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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 중에 들려온 귀뚜라미 소리
한밤 중에 들려온 귀뚜라미 소리 ⓒ y_li on Unsplash

한밤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서 거실에 있는 나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어디에도 귀뚜라미는 없다. 하지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일어나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현관 구석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를 발견한다. 예전 같으면 당장 소리를 질러 대며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사는 집에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집에 있는 것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정겹다. 사람만 드나드는 집이 아닌 동물도 식물도 같이 사는 집이다. 귀뚜라미는 무언가를 피해서 집 안으로 들어온다고 하니 그대로 놓아두고 방으로 온다.

예전 왕실의 궁녀들은 고향이 그립거나 삶이 고될 때 귀뚜라미를 기르며 근심을 달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귀뚜라미를 '소울(soul)' 곤충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저 귀뚜라미를 방으로 데리고 와서 궁녀들처럼 마음 속 슬픔을 풀어놓고 싶다. 몇 달 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내 삶은 근본부터 달라졌다. 생각의 흐름이 바뀌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게 되었다.

내 마음을 감싸고 있던 막이 걷히자, 사랑이 보였다

 젊은 시절에는 싫어하였던 고양이를 나이 들어서는 무척 귀여워하였던 아버지
젊은 시절에는 싫어하였던 고양이를 나이 들어서는 무척 귀여워하였던 아버지 ⓒ 임혜영

어머니 집 목욕탕에 놓여 있던 작은 손잡이를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데 이제 보니 그건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 용도의 물건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많은 약 중에는 혈압이나 위장약 외에도 피부, 비뇨기과, 방광, 변비약 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약이 많았다. 나이가 드니 아버지의 배변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턱없이 길었다는 것, 결국 집에서 관장까지 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내 주위가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자세히 눈 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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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부모의 불합리한 행동과 강요를 탓하며 나는 그런 부모가 되지 않겠다 다짐한 적이 있다. 왜 나의 부모는 말이 통하지 않을까, 벽과 같을까 한탄하며 불만을 일삼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눈과 귀, 마음을 싸고 있던 막이 사르르 걷혔다. 강요라 생각했던 건 당신들 나름의 사랑 방법이었고, 매끄럽지 않은 표현 방식은 당신들 시대 때 배운 방법이었을 뿐이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부모의 행동은 우리 부모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의 표출이었다. 나는 구태의연한 부모가 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지금 그 누구보다 고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부모가 되어 있다. 남이 보기에는 자유를 존중하는 '쿨'한 부모 같으나 사실은 위선에 싸여 그럴싸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다.

니체가 말한 인간 정신의 세 단계가 떠오른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순응하는 낙타 단계를 거쳐 자신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에 화를 내고 분노하는 사자 단계를 지나면 순수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마지막 단계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이 들어 동물을 좋아하셨다. 젊은 날에는 싫어하였던 고양이, 강아지도 나이 들어서는 귀여워하셨고, 불편한 몸에도 손수 물고기와 거북이도 정성껏 돌보았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한참 들여다보며 살아있는 생물을 보는 즐거움을 때때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인간은 결국 작은 동물까지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게 맞나 보다.

나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을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모든 것에 순응하며 낙타처럼 살았다. 그러다 젊은 혈기에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에 잠식되어 불만이 일상인 삶을 살았다. 이제 나도 아버지처럼 어린아이 단계로 접어든 것일까. 집에 들어온 귀뚜라미 한 마리가 반갑고 신기하다. 왜 우리집까지 들어온 줄 모르겠으나 어머니 혼자 외롭게 사는 집에 들어와 우렁차게 귀뚤 거려주니 그마저 고맙고 눈물겹다.

인간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희망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인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눈을 떴다는 걸 작은 희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아버지도 집에 들어온 귀뚜라미를 외면하지 않고 작은 상추잎이라도 놔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니체#동물#귀뚜라미#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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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영 (yoyeshi) 내방

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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