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09.02 10:55최종 업데이트 25.09.02 10:55

잠들지 않는 기억, 간토대학살 102주기를 보내고

6천여 명이 학살당했는데, 408명의 이름만 확인되었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이 일본을 휩쓸었다. 혼란과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일본 당국은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그 표적이 된 이들은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자, 일본 경찰과 자경단은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6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지금까지 이름이 확인된 이는 408명에 불과하다.

올해가 그 대학살 102주기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 정부 또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나 공식 추모식을 단 한 번도 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정의가 세워지지 않은 채, 피해자의 억울함은 세대를 건너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1923 간토대학살 102기 추도예배 추도예배 후
1923 간토대학살 102기 추도예배추도예배 후 ⓒ 김종수

지난 1일 서울 향린교회에서는 '1923 간토학살을 기억하고 추도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이 작은 예배를 드렸다. 참석자는 40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 모임은 잊힌 역사를 되살리는 소중한 마중물이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사역하는 유시경 신부가 "국제(國際)를 넘어 민제(民際)로"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희생자 유족 권재익씨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군마현 경찰서에서 학살당했으나, 사망기록에는 단순한 '사망'으로만 적혀 있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지워진 수천 명의 영령들이, 그 편지 한 장 속에서 다시 호소하고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이재명 대통령님,
저는 군마현 후지오카 경찰서에서 살해당한 남성규의 외손자 권재익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스치듯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군마현에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고향 사람 한 분이 후지오카 경찰서 지붕을 뚫고 도망쳐 와서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이 말을 강효숙 교수의 논문에서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제[독립항쟁기"에 조선총독부 감독 아래 기록된 문서(제적등본)에서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장소, 때, 시간과 학살주체는 없고, 어떻게 학살되었는지, 학살의 도구는 무엇이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단순한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향에 아내와 어린 두 아들과 딸을 두고 가신지 두 달 만에 학살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이듬해에는 외할아버지의 다른 조선인 노동자들이 학살되었던 군마현을 찾아가 죠도지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여하여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대통령님.
대한민국은 독립한지 80년이 되었지만,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적도, 진상규명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도 없습니다. 학살당한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기념물 하나 세우지 못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추도식도 없었습니다. 외교부 성명조차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희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정기획위원회 5개년 국정계획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이 포함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간토학살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입니다.

저는 대통령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부 차원의 공식 추도식을 열어주십시오.
6천여 희생영령을 위로하는 대통령님의 추도사를 현장에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임기 안에 일본 정부의 국가 책임을 분명히 밝혀 주십시오.

이제라도 일본 내 숨겨진 자료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한일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이 밝혀잰 학살 피해자는 408명입니다.
6천여 명의 이름을 밝혀내는 일에 국가가 나서 주십시오.
최소한의 위패만이라도 모실 수 있는 추도 공간을 먼저 마련해 주십시오.
그리고 조속히 일본 곳곳에 흩어진 학살당한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통령님께서 누구보다 노동자의 안전을 중시하시는 분임을 압니다.
억울하게 죽은 이주 조선 노동자의 한을 풀어주는 사회라야, 살아 있는 이들의 노동자들의 권리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가 져야할 책임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 주십시오.

2025년 9월 1일
간토학살102주기 추도예배에서 유족 권재익


생각해 보면, 오늘의 교회는 부끄럽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차별과 혐오의 선봉에 서온 지 오래다. 1980년대 민주화 이전까지만 해도 교회는 역사의 고비마다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집회와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행사에만 몰두하며 사회적 정의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40명 남짓 모여 드린 작은 추모예배야말로 교회가 존재해야 할 자리를 보여준다. 숫자가 아니라, 진실을 향한 증언이 교회의 생명이다.

AD
시간이 흘러도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감추고 덮는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잊힌 과거는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나 우리를 붙잡는다. 지금 일본의 극우 정치가 과거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도 기억을 유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1923간토대학살 102주기 추모예배 추모예배
1923간토대학살 102주기 추모예배추모예배 ⓒ 김종수

작은 촛불이 어둠을 몰아내듯, 작은 모임 하나가 기억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젠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6천여 명의 억울한 영령들을 향한 국가적 추모와 진상 규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할 일을 해야 한다.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명단을 밝혀내고, 위령 공간을 마련하며, 유해를 고향으로 모셔오는 것, 그것이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김종수 목사의 헌시는 바로 그 호소다.

아직은 잠들지 마시오
아직은 잠들 때가 아니오
사지가 찢기고 심장이 뚫려버려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바칠 꽃도 없는데

아직은 잠들지 마시오
아직은 잠들 대가 아니오
불령선인의 누명을 덧씌우는
목소리가 또 다시 흉기가 되어
당신의 명예를 짓밟고 있는데

어찌 용서하려 하오
어찌 하늘 품으로 가려 하오

아직은 잠들지 마시오
아직은 잠들 때가 아니오
학살자가 제 입으로 진심어린 죄의 고백을
제 몸에서 멸시의 뿌리를 도려낼 때까지
당신은, 당신의 분노를 잊지 말아 주시오

당신을 학살한 저들의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김종수 목사의 헌시- 잠들지 마시오 전문)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 우리가 눈을 감을 때, 과거는 오늘의 미래를 붙잡는다. 기억하는 자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작은 예배당에서 드려진 기도와 눈물은, 그날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을 되살려 내는 또 하나의 증언이었다.

#간토대학살#관동대지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