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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정 대표
하수정 대표 ⓒ 최서영 = 하수정 대표 제공

ESG 경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 언뜻 들으면 '미래 세대를 위한 선언'처럼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ESG는 더 이상 이상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은 투자 수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자, 기업 생존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세계 자본시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는 석유와 가스 산업에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부 연기금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이 기금은 현재 약 2조 달러 규모로, 전 세계 주요 상장기업의 주식 약 1.4%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압도적인 규모로, 글로벌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투자자다.

이 거대한 펀드는 투자 원칙의 중심에 ESG를 두고 있다. ESG, 즉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요소를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평가한다. 환경 파괴, 인권 침해, 부패 등 위험이 큰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지속 가능성이 입증된 기업에는 장기적인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거대한 자본이 ESG를 말하면, 기업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이유다.

ESG가 어떻게 돈이 되는 경영으로 바뀌고 있는지 묻기 위해 지난 22일, ESG 전문가 하수정을 만났다.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을 전공하며 석사 학위를 받은 하수정 대표는 현재 북유럽연구소를 운영하며, 지속 가능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ESG 디지털 솔루션 기업 '홀바르(Hållbar)'를 이끌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말하는 투자 기준

 시위 현장 사진
시위 현장 사진 ⓒ 최서영

지난 8일, 노르웨이에서는 총선이 치러졌다. 선거를 앞두고 수도 오슬로 도심에서는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 대한 국부펀드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ESG 전문가 하수정 소장은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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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어요. 선거 일주일 전, 노르웨이의 중앙역부터 왕궁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광화문과 같은 '칼 요한스 거리'가 인파로 가득했어요."

- 왜 노르웨이 사람들이 특히 가자지구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가요?

"노르웨이는 노벨 평화상을 주는 나라답게 인권 문제에 민감해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 원칙적으로는 국부펀드가 정부와는 독자적으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는데, 총선 결과나 여론의 영향을 받나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죠. 한국은행이 정부와 분리된 것처럼, 노르웨이 중앙은행 산하의 국부펀드 운용팀도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긴 하지만, 윤리위원회 등 인물 구성에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 총선처럼 사회적 압력도 국부펀드에 영향을 줍니다. 결국 이 펀드의 돈은 국민을 위한 돈이에요. 아무리 독립적이라 해도 여론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죠."

총선에서는 노동당 좌파 연합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그리고 극우 정당인 진보당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하수정 소장은 정권의 변화가 '정도'의 차이를 가져올 뿐, '방향'은 같다고 설명했다.

"집권당인 노동당은 이전부터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좌파가 정권을 연장했으니 윤리 투자와 ESG 기조는 더 강화될 겁니다. 우파가 집권했더라도 이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투자 철회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슈였습니다. 이스라엘에 투자하고 있던 61개의 기업 중 23개를 이미 뺐습니다. 우파가 집권했더라도 여론을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이스라엘의 기업과 은행뿐 아니라, 전쟁에 연관된 기업에 투자를 철회하고 있었다. 지난 8월 26일, 미국 기업 캐터필러의 제품이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팔레스타인 주택 및 재산의 불법 철거에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NBIM은 지분을 매각했다.

"미국하고 외교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죠. 미국의 국무부에서도 노르웨이 정부에 공식으로 항의했어요. 그런데도 투자 철회가 진행됐던 것은,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노르웨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UN 기후변화 협약 탈퇴, 국제 기후 기금 지원 중단 등 미국은 지속가능성에 반(反)하는 길을 걷고 있다. 정반대로 향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미국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NBIM의 CEO 니콜라이 탕겐은 그린래시(greenlash : 기후 위기 대응에 반발하는 현상, green과 backlash의 합성어), 곧 반 ESG기조는 오히려 ESG 투자를 확대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하 소장 또한 같은 결로 이를 설명했다.

"이미 블랙록 같은 미국의 거대 투자사들도 ESG라는 용어를 직접 쓰지 않을 뿐, 투자 포트폴리오를 ESG 섹터로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스틴베스트(sustinvest, ESG 평가회사) 자료를 보면 ESG 투자가 수익률도 더 좋습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그렇고 대부분의 규모가 큰 투자에서는 돈을 잃지 않는 것, 투자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위험을 줄이는 지표가 바로 ESG죠. 어떤 기업이 수익률이 높다고 한들 산림을 파괴하고 노동 환경이 좋지 않다면 그 기업은 절대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니까요."

ESG는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다. 손익을 따져 봤을 때, 장기적으로는 ESG를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먼 이야기가 아니고, 현재 세대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석유에서 시작했으나,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발걸음

노르웨이는 1969년 자국령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로, 원유 산출국의 대열에 올라 1인 GDP 최상위권 국가가 됐다. 하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는 한정된 자원이다. 80년밖에 남지 않은 자원을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려는 방법으로, 그들은 천연자원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부펀드를 운영한다.

"노르웨이는 8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 전체를 전환하고 있어요.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자금을 비축하고,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이죠. 노르웨이 국영 정유회사였던 '스타트오일(Statoil)'이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솔루션 기업인 '에퀴노르(Equinor)'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그 예입니다. 기름이 많은 나라인데, 디젤을 가장 먼저 없앤 나라, 전기차만 신차로 등록할 수 있는 나라가 노르웨이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결별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예요."

