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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이 있으면 언제나 그곳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과 그곳에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먼저 찾아온다. 예로부터 이런 사람들은 '탐험가' 혹은 '모험가'처럼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으나 그 이면에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있다. 토지와 자본이 동의어가 될 때 땅을 그대로 두는 일은 낭비가 되니까.

그리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생명들의 고통이나 비명에 공감하는 사람들, 한 번이라도 나를 다른 생명에 대입해 본 사람들이다. 그들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과 새와 물고기와 나무들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 그러니 인간의 욕망 아래 자연을 해치려 할 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아메리카 선주민을 비롯한 많은 인류들은 토지를 사고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땅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땅의 일부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하고 싶은 사람들도,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도 모두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한 쪽은 다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는 반면, 한 쪽은 너를 죽이고 내가 사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구례에는 다 함께 살고 싶은 '비인간동물' 정정환 씨가 있다. 3대째 구례에서 살아왔지만 토박이도, 외지인도 아니라는 그는 학교 대신 산으로 다니며 배우고 자란 독특한 이력이 있다. 새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자라서 어떻게 활동가가 되었는지, 지리산권의 개발 논쟁인 골프장, 케이블카, 양수발전소는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들어보기 위해 '지리산사람들' 사무실에서 정환 씨를 만났다.

 지리산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난 정정환 씨
지리산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난 정정환 씨 ⓒ 임현택

# 구례 중산리로 들어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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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 씨는 활동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구례에서 나고 자란 구례 토박이다. 시골을 좋아했던 할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중산리로 들어와 화전민처럼 살다가 박정희 정권의 소개령 이후 현재 정환 씨가 사는 마을 집으로 내려왔다. 정환 씨의 아버지는 일을 위해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구례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시골생활을 이어나갔다. 한약방에서 정환 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한 이후였다.

"어머니는 경상도 하동 분이신데 아버지가 일하던 한약방에서 경리 보시다가 만나서 내려오셨어요. 처음에는 염소도 키우셨는데 나중에는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의술과 죽염을 만들어서 치유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셨어요. 먹는 걸로 사람을 치유하는 방식을 꾸준히 연구하셨어요."

독특한 이 가족의 삶의 방식은 정환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한 가족 분위기 때문인지 정환 씨는 초등학교부터 홈스쿨링으로 전환해 집에서 공부하는 시골 어린이가 되었다. 허나 마을에서는 아이를 방치한다고 말이 돌고, 설득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환 씨 가족에게 학교는 좋은 선택지가 되진 않았다.

"형이 저보다 두 살 많아서 먼저 학교에 들어갔죠. 어느 날 형이 아버지한테 학교 가기 싫다고 얘기한 거예요. 아버지도 마침 집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대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하는 틀에 박힌 교육이 싫었는데 마침 아들이 그런 얘길 하니까 너무 반가워서 그때부터 학교에 통보도 안 하고 안 보내버린 거예요. 그래서 학교에서 찾아오고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형은 아마도 선생님에게 맞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괴롭힘도 당했던 것 같아요. 학교 폭력이었죠. 형이 그때 유치원 과정을 전혀 안 거치고 갑자기 학교에 들어가니까 숫자 읽을 줄도 몰라, 시계 볼 줄도 모르다보니까 적응을 못했거든요. 선생님이 답답하니까 때리기도 하고 아이들은 모른다고 또 놀려서 싫었던 거죠. 그렇게 형은 홈스쿨링을 하고 자연스럽게 저도 따라하게 됐어요."

비교와 무시가 가득한 세상에서 정환 씨가 자기를 괴롭히거나 타인이 정환 씨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게 전혀 없었어요. 저는 좀 무던하고 소심한 편이라 형이 대학갈 때 아버지랑 갈등하던 거 보면서 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생기더라고요. 활동가로 사는 지금도 주변에서 학위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들 많아요. '학위가 있어야 네가 말해도 말빨이 선다' 그러면서요. 납득은 돼요. 요즘엔 우리나라가 진짜 학벌사회라는 게 느껴지고 학위가 있으면 제 활동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데 그 과정을 밟는 게 상상이 잘 안돼요. 저는 '사람은 진실성을 갖고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진실성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죠. 그래서 후회하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 위치에 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패딩을 껴입고 탐조하는 정정환 씨와 동료들
패딩을 껴입고 탐조하는 정정환 씨와 동료들 ⓒ 정정환 제공

