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의 글쓰기”를 펴낸 이가령 작가 ⓒ 김슬옹
SNS 후기부터 자기소개서까지, 우리는 매일 글로 소통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특별한 소재'와 '화려한 문체'에 매달리며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30여 년간 글쓰기를 가르쳐온 이가령 작가는 "일상 속 평범한 순간에도 충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라며 "글쓰기는 넓게 펼치는 것이 아니라 좁게 파고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2일 익선동 어느 카페에서 이가령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글의 주제를 정할 때는 욕심을 부려 이것저것 다 담으려 하지 말고, 한 우물만 파듯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고수의 글쓰기 비법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평범한 내 경험도 재미 있는 이야기나 감동적인 글이 될 수 있을까요?
"평범한 경험도 재구성하기에 따라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단순 나열식으로 쓰기보다는 읽는 이의 느낌을 좋게 만들어주는 창의적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같은 공원에 다녀온 이야기라도 쓰는 법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어제 집 근처 공원에 갔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았다"라고 담담히 적는 대신,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문득, 한참 지나간 가을 냄새가 남아 있는 걸 깨달았다"처럼 한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듯이 써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상의 한 조각도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지, 소재의 화려함 그 자체가 아닙니다."
- 감정이나 느낌은 솔직하게 "~했다"라고 직접 표현해야 잘 전달되지 않나요? 에둘러 묘사하면 오히려 모호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느낌이 아닌 장면을 쓰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즉, 감정을 직접 말하지 말고 행동과 장면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글에서 '너무 짜증이 났다'라고만 쓰지 말고, '손에 힘을 주며 볼펜을 세게 눌렀다. 종이가 찢어질 듯했다'처럼 화가 난 순간의 구체적인 행동을 그려 보이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독자는 글쓴이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상황을 통해 느끼게 되며,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이처럼 구체적 묘사와 문단 구성 등으로 장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력 있는 글입니다."
- 어휘력을 높이려면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글에 고급지고 특이한 표현이 넘칠수록 더 잘 쓴 글 아닌가요?
"어려운 말이 능사는 아닙니다. 막연히 단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품격을 바꾸는 적절한 단어 선택'이 어휘력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고급 단어라도 문맥에 맞지 않으면 의미 전달이 힘들고, 독자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아는 말로, 단순하게' 써야 독자에게 명확히 다가갑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말 '권고하다' 대신 쉬운 말 '권하다', 외래어 '이니셔티브를 잡다' 대신 '주도권을 잡다'처럼 누구나 바로 이해할 말을 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한 단어라도 맥락에 딱 들어맞는 정확한 어휘를 골라 표현하면 그것이 곧 글의 품격이 됩니다. 결국 풍부한 어휘력은 수많은 어려운 말을 아는 데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말을 고르는 능력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 책에서 '철학 녹이기'가 마지막 단계라는데, 일상 글에도 그런 깊은 의미나 철학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철학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글쓰기에 임하는 태도와 자신의 목소리를 뜻합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내 글에 내 관점과 가치관이 배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문장이라도 거기에 나만의 생각과 목소리를 녹여내면 그것이 곧 글의 철학이 됩니다.
또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꾸준히 멈추지 않고 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빠짐없이 쓰고 다듬어 보는 과정 자체가 글쓴이의 철학이자 글에 깊이를 더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결국 잘 읽히는 글은 글쓴이의 진솔한 삶의 기록이자 독자와 주고받는 대화로서, 글쓴이의 태도가 배어 있을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는 것이죠."
-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 활발히 글쓰기 강의와 교육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가르치는 동기가 무엇인가요?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지닌 글쓰기 능력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 일이 평생의 보람이라고 여겨 지금도 새로운 수강생들을 만나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글쓰기로 성장시키는 것, 그것이 쉬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 어느 매체에서 인공 지능 시대에 글쓰기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어떤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지요?
"인공지능은 정보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 탁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진심 어린 감정입니다. 저는 그래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와 '인공지능을 넘어설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료 조사, 초안 작성, 구조 설계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되, 나만의 목소리와 살아 있는 체험은 반드시 스스로 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공지능을 이기는 글쓰기'입니다.
인공지능이 언어를 아무리 정교하게 흉내 낸다 해도, 살아 있는 체험에서 우러난 문장은 결코 복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에서 수강생들이 격려의 채팅을 쏟아내 주셔서 강사의 마음에 꽃송이가 만개하는 순간, 또 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회복되어 육개장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느낀 안도감 같은 감정은 인공지능이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이런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은 인간만의 고유한 자산이며, 글쓰기는 결국 그 '살아낸 흔적'을 담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앞으로도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글쓰기 실력이 인생을 바꾸는 시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우리는 SNS 후기, 자기소개서, 기획서처럼 일상에서 늘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한다. 취업부터 인간관계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역량이다. 결국 글쓰기 능력은 특정 직업군만의 무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도구인 셈이니 누구나 글쓰기 고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와의 대화 속에서 얻은 결론이다.

▲≪고수의 글쓰기≫ 표지 ⓒ 유노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