하 소장은 이러한 노르웨이의 행보는 윤리적인 문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술 패권'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페리나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면, 다른 나라들이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르웨이를 찾게 돼요. 이러한 전환은 결국 지속가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는 전략인 셈입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기조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이 목표 한에서 최대의 수익을 추구한다. NBIM은 현재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약 8800개의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6600개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가짓수가 줄어드니까 갖고 있는 한 회사당 보유 지분이 늘어나잖아요. 그래서 이 지분을 늘려서 탄소 발자국, 노동 환경 등 적극적인 주주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하는데, 그 행보가 기대되죠."

국제 연기금은 지분 매입, 매각으로만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 주주의 역할을 행사하면서 ESG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기금을 보존하려는 방법이다.

"지난 삼성 반도체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백혈병 산재 사건이 있었을 때, 7개의 국제 연기금이 연대해서 진상 조사를 요구했어요. 노르웨이 국부펀드 외에도 지금 국제 연기금은 ESG 투자를 강화하는 분위기예요.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연기금이 손을 잡고 한 목소리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 외에도 국내 기업 중에도 ESG 경영 문제로 NBIM이 투자를 철회하거나 주주 활동을 한 사례가 있다. 영풍은 카드뮴 오염수를 불법 배출하여 환경오염 유발로 2022년에 투자에서 제외된 이후 여전히 블랙리스트에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거버넌스가 문제가 되어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 기업은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같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며 ESG 경영을 강화해야 할 것인가.

"고려아연 사례만 봐도, 지난해 말 지분 800억 원을 매각했다가 올해 다시 매입하면서 올해 1월에 있었던 임시 주총 안건 116건 중 89건이나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소액 주주 권한에는 찬성했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에는 반대하니 기업에 큰 압박이 될 수밖에 없어요.

한국 기업은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합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같은 기관 투자자는 주주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경영진이 내부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주주에게 경영 정보와 변화 내용을 공표하고, 반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연기금은 어떨까? 국제 연기금이 ESG로 나아가는 중에 한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의 연기금은 오일펀드에서 비롯된 노르웨이 국부펀드와는 재원과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하 소장은 국민연금은 노르웨이 펀드와 마찬가지로 '미래 세대를 위한 돈'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 연기금은 약 1200조 원으로 세계 3대 펀드 중 하나일 정도로 거대합니다. 이 거대한 자본의 힘을 잘 행사해야 합니다. 연금 소실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당장의 수익률에 연연해할 필요 없어요. 이제는 ESG 투자가 위험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이 점을 명확히 선언하고 투자 기조를 다져야 합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기업별로 최대 5%의 지분을 가진다면, 2025년 3월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지분율이 10%이상인 종목은 31개 기업에 이릅니다. 수익만을 위해 지분을 보유할 것이 아니라, 이 압도적인 지분을 이용해 주주 권한을 강하게 행사해야 해요."

지속가능성을 향한 발걸음을 돕기 위한 발걸음

홀바르(hållbar)는 스웨덴어로 '지속 가능한'을 뜻한다. 홀바르가 하고 있는 주요 사업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제작을 돕는 것이다.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것처럼, 코스피 상장사는 2030년까지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합니다. EU에서 요구하는 공개 항목이 1043개예요. 이 항목을 처음에는 작성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첫 보고서 작성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는 기업이 직접 이 데이터를 관리하고 리포팅할 수 있도록 데이터 주도권을 넘겨주는 교육을 병행합니다. 데이터의 주도권이 회사에게 있어야 실질적인 ESG 전략 수립이 가능합니다."

 AI모델로 확인하는 ESG 평가 지표, 홀바르 자료 제공
AI모델로 확인하는 ESG 평가 지표, 홀바르 자료 제공 ⓒ 하수정

홀바르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AI 모델도 만들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매각 가능성을 예측한다. 91개의 핵심 ESG 데이터를 비교하고 학습시켜, 특정 기업이 투자 철회(Divestment) 위험선에 들어와 있는지 진단한다.

예를 들어 기업들 데이터를 비교했을 때 '계약직 비율', '급여 차이', '여성 임원 비율' 등의 지표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기업은 이 지표를 바탕으로 다른 회사와 비교하며 어디를 개선해야 매각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 ESG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주주 소통 또한 저희의 업무입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같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가 요구하는 소통의 수준과 방식에 관해 자문을 받습니다. 투자자 서한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ESG 목표와 계획을 공표할지 등의 전략적 주주 관계(IR) 구축을 돕습니다."

'ESG 경영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많다'며 ESG를 비용이 아닌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인 사회적 목표다'고 밝혔다.

 ESG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투자 가능성, 홀바르 자료 제공
ESG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투자 가능성, 홀바르 자료 제공 ⓒ 하수정

끝으로 하수정 소장은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해 보기를 당부했다.

"총선을 앞둔 그 시기에, 제가 기차를 탔는데 제 옆에 노르웨이 베르겐에 사시는 시민분께 여쭤봤어요. 연기금 때문에 이렇게 거리에 나와서 사람들이 시위하고 있는데, 수익률을 포기해서라도 이렇게 이스라엘 주식을 다 팔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요. 그분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 남기는 돈인데, 미래 세대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데에 돈을 투자할 수는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부러웠어요. 작은 투자가 모이면 큰 힘이 되잖아요. 사람들이 개인 투자를 할 때에도, 우리가 주식을 사면 그 돈은 회사의 연구 개발 자금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수익률만 쫓기보다, '이 돈을 줘서 이 회사가 더 발전하면 사회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국부펀드#하수정#홀바르#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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