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에 올랐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던 평화운동공동체 '개척자들'의 활동가 해초(27, 김아현)가 13일 <오마이뉴스>에 전달해 온 사진(오른쪽). 추방된 그는 함께 나포됐다가 아직 풀려나지 않은 프랑스 활동가들을 기다리며 현재 파리에 머물고 있다.
ⓒ 본인 제공
"제가 수감되며 만난 활동가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이 겪는 비참함을 참을 수 없어 항해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인도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가자지구의 봉쇄라도 깨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에 올랐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던 해초(27, 김아현)가 13일 오전 1시(한국 시간)께 <오마이뉴스>에 전한 말이다. 평화운동공동체 '개척자들'의 활동가인 그는 지난달 27일 자유함대연합(FFC) 소속의 '가자로 향하는 천개의 마들린호(TMTG)' 선단에 합류해 항해하던 중 지난 8일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뒤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틀 뒤 자진 추방된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다.
해초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함께 항해했던 프랑스 국적의 활동가들이 여전히 수감 상태"라며 "이들이 석방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머물고 있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 내로 한국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나포 당시 잠든 상태였는데 경고 알람을 듣고 깨어났을 때 이미 다가오는 이스라엘군 선박들의 불빛이 보였다"며 "군인들이 (우리) 선박에 탑승하자마자 모든 디지털 기기를 망가뜨렸고 이는 나포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가 설치한 CCTV를 차단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떠올렸다.
그는 "교도소 구금 상황은 열악했지만, 그곳의 다른 활동가들과 서로의 건강 상태와 감정을 나눴다. 부당한 일을 겪는 동료 활동가를 보면 함께 항의하기도 했다"며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폭력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가자지구로의 항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유서까지 썼다. 현재 가자지구는 구호 물품 전달과 인도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그곳의 봉쇄라도 깨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며 "한국이 이스라엘의 행위에 책임이 있어 결정하게 된 항해다. 지금이라도 무기 거래를 비롯한 이스라엘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해초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이스라엘군, 모든 디지털 기기 망가뜨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 내 유일한 한국인인 평화운동공동체 '개척자들'의 활동가 해초(27, 김아현)가 지난 6일 <오마이뉴스>에 전달해 온 사진. ⓒ 해초 제공
- 현재 어디 머물고 있나. 귀국 일정은 결정됐나.
"현재 프랑스 파리에 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가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추방됐다. 이후 다음 목적지를 정해야 했는데 나는 한국이 아닌 프랑스로 가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탑승한 배에는 총 4명이 있는데 나만 석방됐고 다른 프랑스 국적 활동가들은 아직 교도소에 있다. 그들이 석방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다. 다음 주나 다다음주에 귀국할 예정이다."
- 나포 당시 상황을 떠올린다면.
"당시는 나포 상황에 대비해 대처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잠든 밤이었다. 적어도 가자지구 해안선으로부터 100km 이내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새벽 교대를 마치고 잠들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군 선박들이 다가오며 경고 알람을 울렸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가오는 선박들의 불빛이 보였다. 내가 맡은 역할은 나포당하는 배들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외부에 전송한 뒤 바다에 버리는 것이었다. 이 일을 마치자마자 군인들이 도착했다.
군인들은 내가 탑승한 선박 내 모든 디지털 기기를 망가뜨리고 버렸다. 나포 상황을 외부에 알릴 수 있도록 설치한 CCTV를 차단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예상한다. 이후 (우리는) 거대한 군함으로 옮겨졌고 8시간 정도 이동해 교도소로 갔다. 이스라엘군의 나포가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 것 자체가 불법적인 식민 지배인 데다, 기선으로부터 12해리가 넘지 않는 곳을 특정 국가가 자신의 바다라고 명명할 수 없다. 가자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를 아무런 고지 없이 나포한 것은 불법적인 행위다."
- 케치오트 교도소 구금 상황은 어땠는가. 그곳에 갇힌 다른 활동가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굉장히 열악했고 엄청난 악취가 풍기는 곳이었다. 한 방에 활동가 5~6명 정도 수감됐다. 다른 활동가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언제 석방될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지금 마음 상태는 괜찮은지 서로에게 질문했다. 특히 그곳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는 동료 활동가가 있으면 함께 감옥 안에서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거나 그를 풀어 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이 어떠한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듯했다. 단순한 폭력으로 타인을 위협한다는 자체가 무지하기에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잔혹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 자진 추방 결정은 어떻게 내리게 됐나.
"서류를 작성할 때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상황이었고 충분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변호사 접견을 요청했지만, (현장에서는) '여기 변호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서명한 문서에는 '72시간 이후 강제 추방당한다는 것을 알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이번 일이 불법적인 행위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없어서 서명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현지 시각으로 지난 9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평화 협상 1단계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 가자지구로의 항해 소식이 알려지며 "왜 위험한 곳에 가나", "다른 구호단체가 가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유서까지 쓰고 갔다. 다만 그러한 반응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팔레스타인에는 구호 물품이나 인도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항공편을 통해 하늘에서 구호 물품을 떨어뜨리는 형식은 가능하나, 이조차 큰 비용이 들고 위험한 추락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항해의 목적은 가자지구의 봉쇄를 깨는 것이었다.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안전한 한국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안부를 걱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너무 명확했다."
- 한국 사회에 이번 항해가 어떤 반향을 남겼으면 하는가.
"(이번 항해가) 내 개인의 일이나 용기가 아닌 팔레스타인을 향한 한국 사회 내 시민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해됐으면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매주 팔레스타인 집회가 열리지만,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내가 이번 항해에 지원한 것도 한국이 이스라엘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한화가 이스라엘을 위한 무기를 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으로서 더 많은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 한국 사회나 한국 정부에 당부한다면.
"이스라엘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무기 거래는 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기에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보이고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항해는 그간 내가 해왔던 일들에 대한 또 하나의 걸음이었다. 특히 팔레스타인을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프랑스에 남아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내가 활동했던 제주로 돌아가 그곳에서 계속 투쟁할 것이다.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끝나지 않아 계속 우리와 함께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51차 긴급행동'이 지난 4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진행됐다. ⓒ 유지영
▲"우린 나포될 겁니다" 팔레스타인 목전 배 위, 보름달 만난 한국인의 호소
이진민,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