# 마을 산이 나의 학교

정환 씨는 학교에 투자할 시간을 산에 쏟았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정환 씨에게 산으로 가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하는 열 살 어린이의 일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저녁시간에는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낮에는 자유롭게 앞산을 돌아다녔다. 새들과의 첫 만남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때 앞산에 올라가면 거긴 밤밭이에요. 그 오솔길을 올라가다 보면 딱 숨이 찰 지점에 히어리나무 터널이 나와요. 그 옆엔 얼레지 밭이었고요. 그런데 히어리나무가 가지가 많다보니까 새가 되게 많이 앉아 있거든요. 몸도 힘들고 하니 쉬면서 새를 보는 거죠. 보다보니 관심을 갖게 되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자주 보면서 새들 하나하나의 이름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는 집에 인터넷도 안 들어왔고 TV도 안테나 돌려서 켜는 방식이었어요. 바람이 불면 TV가 안 나와요. 그러니 정보는 없고, 조류도감도 없었어요.

그래서 새들 특징을 살려서 직접 이름을 지었어요. 박새 같은 경우는 수염이 좀 길어요. 그러다 보니까 '관우새', 쇠박새는 수염이 조금 있으니까 '유비새', 진박새는 수염이 넓거든요. 그러니까 '장비새'. 이런식으로 이름을 지어주다가 보니 새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나중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나서 LG상록재단에서 나온 <한국의 새(야외원색도감)>라는 조류도감을 바로 사서 새 이름을 알기 시작했죠."

새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새의 먹이와 일상, 서식지로 옮겨갔다. 정환 씨를 지구 시민으로 만든 건 학교가 아닌 자연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제가 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게 그 히어리나무와 밤밭이 없어지고나면서 부터예요. 산주가 수종 개량을 하겠다고 거기를 싹 밀고 편백나무를 심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산이라는 게 한 개인이 소유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거기에서 새를 100종 넘게 봤거든요. 제가 구례와 섬진강 권역에서 기록한 게 140종이 넘어요. 보통 탐조인들은 100종을 찾으려고 전국을 떠돌거든요. 아무튼 거기서 머물던 새를 떠올리면서 쟤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고 어떤 환경에서는 힘들구나를 알게 되는거죠. 예를 들어 도요새 같은 경우는 갯벌이 사라지면 되게 큰 위험을 겪는구나 하고요."

"어떤 공간에는 수많은 생명들의 기억과 생각이 깃들어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면 한 개인이 자연을 돈 주고 샀다고 마음대로 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럼 거기서 사라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예요. 역사도 사라지고, 한 사람의 추억도 사라지고, 모든 삶도 사라질 수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그래서 산림청 숲가꾸기 사업이나 벌채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가 산불과 산사태 문제까지 확장됐어요. 이 문제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 연결돼 있어요."

정환 씨는 내친김에 우리나라 탐조 문화의 아쉬운 점도 이야기 했다. 단지 새를 관찰하는 일에서 경쟁적으로 희귀종이나 더 많은 종을 발견하는데 치중되어 있다고.

"우리나라 탐조 문화가 예전부터 좀 잘못됐던 게 기록 중심의 문화거든요. 내가 100종을 발견했다, 아니면 신종을 기록했다는 식으로 무언가를 선점하고 1등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경쟁을 해요. 그러다 보니 귀한 새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자리에 장사진을 펼쳐요. 작년 12월에 발견된 뿔호반새처럼요. 걔네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얘네들이 사는 곳이 훼손돼서 어떤 문제를 겪는지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고 얘기할 수 있는 교육적인 게 문화가 돼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게 좀 아쉽죠."

 순천만 국제정원 앞에서 '지리산골프장 추진 중단하라!' 현수막을 든 활동가들
순천만 국제정원 앞에서 '지리산골프장 추진 중단하라!' 현수막을 든 활동가들 ⓒ 정정환 제공


