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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연휴 막바지에 가니 일상 복귀에 두려운 직장인들 현타가 오는 직장인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 말의 겉면에는 "일하기 싫다"는 농담이 덧칠돼 있지만, 그 속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우리는 사실 '일' 자체보다 '사람'이 더 두려운 것이다.
출근길의 무거움은 보고서나 회의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 말투, 공기, 기분,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긴장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해야 하는 연기가 우리를 정신적으로 소모시킨다.
일은 적어도 명확하다. 잘하면 끝나고, 못하면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는 '끝'이 없다. 눈빛 하나에도 해석이 필요하고, 말 한마디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일보다 더 복잡한 인간관계의 미로 속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미로에는 언제나 불이 약간 꺼져 있다.
연휴가 끝나고 다들 "잘 지냈어요?"라는 인사로 서로의 마음을 체크한다. 그 말은 사실 '이번 주도 무사히 지내보자'는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아무 일도 없기를, 불편한 말 한마디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필시 '제발 나 건드리지마'라는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명절 동안의 피로는 그래도 쉬면 풀린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는 잠을 자도 낫질 않는다. 그건 '긴장'이라는 정신적 피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누군가의 표정을 살피고, 말의 의도를 읽고, 감정을 맞춘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몸이 먼저 익힌 생존 방식이다. 마치 미어캣처럼.
명절 후 복귀가 두려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시 그 감정의 수영장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은 정해진 시간 안에만 나를 잡아두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점심시간에도, 퇴근길에도,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이어진다.
'오늘 내가 너무 냉정하게 말했나?'
'저 표정은 나한테 실망한 걸까?'
'내가 그 말을 안 했어야 했을까?'
하루의 끝에 일은 끝나지만, 사람은 끝나지 않는다. 연휴는 잠시 그 '사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가족과의 관계조차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회사 관계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곳에서는 나 자신이 진짜 '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린 사람 속에서 숨을 쉬지만 동시에 숨이 막히기도 한다 ⓒ Unsplash의Fatemeh Rezvani
감정을 관리하고, 미소를 조절하고, 나보다 타인의 눈치를 더 먼저 읽어야 한다. 그게 사회생활의 기술이자, 동시에 소모의 기술이다. 연휴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간다'고들 말하지만, 그 현실의 핵심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감정에 발을 맞추고, 말을 분석하고, 보이지 않는 관계망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그 인간적 피로의 세계. 그 세계에 다시 뛰어드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인간은 사회화라는 본능을 통해 진화했지만, 동시에 사회화 때문에 병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하기 싫다'는 감정이 드는 건, 그 일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일 때가 많다. 서로의 온도차, 거리감, 역할의 균열 같은 것들이작은 금속조각처럼 마음속에 쌓여간다. 만약 세상에 '관계의 휴가'가 있다면 어떨까. 아무에게도 미소 짓지 않아도 되는 하루, 말하지 않아도 오해받지 않는 하루, 그냥 조용히 존재만 해도 되는 시간.그런 날이 진짜 '쉼'이 아닐까.
모두 서서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출근 당일, 사회화 모드 ON!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열고,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모든 행동 아래엔 묵직한 피로가 깔려 있다. 그건 일이 아니라, 인간의 무게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견디며 살아간다. 결국 복귀가 두려운 건, 미완의 인간관계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괜찮아, 이번 주만 잘 넘기자."
우린 회사라는 사회 속에서 사회화의 욕구를 채우며 살지만, 그 안에서 동시에 '나'로 있고 싶은 욕구와 지겹도록 맞부딪힌다. 욕구와 욕구가 충돌하는 싸움에서, 우리는 서로가 자신을 너무 흔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괜찮아, 이번 주만 잘 넘기자"라는 모두의 중얼거림엔 이 마음이 내포돼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