 건 페이스메이커가 아니에요.

둘째, 시기를 잘 봐야 합니다. 북한은 내년 노동당 9차 당대회까지 '웅대한 작전'을 완성하려 하고, 트럼프 2기 정부는 2028년 LA올림픽까지 장기 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3년이 우리의 기회 창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가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K-컬처 영향력, 외교와 평화의 자산으로 써야

"셋째, 앞으로의 동력은 문화와 브랜드 외교입니다. 지금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 K-컬처 영향력이 세계적입니다. 그 힘을 외교와 평화전략의 자산으로 써야 합니다.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북한 금강산과 한국 반구대 암각화 같은 남북 유산을 함께 보존하는 논의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직접 대화가 아니더라도 국제무대에서 협력의 장을 만들 수 있죠.

또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교황 방한 가능성도 있어요. 이재명 대통령이 교황 방북을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수십만 명이 한국을 찾는 그 무대에서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확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와 국제행사를 통해 직접 대화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평화의 공간을 여는 것, 그게 이 시대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말했다.

"통일은 정책이 아니라 사람의 일입니다."

그 한마디가 긴 대화의 결론이었다. 운동으로 시작해 행정으로 옮겨가며, 그는 '이념보다 신뢰, 제도보다 관계'가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민화협의 배 위에서, 개성의 회의장에서, 청와대의 회의실 안에서 그는 늘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남북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려면, 누가 먼저 나서야 하는가.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이제는 우리가 속도와 리듬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김대중이 문을 열고, 노무현이 틀을 두껍게 만들고, 문재인이 길을 넓혔다면, 지금은 그 길 위에서 한국이 '페이스메이커'로서 흐름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시간의 연장선이며, 여전히 남은 숙제다.

 10월 21일 인터뷰 장소인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1층 전시실에서 설명하는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10월 21일 인터뷰 장소인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1층 전시실에서 설명하는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 임미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북경협뉴스에도 실립니다.


#김창수#남북공동연락사무소#하노이북미정상회담#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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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리의 집중 인터뷰

사회운동, 사회계층, 사회변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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