# 사는 곳을 넘어 지키는 곳으로

정환 씨는 서른 살이 되기까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매일 산으로 새를 보러 다녔고, 가을이면 능이버섯을 따러다녔다. 무수히 주는 자연 안에서 딱 하루 치의 식량을 채집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른 살 즈음에 생태조사를 한 번 따라간 것이 흥미로웠고, 서른 살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외부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다 2023년 양수댐 논쟁 이후로 본격적으로 '지리산사람들'에 소속되어 활동가의 삶으로 접어들었다. 절대적 시간은 적지만 그는 벌써 커다란 활동가가 된 것만 같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삶 자체가 자연의 사고방식을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처음 겪었던 게 골프장 벌목지였어요. 평소에는 저희 가족도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하다 보니 큰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가까이에서 나무가 쓰러진 걸 보니까 학살의 현장 같은 느낌이었어요. 벌목지 마을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그곳을 처절하게 지키려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어떤 할머니는 "내가 저기 산에 가서 나무에 확 목 매달고 죽어버리면 이 군수 놈이 안 하지 않겠냐"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길 들으니 꼭 막아야겠다, 이 마을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어쨌든 조류 쪽이니까 그때부터 새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면서 팔색조, 꾀꼬리, 딱새, 밤에는 소쩍새 같은 법정 보호종 다 찾아서 기록하고 포유류 조사나 식생조사도 따라가서 같이 조사했어요."

본격적인 활동에 접어들자 지리산과 섬진강권의 문제는 산적해 있었고, 정환 씨는 이 문제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무엇이 핵심 문제인지 알아갔다. 2025년 3월 지리산권을 비롯한 전국에는 거대한 산불이 일어났고, 7월에는 물난리가 났다. 정환 씨는 현재 지리산사람들이 대응하는 현안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숲 정책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2023년에 있었던 골프장 사업 추진으로 산동면 사포마을의 생태자연도 등급을 하락시키면서 개발하기 쉬운 땅으로 바꾸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개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올해 지리산권의 산불 문제도 숲 정책 떄문이거든요. 산림청 중심으로 펼쳐지는 숲 가꾸기나 벌목, 조림의 문제예요. 이걸 좀 적극적으로 대처해보자고 해서 현장 조사도 다니고 안동이나 다른 지역의 설명회도 들으러 갔어요. 최근에는 또 산청군에 수해와 산사태가 났는데, 그것도 정밀하게 분석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산청군 철수마을에서도 골프장 문제 대응하고 있고요. 이렇게 지리산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다 연결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 산과 숲 문제와 연결돼 있어요."

이외에도 앞으로 계획 중인 활동으로 무엇이 있을까.

"섬진강 권역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전혀 없어서 대응주체를 만드려고 해요. 곡성에서도 지난 12월에 <보성강 하천 정비 기본계획>이라는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이 나왔더라고요. 섬진강과 보성강이 연결되어 있다보니 하나의 수계로 볼 수 있거든요. 그 자료를 검토해 보니까 제가 조사한 새들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어요. 보성강은 진짜 겨울만 되면 제가 돌아다니면서 조사를 하거든요. 여기가 섬진강에서 두 번째로 '호사비오리'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예요. 완전 부실 조사인 거죠.

그리고 어류 조사를 보니까 5종 정도만 나왔다고 했는데, 저희가 지류 하천에서만 잡아도 10종 이상 나오거든요. 수달도 서식하고 있는데 이 자료에서는 문헌 조사에서만 나왔다고 하고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 문제에 관심있는 친구하고 같이 조사했어요. 전남대 여수캠퍼스 학생들 7명과 함께 실제 조사를 해보니 보성강 본류 2지점에서 멸종위기종 3종이 나왔고, 지점 별로 20종씩 나왔어요. 자료를 정리해서 의견서를 들고 주체를 찾아가니 합동조사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양한 종이 나오는 걸 다 보여줬어요. 그 이후에는 검토하겠다고만 하고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은 공개가 되지만 본안은 공개의무가 없어요. 그래서 본안을 보여주면 우리가 이슈로 하지 않고 협의를 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자리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어요. 곡성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저희 활동을 보고 저희 자료를 받고서 잘 정리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곡성 쪽도 송전탑, 풍력발전소, 태양광, 양수발전소, 골프장까지 시끌시끌해요. 근데 사안 별로 대책위가 꾸려져서 한 두 사람이 대응하는 정도라서 이걸 섬진강 전체 권역으로 연석회의체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정환 씨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벚나무 아래에서 문화제를 열었다.
정정환 씨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벚나무 아래에서 문화제를 열었다. ⓒ 정정환 제공

