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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이 되면 다양한 Pink Out Game 이 열린다. 특히 중고교의 인기 종목의 홈 경기는 기금 모금을위한 이벤트와 함께 Pink Out Game를 치른다. 24일(금), 우리 학군 고등학교 미식 축구팀이 분홍 팀복을 갖추고 몸을 풀고 있다.
10월이 되면 다양한 Pink Out Game 이 열린다. 특히 중고교의 인기 종목의 홈 경기는 기금 모금을위한 이벤트와 함께 Pink Out Game를 치른다. 24일(금), 우리 학군 고등학교 미식 축구팀이 분홍 팀복을 갖추고 몸을 풀고 있다. ⓒ 장소영

미국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그 집 옷장에는 색상별 티셔츠가 한 장씩은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입을 빨간색은 물론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 아일랜드 명절)에 입는 초록 티셔츠까지 학교에서 어떤 행사에 어떤 색의 옷을 입고 오라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중 꼭 챙겨두는 색상이 '분홍 티셔츠'이다. 미국의 10월은 핑크 물결로 시작된다.

우리 가족은 맨해튼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뉴욕의 주택가에 산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집으로 오는 짧은 거리에는 야구장 시설을 갖춘 두 개의 동네 작은 공원이 있다. 지난 주말에 지나가면서 보니, A 공원에서는 성인 야구팀으로 보이는 이들이 야구 경기 중이고, B 공원에서는 야구 경기를 끝낸 초등학생 야구팀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 분홍색 디자인의 팀복을 입었다. 공원을 오가는 차량에는 분홍 리본이 차창에 그려져 있다. '유방암 인식의 달(BCAM-Breast Cancer Awareness Month)'인 10월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분홍 리본의 시작과 변화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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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 캠페인은 1991년 뉴욕에서 분홍 리본을 단 유방암 생존자들의 마라톤 행사에서 시작됐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조차 유방암은 부정적인 인식이 컸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탓에 조기 발견과 치료도 늦었으며 따로 운영되는 지원 재단도 없었다.

그러다 유명 여성들이 용감하게 경험담을 나누고, 샬럿 헤일리 같은 자선가,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의 분홍 리본 캠페인 등 사회적 연대가 형성되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인식 개선 운동으로 이어졌다.

실제 유방암은 조기 발견과 치료 시 생존율이 90%를 넘는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가운데 유방암 환우가 하나도 없다는 이는 드물 것이다. 분홍 리본 캠페인이 여성을 넘어 모두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아야 할 이유다. 또한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캠퍼스에 붙은 유방암 연대 행사 공고 라는 유방암 관련 재단의 행사를 알리고 자원 봉사자를 구한다는 포스터가 한 대학 캠퍼스에 붙어있다. 10월이 다가오면 미국 곳곳이 핑크로 물든다.
캠퍼스에 붙은 유방암 연대 행사 공고라는 유방암 관련 재단의 행사를 알리고 자원 봉사자를 구한다는 포스터가 한 대학 캠퍼스에 붙어있다. 10월이 다가오면 미국 곳곳이 핑크로 물든다. ⓒ 장소영

기금 조성과 연대 아이디어 10월이면 자선 행사와 기부금 조성, 유방암 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가득 열린다.
기금 조성과 연대 아이디어10월이면 자선 행사와 기부금 조성, 유방암 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가득 열린다. ⓒ 장소영

핑크 리본 캠페인에 자주 쓰이는 슬로건은 '함께 싸워가자(Fight Together)'이다. 특히 교내 운동 경기와 함께 하는 핑크 리본 행사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투병에 대한 강한 의지와 긍정적인 시선,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큰 몫을 한다.

미식축구와 야구, 축구, 농구와 배구, 라크로스 등 인기 종목은 매년 10월 학교에서 열리는 홈경기를 'Pink out Game(핑크 아웃 게임)'으로 진행한다. 더불어 다양한 아이디어로 기금 모금에도 나선다.

딸아이 학교의 경우, 지난해에는 교내 치어리더팀이 핑크 아웃 경기를 위한 응원팀을 따로 모집해 특별한 치어리딩을 보여줬고, 올해는 여자 배구팀 경기에서 간식 판매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며, 교내 한 동아리에서는 리본 모양의 프리첼 판매를 통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동네 작은 식당의 선한 영향력

지난 15일, 한국에서는 한 패션잡지가 주최한 행사로 한동안 소음이 일었다. 행사 주제는 '유방암 인식 개선'이라고 내걸었지만, 행사 내용이 취지와 동떨어져 보여서 뉴스를 읽는 내내 씁쓸함을 느꼈다.

