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설악산 초입 ⓒ 김지영
속초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의 웅장한 풍경을 떠올리지만, 그 길목에는 한때 속초의 대표 숙박 마을이었던 '도문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도문동은 속초 시내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과거 많은 여행객이 찾던 대표 관광 마을이었다. 지리적으로 대포항과 설악산 사이에 자리 잡아 맑은 공기와 효율적인 관광 동선을 자랑하는 지역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민박 문화지만, 예전에는 속초 고속터미널에서 버스에서 내릴 때면 민박집 사장들이 "방 있어요"라며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그러나 도문동 한옥마을은 굳이 그런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었다. 한 번 방문한 여행객들이 다시 찾는 재방문 고객이 많아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당시 도문동 민박촌은 관광객들에게 한국 전통문화 체험의 장이었고,자연과 어우러진 한옥의 멋은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특별한 문화 경험을 선사했다. 설악산과 동해 바다가 가까워 사계절 내내 다양한 여행객들이 찾았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속초 바다 ⓒ 김지영
우리 가족은 해마다 속초를 방문했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모님이 한옥마을 중에서도 가장 크고 예뻤던 민박집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에는 전통 한옥의 멋과 현대적 편의시설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이모님 덕분에 관광객들이 모르는 현지 맛집, 싱싱한 생선 구매법 등 그야말로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꿀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 앞 장사 없듯이, 도문동의 인기도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여행 문화가 급변하며 유럽식 펜션과 대형 리조트가 속속 등장했다. 이로 인해 전통 한옥 민박촌은 점차 그 자취를 잃어갔고, 지역 문화의 한 단면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 결과 민박촌의 영업은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이모님도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우리 가족의 속초 방문도 멀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도문동은 199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포동에 편입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잊혔다.
옛맛 그대로의 생선구이, 바다가 입안 가득 차오르네
이번 추석, 오랜만에 속초를 다시 찾았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가족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떠올리고 싶었다. 이 식당은 속초에서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모님을 따라 자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고기보다 생선을 더 좋아하는 외댁 식구들이라, 생선 요리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은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예전의 작은 노포 옆에 새 건물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식당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언제 입장하나' 짜증이 나기보다는, '여전히 맛있나 보군' 생각이 들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옛 건물에서 식사하고 싶었지만, 새 건물로 안내받았다. 예전엔 인심 좋은 여사장님이 직접 생선을 내오셨지만,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생선을 내왔다. 메뉴는 그대로다. 사실 메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단일 메뉴 하나뿐이다.

▲속초에서 신선한 생선을 숯불에 구워내는 생선구이 풍경. ⓒ 김지영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생선구이가 미리 구워져서 나오기 마련이다. 연기와 냄새, 번거로움 때문인데,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손님들도 옷에 냄새가 밸까봐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자리만 잡으면 숯이 채워지고, 신선한 생선이 테이블에 놓여진다. 그리고 직원이 직접 테이블에서 숯불에 생선을 구워준다. 주인장이 오랜 전통을 고집해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건비와 숯 비용이 더 들지만, 주인장은 전통 조리 방식을 고집하며 그 가치를 지켜왔다. 직접 숯불에 구워내는 생선은 옛 방식의 깊은 풍미와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속초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먹어보면 왜 이렇게 극찬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맛에 손님들은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줄을 서고, 주인장도 그 맛을 위해 직접 숯과 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숯불 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생선살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생선이 익어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그 향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창밖으로는 작은 어선들이 속초 바다와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바람결에 실려온 바다 냄새가 실내의 숯불 냄새와 어우러진다.
테이블마다 가족, 친구, 연인들이 둘러앉아 기다림의 설렘을 나누고 있다. 직원은 능숙한 손길로 생선을 뒤집으며, 노릇노릇하게 익은 살점을 살짝 들어 보여준다. 그 순간, 생선 표면에 맺힌 육즙이 반짝이고,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이 식욕을 자극한다. 생선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니, 바다의 신선함과 숯불의 깊은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아, 그렇구나! 속초는 여전히 변함없구나. 한옥민박촌이 사라지고, 생선구이집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채워졌지만, 그곳의 추억과 맛은 여전히 그대로다. 분명 도문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여행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