# 활동가로 사는 법

이렇게 수많은 사안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면 공부도 많이 필요하고, 실천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쁜 때에 정환 씨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활동과 일상을 잘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보통 초기 대응부터 하면 도시계획 심의나 지구단위 계획 같은 과정이 있으니까 전 과정을 알아야 하더라고요. 한국 법령 사이트도 많이 들어가서 별첨을 한참 찾아서 뒤져보고 그래요. 그래서 머릿 속에 정리가 되면 공유하는 거죠. 이슈가 생기면 그때그때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오래 하려면 이 활동 안에서 자기 재미를 찾아야겠더라고요. 그걸 못 찾으면 진짜 일이 돼버리는 거거든요. 내가 좋아서 해야 하는데 일이 되면 그냥 직장이 될 것 같아요. 직장은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건 안 좋아하지만 아는 얼굴들을 늘려가면서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은 꾸준히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잘 선택하면서 해 나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활동가로서 뿌듯한 순간과 피로감이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뿌듯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마을 분들과 같이 활동할 때예요. 연대하면서 그분들과 함께할 때, 그분들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그리고 다른 지역 활동가 만나면 서로 되게 반갑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숫자나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 명이 연대하러 가더라도 정말 큰 힘이 되는 걸 느꼈어요. 저도 군청 앞에서 기자회견 할 때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나, 했는데 삼삼오오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되게 힘이 됐어요. 그래서 저도 시간이 되면 활동이나 연대가 필요한 곳에 가요. 서로가 힘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나도 그런 힘을 받았으니까."

"어려운 부분은 어쨌든 양수발전소가 들어오게 되면 저는 동네를 떠나야 하거든요.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한편으로는 나갈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사실 막기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의 모든 활동이 성공하지는 못하거든요. 대부분 실패하죠. 그런데 제가 처음 이 판에 들어와서 성공한 사업이 '남원시 산악열차'였어요. 운이 좋았죠. 다행히 처음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봐서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이대로 가면 막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예요.

어떤 분들은 그래요. 열심히 했는데 싸움이 끝나면 사람들이 안 나오잖아요. 그거에 대해서 서운해하고 문제 제기하는 분도 계신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당연한 거죠. 내 이슈가 끝났는데 누가 나오겠어요? 그 과정에서 한 사람만 이어지더라도 성공한 거예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슈처럼 계속해서 연대해 나가는 일은 쉽지 않거든요. 그런 서운함을 못 견디면 너무 지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것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죠."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피켓 시위 현장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피켓 시위 현장 ⓒ 정정환 제공

# 일상이 곧 활동입니다

지리산사람들 단체에서의 주된 활동 이외에 정환 씨는 '양수댐을 반대하는 새들의 모임(양반새)' 모임을 운영하고, 초등학교에서 생태교육을 진행한다. 앞으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태조사나 산사태, 산불 지역을 돌아보는 투어, 섬진강 하구의 사라질 모래톱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고. 정환 씨의 삶 전체는 자연을 지키고 중요성을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 '양반새' 모임은 양수댐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목적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길이 너무 험해서 양수댐 예정지에는 못 갔거든요. 그래서 예정지 외곽으로만 돌면서 참여한 사람들에게 도감을 펼쳐서 처음 나온 새의 이름을 부여해요. 그럼 랜덤하게 한 종의 새가 뽑히는 거죠. 평등하게. 어떤 새가 뽑히면 그 새가 내가 되고, 그 새가 살아가는 환경이나 장소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저는 '멋쟁이새'가 나왔어요. 진짜 있는 새예요. 그러면 이 새의 특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게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여기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들의 공간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른들은 못 바꾸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교육으로 세상을 바꿔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교육은 생각이랑은 다르게 흘러가더라고요. 어류 조사를 해보자고 했는데 아이들은 컨트롤이 안 되고 물고기 잡는 게 놀이가 되고… 어떻게 해야할까 어렵긴 한데 그래도 마지막에 정리하면서 여기에 사는 주인이 누구인지, 강은 어떤 곳인지 제 취지를 잘 전달하려고 했어요. 하천 조사하면 적어도 30종 이상의 생명들이 나오는데, 종마다 100마리만 있어도 3,000마리 잖아요. 개발을 했을 때 그런 생명들이 한 순간에 죽어나간다, 학살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메세지는 잘 전달되더라고요."

 지리산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난 정정환 씨
지리산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난 정정환 씨 ⓒ 임현택

# 현재 구례의 쟁점, 양수발전소

2023년 말 구례군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0차 전력기본수급계획'에 따라 양수발전소 건설 우선사업지로 선정되었다. 그 이후로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활동 단체의 SNS 계정에는 청년 정정환 씨가 자주 보였다. 주로 버킷햇을 쓰고 손에는 카메라와 피켓을 든 모습이었다. 현재 구례군의 양수댐발전소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정환 씨의 설명을 부탁했다.