하필이면 같은 날, 우리 동네 주민 게시판에서 특별한 홍보 영상이 올라왔다. 유방암 인식 개선의 달을 맞아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 분홍 티셔츠 나눔 행사를 한단다.

처음에는 1달러를 기부하면 티셔츠를 준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누구라도 와서 티셔츠를 가져가면, 티셔츠 한 장당 1달러를 식당에서 유방암 연구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티셔츠도 가게에서 준비하고, 기부도 가게에서 할 테니 와서 분홍 티셔츠를 가져가기만 하라는 말이었다.

화요일(21일, 현지시간) 딸과 함께 식당에 가 보았다. 가게 앞에 미국의 마스코트 '엉클 샘' 커스튬 위에 티셔츠를 입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다. 우리를 보더니 환영한다며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손짓을 하셨다.

식당에서 나눠준 분홍 티셔츠 식당에서 준비한 티셔츠를 방문객이 가져가면, 티셔츠 한 장당 1달러씩 유방암을 위한 재단에 기부한다고 한다. 식당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문해서 옷을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식당에서 나눠준 분홍 티셔츠식당에서 준비한 티셔츠를 방문객이 가져가면, 티셔츠 한 장당 1달러씩 유방암을 위한 재단에 기부한다고 한다. 식당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문해서 옷을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 장소영

환한 얼굴로 자원봉사중인 앤디 식당 입구에 앉아 방문객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자원봉사자이다. 좋은 일에 봉사해 줘서 감사하다고 전하니,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자원봉사 역시 귀중한 연대이고, 이웃 섬김이다.
환한 얼굴로 자원봉사중인 앤디식당 입구에 앉아 방문객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자원봉사자이다. 좋은 일에 봉사해 줘서 감사하다고 전하니,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자원봉사 역시 귀중한 연대이고, 이웃 섬김이다. ⓒ 장소영

식당에 들어서니 마침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가족 중에 유방암 환우나 생존자(Survivor, 암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완치자)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라 바쁘신지 '어서 오세요. 핑크 셔츠? 저기!' 하더니 급히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티셔츠를 입은 식당 직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분홍 티셔츠를, 딸은 검은 바탕에 분홍색으로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 앞에 앉아 우리를 맞아 주신 분께 말을 걸어 보았다. 앤 할아버지는 직원은 아니고, 자원 봉사차 나왔다고 하셨다.

나의 친구도 유방암 생존자이며, 친구에게 행사 사진을 보여주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하자 에디는 '(그녀만이 아닌) 모두에게(for All)' 그럴 거라며 참 잘 왔다고 미소 지어 주셨다.

티셔츠 앞면은 리본 그림 위에 식당 이름과 'Fight Cancer(암과 싸우자)'라고, 뒷면에는 '10월은 유방암 인식 개선의 달'이라고 커다랗게 프린트돼 있었다. 식당 홍보를 겸한다 해도 주민 참여를 끌어낸 멋진 아이디어고, 신음하는 이웃을 위한 동네 작은 식당의 선한 영향력이라 여겨져 감동을 받았다.

'핑크'는 색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

분홍 경기복을 입고, 보호 장비에 분홍 리본 스티커를 붙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아이디어를 내가며 기금 모금을 하고, 분홍 티셔츠를 입고 걷기나 뛰기 행사를 하고, 선생님들은 분홍 넥타이와 스카프를 착용하고, 학생들은 분홍 양말을 신고, 동네 작은 식당에서 분홍 티셔츠를 나눠 주는 이유는 뭘까.

연대의 정신을 담은, 연대의 표현이다. 자신의 몸 일부가 사라지고, 복원 과정을 고민하고, 암과 싸우는 누군가의 긴 투병 과정은 결코 '셀럽' 파티로 소모될 주제가 아니다. 이번 행사를 반성한다고 하면서 다음 행사에는 핑크로 드레스 코드를 정하고, 분홍 장식으로 화려하게 도배된 공간에서 또 다른 그들만의 파티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공감과 연결이라는 연대의 정신은 여전히 빠진 채로 말이다.

식당에서 나눠준 분홍 티셔츠 유방암 투병자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분홍 티셔츠위에 리본, 식당이름, 암과 싸우자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방문객은 누구나 셔츠를 가져갈 수 있고, 셔츠 한 장당 기부도 식당에서 한다.
식당에서 나눠준 분홍 티셔츠유방암 투병자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분홍 티셔츠위에 리본, 식당이름, 암과 싸우자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방문객은 누구나 셔츠를 가져갈 수 있고, 셔츠 한 장당 기부도 식당에서 한다. ⓒ 장소영

#유방암인식개선의달#연대의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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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u1i1)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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