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단원FM 제2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최운경 방송국장의 모습. ⓒ 임용현
경기도 안산의 한쪽 구석, 오래된 건물 사이 작은 사무실에서 단원 FM은 하루의 문을 연다. 이곳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전한다는 일의 무게를 함께 느낀다. 이번 '다양한 노동이야기'에서는 지역 라디오를 제작하는 노동현장을 따라가 봤다. 인터뷰는 8월 9일 토요일 오후 단원 FM 방송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영상 시대에 굳이 라디오하는 이유
- 단원 FM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단원 FM은 경기 안산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로 안산시 단원구 일대에서 주파수 88.7MHz로 청취할 수 있습니다.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 허가를 받고, 같은 해 사단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2월 송출 허가를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설립 자금이 없어 유튜브로 방송을 시작했어요.
안산은 이주민이 정말 많이 거주하는 도시인데, 방송이나 뉴스에서는 교통사고, 범죄처럼 부정적인 사건이 있을 때만 주로 다뤄집니다. 안산의 수많은 마을, 공동체, 노동자, 이주민의 '좋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안산에 공동체 라디오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단원 FM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으려고 만들어졌습니다."
- 공동체 라디오란 무엇인가요? 기존 방송이나 영상 미디어와 어떤 점이 다르고, 단원 FM은 어떤 정체성과 역할을 가지고 있나요?
"전국에 24개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있습니다. 공동체 라디오의 특징은 마을·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소소한 고민,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는 데 있습니다. 기성 언론에서는 전국 단위로 큰 이슈만 다루게 되지만, 공동체 라디오는 그 반대예요. 동네, 마을, 혹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거죠.
다른 국가의 공동체 라디오 사례를 보면, 미국이나 호주처럼 땅이 넓거나 영국처럼 이주민이 많은 나라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팔에는 320여 개 공동체 라디오가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까지 소소한 방송국들이 운영되고 마을 사람의 생활·문화·재난 정보를 주로 직접 전달합니다."
- 유튜브 등 영상 중심의 미디어가 대세인 시대에 라디오 방송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엔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요즘은 누구나 영상을 찍고 올릴 수 있고, 유명한 유튜브 채널만 봐도 듣는 것보다 보는 게 훨씬 쉽고 접근성이 좋잖아요. 그리고 젊은 세대는 아예 TV도 잘 안 보고 휴대폰으로 동영상만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단원FM을 시작하고 다양한 시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얼굴이 안 나간다'는 라디오방송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영상 노출을 주저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라디오는 오롯이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어 출연자분들이 안정감을 느낍니다. '얼굴 안 나오니 편하게 본심을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또 한 가지는 유지의 편의성이에요. 유튜브는 직접 촬영·편집·업로드까지 모든 과정을 익혀야 하니 꾸준히 운영하기 쉽지 않아요. 반면 라디오는 간단한 방송 장비로 교육도 쉬워서 연세 드신 분이나 어린이, 활동가분들도 금방 적응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 10분 배우면 조작 가능, 누구나 환영합니다"

▲단원FM 최운경 방송국장은 가장 크게 보람을 느끼게 되는 순간으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현실의 문제 해결에 하나의 계기가 되는 플랫폼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할 때"라고 말한다. ⓒ 임용현
- 단원FM에서 라디오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미디어 활동에 관심이 있었나요?
"안산에 오기 전까지는 미디어와 거의 인연이 없었습니다. 고향은 전북 전주인데, IMF 시절 무작정 서울에 왔다가 일자리도, 집도 구하기 힘들어서 친구의 권유로 1998년에 안산으로 내려오게 됐죠.
처음엔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기르다보니 교육환경을 고민하게 됐고, 지역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을 활동 20여 년, 시민기자 활동 10년, 작은 도서관 설립 등 지역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네트워크 구축하는 일들을 계속해왔어요. 라디오 설립 당시 본부장님께서 마을과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그래서 여러 활동을 했던 제가 낙점된 거 같습니다."
- 단원FM 라디오방송은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지나요?
"프로그램 제작은 완전히 '직접 손으로' 하는 방식이에요. 방송 콘솔부터 음향, 녹음까지 출연자가 직접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간단하게 세팅해서 제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10분 만에 배울 정도로 조작이 쉽습니다.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라디오방송이다 보니 음악방송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원FM은 '소수자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기에 여성, 청소년, 노인,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이주민 등 사회 각 층위의 목소리를 골고루 담을 수 있도록 신경을 씁니다.
방송 시간은 원칙적으로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17시간을 합니다. BGM으로 음악만 송출할 때도 많고, 오전 10시에는 노동·생태·통일·페미니즘·지역 이슈 등 주제별로 편성됩니다. 목요일 오후 7~9시 음악방송만 생방송 진행이고 나머지는 사전 녹음으로 합니다.
프로그램은 '테마가 있는 음악', '천원석의 횡설수설 인문학', '옛날옛적 갓날갓적', '월담의 노동it수다', '페미니즘은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등 다양합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생님, 작가, 시민단체 활동가라서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문턱이 있는데요. 초대손님으로 직접 출연해보면 생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 재정은 어떻게 유지되나요?
"후원회원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지원받는 후원금이 월 180~210만 원인데 고정 지출은 280~300만 원입니다. 월평균 100만 원 적자가 계속 발생합니다. 방송 광고·공익광고 지원, 정부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지원을 받으면 운영은 안정되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어 양날의 검입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세웠던 '문화에 대해서는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예술계에 대한 지원원칙이 절실합니다."
"라디오 듣고 소개·후원 연락... 작은 동력 체감합니다"
- 라디오 활동을 하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기억에 남는 순간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거나, 조회 수가 높았던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보람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현실의 문제 해결에 하나의 계기가 되는 플랫폼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할 때였습니다.
예를 들어, 김태현 선생님이 진행하던 '문화랑 예술이랑' 프로그램에서는 안산 지역의 예술가들을 직접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많이 가졌어요. 윤석열 정부 이후 각종 기관 지원이 끊겨 지역 예술가들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단원FM에서 이분들 이야기를 들려주니, 평생학습관이나 문화행사 주최 측에서 '그분 소개 좀 해달라' 연락이 와서 이분들이 강의나 공연 기회가 생겼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는데, 외부 프로그램에서 단원FM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해주는데 단원FM만 해주더라'는 이야기에 힘을 얻어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연락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방송을 계기로 후원이 늘거나, 각자의 활동에 작은 동력이 생기는 걸 체감할 때 참 뿌듯합니다."
-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요즘은 시민사회 단체 전체가 파편화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각자 자기가 맡은 일, 조직의 생존만 챙기느라 협력하기가 쉽지 않죠. 서로가 얼마나 힘든지, 연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르지 않지만 '손 좀 잡아달라' 할 때 진짜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에요. 이건 단순히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원, 인근 지역,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들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활동가들만큼은 날 선 감각과 예민함을 가지고, 사회가 예전에 겪었던 실패의 길로 다시 가지 않도록 계속 견디고, 말하고, 서로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 세상은 쉽게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각자 힘들어도 누군가는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장영우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선전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