"처음에 구례에 양수댐발전소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스쳐가는 생각이 '설치할 곳은 우리 동네(중산리)밖에 없는데' 했어요. 왜냐하면 조건을 봤을 때 높은 지형과 낮은 지형의 고도차가 있어야 하고, 어딘가를 막아서 물을 저장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곳은 구례에 백운산 말고는 없거든요. 그런데 백운산은 생태적으로 좋아서 개발행위를 하기 어려울 거고, 그래서 우리 동네를 선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중산리로 발표하더라고요."

정환 씨는 그 길로 '지리산사람들'에 연락해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2007년 규석 광산 반대 운동'때처럼 들고 일어섰으나 마을마다 상황이 달랐다. 물에 잠기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이 생겼고, 그로 인해 보상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마을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보상이 없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길이 넓혀진다', '상하수도 들어온다' 이런 이야기가 도니까 분위기가 변했어요. 집성촌이다 보니까 합심도 잘 됐고요. 심지어 군수가 저희 동네 나이 가장 많은 어르신 아들에게 전화해서 아버지 설득하라고 이야기하고… 마을이 잠기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반대할 필요가 있냐는 분도 계셨어요. 결국 이장님이 찬성하니까 분위기가 찬성 쪽으로 휩쓸렸어요. 땅값이 오를 거라는 욕망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는 땅값보다 자기가 사는 터전에 피해가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사람들이 들고 일어섰는데,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기도 했고, 시골의 옛날 정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양수댐에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으나 이후에 진행된 소식은 없었다. 지금 구례 양수발전소 사업은 어떤 과정에 있을까.

"2023년 9월부터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으로 양수댐 지역을 선정하는데, 사업 주체에서 선정한 내용은 후보군 6개 중에서 1~2곳을 선정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정도면 우리가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12월에 6곳(전남 곡성·구례, 경북 봉화·영양·합천, 충남 금산)을 모두 선정한다고 했어요. 합천과 구례가 우선 사업지가 되고, 나머지 4곳은 예비 사업지가 됐는데 이게 말장난도 아니고 너무 황당한 거죠.

올해까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라고 이 사업을 했을 때 투자 대비 성과가 있는지 조사를 해요. 선정이 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저희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걸 할 때는 지질 조사부터 송전선로가 어떻게 들어오는지까지 모든 것들을 조사해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서 검토를 하고, 이렇게 검토한 내용을 12월에 발표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질 조사 과정에서 상부댐에 구멍 뚫는 기계가 들어가야 하니 이미 가설도로를 만들고, 산도 깎아놨어요. 구례군에는 산지전용허가만 받아놓고요. 검토 과정에서 훼손되는 산림이나 자연들에 대한 평가가 아예 생략됐어요. 이걸 보니 빈틈이 참 많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 자연보존법이 있지만 아직 고쳐야할 게 너무 많아요."

양수댐발전소는 생산된 전력을 보존할 수 있는 초대형 배터리 역할을 한다. 친환경 에너지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역활동가의 입장에서 구례에 양수댐발전소 사업을 재고해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지금 양수댐 사업이 태동한 본질을 보면 원전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양수댐은 원전의 보조 시설이예요. 원자력발전소는 '경직선 전원'이라고 한 번 가동을 하면 1부터 100까지의 가동률을 다 써야만 해요. 발전량을 임의로 조절하기 어려워요. 80%만 쓰고 20%는 버리는 게 안 되는 거죠. 잘못하면 블랙아웃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남은 발전량을 소비할 시설이 필요하고 그게 양수발전소예요. 만들어진 에너지가 남는 시간이 주로 밤이거든요. 낮에는 사람들이 공장도 돌리고, 일도 하니까 전력이 많이 필요한데 밤에는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남는 거죠. 그래서 저렴한 심야전기를 이용해서 물의 위치에너지의 차이를 사용하는 양수발전소의 방식이 딱 맞았던 거예요. 원전과 양수발전소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인 거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밤에도 전력을 많이 쓰잖아요. 심야전기도 더 이상 개통을 못 한다고 할 정도로 야간 전력도 많이 필요한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적자 운영되는 양수발전소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는데 2018년 재생에너지에 활용하겠다고 다시 들고나온 거예요. 재생에너지는 '변동성 발전원'이라고 바람이 안 불고, 날이 흐리면 전력수요에 문제가 발생하니까 전력 생산이 많을 때 양수댐에 저장해 두었다가 전력이 부족할 때 사용하겠다는 건데 이를 대체할 시설이 양수발전소 밖에 없는 건 아니예요. 배터리저장과 수소전환, 중력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발전사들은 기존 방식만 고집하고 있는 거죠. 거기에는 최근에 석탄화력을 줄여 나가는 정책과도 연관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최근엔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없애는 추세잖아요. 한국중부발전이 석탄발전소 중에 가장 큰 업체인데, 이 발전사들은 가지고만 있어도 '용량요금'이라고 발전기 가동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전에서 대기료 명목으로 금액을 받아요. 그러니 화력발전소 하나가 없어지면 돈줄이 하나 없어지는 거고, 원전에 쓰겠다고 하면 비난을 받으니까 양수발전소 같은 대체시설을 하나 만들어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겠다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어느 정도의 양수발전소가 필요한 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여기에는 지역집중 발전원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어요."

