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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8 13:47최종 업데이트 25.09.08 17:12

이제 검찰은 이렇게 된다

한국 검찰의 다가올 미래, 영국 공소청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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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인 가운데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되 시행 시기는 내년 9월로 1년간 유예키로 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및 국가수사위원회 신설 여부 등은 정부조직법 처리 이후 세부 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인 가운데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되 시행 시기는 내년 9월로 1년간 유예키로 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및 국가수사위원회 신설 여부 등은 정부조직법 처리 이후 세부 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9월 7일, 주말 오후의 평온함을 깨뜨리며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검찰청이 설립 7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 공소청은 법무부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행정안전부로 간다는 소식이다.

주말에 이런 폭탄급 발표를 하다니, 정부도 참 센스 있다. 아마 검찰 관계자들은 편안한 주말 오후를 보내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변화가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 궁금해진다. 우리가 만들게 될 공소청이란 게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막연히 '수사권 빼고 기소만 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갈까? 다행히 우리에게는 좋은 참고 사례가 있다. 바로 영국의 공소청(The Crown Prosecution Service, CPS)이다.

영국의 기소 전문가들

 영국 공소청 로고
영국 공소청 로고 ⓒ 영국 공소청
 영국 기소청 홈페이지
영국 기소청 홈페이지 ⓒ CPS

영국 공소청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경찰과 다른 수사기관이 조사한 형사 사건을 기소하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왕실 기소청'인데, 이름부터가 참 격이 있어 보인다. 우리도 공소청이 생기면 '대한민국 공소청'이라고 부르게 될 텐데, 과연 그 위엄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영국 공소청에는 2024년 기준으로 약 7,740명의 직원이 있으며, 그중 3분의 1가량이 검사다. 나머지 3분의 2는 서류정리, 회의록 작성 등 행정지원 공무원이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기소철학

 영국 공소청은 2023~24년도에 총 42만여 건의 기소를 완결했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1,1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국 공소청은 2023~24년도에 총 42만여 건의 기소를 완결했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1,1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CPS

영국 공소청은 2023~24년도에 총 42만여 건의 기소를 완결했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1,1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나라 검찰이 수사부터 기소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해서 항상 바쁘다고 하는 걸 보면, 영국 공소청 사람들은 정말 여유로워 보인다. 수사는 경찰이 다 해주고, 자기들은 그냥 "이거 기소할까 말까?"만 판단하면 되니까. 마치 음식은 다 만들어놓고 간만 봐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독립성이라는 이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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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소청은 경찰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느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을 받아왔지 않나.

영국식으로 하면 이런 문제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정치권에서 "이 사건 좀 봐 달라"라고 해도 "저희는 독립기관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니까.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조직

영국 공소청의 주요 책임은 경찰과 다른 수사기관에 법적 조언을 제공하고, 수사 후 용의자를 기소할지 결정하며, 치안법원과 형사법원에서 기소를 진행하는 것이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경찰이 "이 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법리를 꿰뚫고 있어야 제대로 답변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 검사들도 이제 수사는 안 하고 이런 일에만 집중하게 되면 정말 기소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규모의 경제학

영국 공소청이 연간 42만여 건의 사건을 처리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 정도 규모면 정말 공장식으로 돌아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검찰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해야 해서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국처럼 기소 업무에만 집중하면 한 건 한 건을 더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조직 개편의 아픔과 기쁨

9월 7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검찰청 폐지는 이제 현실이 됐다. 77년 역사의 검찰청이 마침내 막을 내린다. 검찰로서는 권한이 대폭 줄어들어서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훨씬 편해질 수도 있다.

수사는 정말 고된 일이다. 밤늦게까지 용의자 조사하고, 증거 수집하러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피해자 가족들 달래고... 이제 그런 일은 경찰과 중수청에 맡기고, 검사들은 말끔한 사무실에서 서류만 검토하면 된다. 어쩌면 검사들에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향한 한 걸음

영국 공소청을 보면서 느끼는 건, 역시 분업의 힘이다. 각자 전문 분야에 집중할 때 전체적인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수사는 수사 전문가가, 기소는 기소 전문가가 맡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우려도 있다. 기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수 있고, 책임 소재가 애매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차 해결될 것이다.

검찰 개혁은 단순히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게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 체계를 더 합리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영국 공소청의 사례를 보면, 기소 전문 기관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도 곧 영국식 공소청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 공소청은 영국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한국적 특색을 만들어낼까?

법무부 산하 공소청, 행정안전부 산하 중수청. 이름만 들어도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느낌이 든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건 지켜보는 일뿐이다. 공소청이 정말로 '공정한 소추를 하는 청'이 되길 바라면서.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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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wadans) 내방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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