정환 씨는 양수발전소의 필요를 고민하기 이전에 전력사용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지역에서 전력 생산 설비가 만들어지고, 전력 소비처는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었다.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서울이나 수도권 공장 부지로 끌고 가려면 중간에 송전 선로가 설치가 돼요. 그러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피해를 보거든요. 밀양 송전탑처럼요. 이게 전력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생산처와 소비처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지역에 대규모로 발전시설이 만들어지면 안 되고, 분산형으로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게끔 해야 해요. 그렇다면 저장에 제일 좋은 시스템은 배터리(ESS, Energy Storage System)거든요. 그런데 배터리는 다른 생산 시설처럼 용량요금을 받지 못해요. 그러니 발전시설에서는 배터리를 안 하죠. 에너지 전환을 고민할 때 계속 빠지거나 검토되고 있지 않은 분야가 바로 생산과 소비의 분리 문제예요.

양수발전소도 진짜 대규모 저장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이건 발전원(물의 낙차)은 재생에너지를 표방하지만 발전 방식은 기존 원전의 방식을 쓰는 거예요. 양수발전소가 만들어지면 생산된 전력을 끌고가기 위한 송전 선로가 또 필요해지는 거죠. 지금도 광양시-장수군 송전선로가 만들어지면서 곡성군을 지나는 선로가 계획되고 있는데 이게 다 양수발전소랑 연결돼 있어요. 풍력이나 태양광, 양수발전소처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더라도 이 운송 시스템과 생산과 소비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어요."

마지막으로 정환 씨는 발전소 시공 과정에서 벌어지는 산림 파괴와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새를 좋아하다가 자연을 지키는 활동가가 된 그에게 이런 거대한 개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양수발전소처럼 대규모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산림 파괴를 동반할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해발고도차가 있어야 하니 상부댐이 산 높은 곳에 만들어지는데, 이런 곳은 사람들 출입이 없다보니 잘 보존된 숲이 많아요. 여기에 사는 다양한 생명들이 파괴되는 거죠. 자연도 파괴되고, 지역 주민의 삶도 파괴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계획에서 어떤 시설들이 들어올 거고, 송전선로도 어떻게 들어와서 나갈건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건설사는 좋은 부분만 가져와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구례가 이러고 있어요. 기존 선로를 쓰겠다고 하는데, 이걸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부하량 검토를 해야 하는데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직 없어요. 사업비가 1조 5천 억이라고 하는데 이게 구례에 떨어지는 게 아니예요. 대형 양수발전용 터빈은 아직 국내기술이 부족해서 수입을 하고 있는데, 비용이 6~7천 억이 돼요. 기계에 1조 가까이 들고, 그러면 나머지 3~4천 억으로 공사해야 하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죠."

마지막 질문으로 정환 씨가 생각하는 '지리산'을 물었더니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냥 산"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겨울이면 첫눈 오는 소식을 알려주고 여름이면 절정의 초록 잎을 보여주는 산. 그러면서 산은 개발하거나 정복해야 할 곳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을 구성하는 요소, 나무들, 새들, 벌레들, 동물들이 없다면 산은 산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산이, 강이, 하늘이 그 의미 그대로 존재할 때 우리의 평화도 함께 지켜지지 않을까. 정환 씨의 말처럼 '한 사람의 연대라도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 때' 이는 어렵지 않다. 내가 사는 지역 주변의 이슈들을 정확히 알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함께하는 연대만으로도 지리산은 산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진행 넉넉, 글 승현

글쓴이: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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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리산이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지리산이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며,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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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현 (jirisaneum) 내방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 네트워크를 지원합니다.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의 시민사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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