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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사랑하는 '타사모(타자기 사용자 모임)'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번 모임의 공동 주최자로 현장을 취재하고 인터뷰했습니다.

타자기를 즐기는 시간 회원들이 가져온 여러 타자기를 회원들이 돌아가며 체험해 보고 있다.
타자기를 즐기는 시간회원들이 가져온 여러 타자기를 회원들이 돌아가며 체험해 보고 있다. ⓒ 강득주

"탁! 탁! 타닥! 타다닥!, 츠르륵~ 땡!"

지난 8월 30일, 경기도 하남의 한 공유 공간. 컴퓨터 키보드 소리와는 전혀 다른 경쾌한 기계 소리.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번갈아 가며 타자기를 치고 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온 16명의 타자기 애호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는 '타사모(타자기 사용자 모임)'의 첫 공식 오프라인 모임 현장이다. 2017년 개설 이후 24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타자기 커뮤니티로, 온라인 카페이다 보니 회원들의 소통은 대부분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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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통해 타자기에 관한 다양한 후기와 정보 공유는 물론 타자기를 활용한 필사 등 다양한 결과물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타자기라는 물건 자체가 이제는 사라져 가는 물건이기에, 다양한 타자기를 구하기도 접하기도 어렵다.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감각적 체험이 필요한 물건이다 보니 '정모(정기모임)'의 필요성이 회원들 간에 계속 언급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위축되어 그동안 온라인 소통에 계속 머물렀다. 간혹 소수 회원 몇몇이 '번개모임'이나 화상 미팅으로 소통을 이어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올해 오프라인에서 공식 첫 모임이 이루어진 것이다. 카페가 개설되고 8년 만의 일이다.

타자기 현장 정비 타자기 수리 전문가 안병조씨가 정모에서 회원들의 고장난 타자기를 손 보고 있다.
타자기 현장 정비타자기 수리 전문가 안병조씨가 정모에서 회원들의 고장난 타자기를 손 보고 있다. ⓒ 운풍(노정환)

'타사모'의 첫 공식 모임, 각양각색의 타자기 사랑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은 강원도 홍천, 대전 서구에서 참석한 회원이다. 경기도가 9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겹치는 지역이 하나도 없었다. 파주, 양주, 양평, 성남, 의정부, 평택, 수원, 화성 등에서 참석하고, 서울 지역 참여자도 강서, 양천, 송파, 성북, 도봉구에서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네이버 카페 '타자기 사용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로 모두 타자기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다. 타자기를 즐기는 방식도 회원마다 각양각색이다.

군 시절 타자기와 '악연'으로 만난 두 명의 행정병 출신은 타자기 애호가로 변신했다. 분당에서 온 닉네임 'sjscth' 그리고 수원에서 닉네임 '운풍'은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위해 지겹도록 타자기를 친 사람들이다. 선임에게 오타를 냈다고 플라스틱 자로 손가락을 맞았던 악몽 같은 기억을 회상할 때 두 사람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타자기와의 '악연'을 오히려 '아름다운 인연'으로 승화시켰다.

자기소개 시간 정모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자기소개 시간정모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 강득주

'sjscth'는 현재 200여 대의 타자기를 소장하고 있다고 전해 모든 회원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특히 마음에 드는 외국산 타자기를 한글 타자기로 개조하여 자신만의 타자기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운풍'은 지인이 타자기를 수집하며 즐기는 모습에 영향을 받으며, 군대 시절 자신이 타자기를 사용했던 기억으로 지금 30여 대의 타자기를 소장한 타자기 애호가가 되었다. 특히 그는 직접 먼지 낀 타자기를 분해하고 닦아 소생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한다.

아내에게 선물하려다 본인이 '입덕'한 케이스, 분당에서 온 닉네임 '타입송(typesong)'이라는 회원은 원래 타자기에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신의 타자기를 버려 속상해 하는 아내를 위해 몰래 타자기를 구해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타자기를 전형 사용하지 않아, 자신이 직접 타자기를 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 지금은 타자기로 노랫말을 치는 영상을 만들어 '타입 송(typesong)'이라는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닉네임 '진난노'는 젊은 시절부터 시를 쓰며 자신의 시집을 몇 권이나 출간한 시인이다. 그는 활자 인쇄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며, 자신이 쓴 시를 직접 타자기로 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전에서 온 '달네'는 초등학교 시절 식당에서 타자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안 좋은 기억을 가졌는데, 오히려 그 경험이 타자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져 지금은 '타자기를 문화로 널리 알리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양평에서 온 '쁄라'는 어머니의 성경 필사를 도우며 "탁탁" 타자기 치는 소리가 어머니에게 힐링이 되는 것을 보고, 앞으로 타자기를 곳곳에 둔 쉼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타자기에 반해 소품 공방까지 운영하게 되었다는 '노다'는 타이핑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실력자이다.

전동 타자기로 입문해 수동 타자기의 타건 감에 매료된 '미틴말티', 인테리어용 타자기를 샀다가 AI 프로젝트에 활용하게 된 'ifnoif', 팬레터를 쓰는 데 타자기를 활용하게 되었다는 'Luv', 어머니께 타자기를 선물하려다 기계의 매력에 빠져 타자기를 직접 수리하고 수집하게 됐다는 제빵사 '러셔'.

컴퓨터 키보드를 수집하다가 타자기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루습히'. 그는 브런치에서 키보드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성당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타자기를 어깨 너머로 보며 한 번만 만져봤으면 하던 소망에 타자기 수집가가 된 '까비새집'. 그녀도 현재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도 우연히 당근마켓에서 장난감 삼아 1만 5000원에 구입한 타자기를 계기로 타자기 '덕후'가 되었고 현재 브런치에서 작가로 <아무튼, 타자기>라는 책까지 쓰게 되었다. 한 명 한 명의 사연들이 모두 특별하게 다가온다.

'덕후'들의 특별한 나눔, '시흥 안 선생'의 재능기부까지

나눔받은 선물들. 회원들이 정모에서 나눔 받은 선물인증사진들
나눔받은 선물들.회원들이 정모에서 나눔 받은 선물인증사진들 ⓒ 강득주

이번 모임의 또 다른 묘미는 회원들이 직접 준비한 선물 나눔이었다. 자기소개를 마친 회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준비해 온 선물을 꺼냈다. 재봉틀로 만든 손지갑에 간식을 담아 온 사람, 자신의 그림을 광목에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타자기 덮개, 문구 세트, 타자기용 잉크 리본과 볼펜 지우개, PC용 키보드, 직접 구운 단팥빵까지. 회원들은 각자의 재능과 관심사로 연결되는 물건들을 서로 건넸다. 단순한 취미 모임을 넘어, 서로의 삶을 나누는 따뜻한 자리였다.

필자와 함께 이번 정모를 공동주최한 '닉스'는 지난해 이맘때 '랜선 타이핑 대회' 주최자이기도 하다. 그는 타자기 뿐 아니라 오디오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에 가장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올리베티사의 발렌타인 타자기가 인쇄된 빨간색의 카세트테이프와 간식까지 포장해 회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안겼다.

정모에 온 사람만 받을 있는 특별한 선물 정모 공동주최자 닉스가 준비한 타자기가 인쇄된 카세트 테이프와 케이스 사진
정모에 온 사람만 받을 있는 특별한 선물정모 공동주최자 닉스가 준비한 타자기가 인쇄된 카세트 테이프와 케이스 사진 ⓒ 닉스

이 날 최고의 이벤트이자 선물은 바로 국내 최고의 타자기 수리, 복원가인 안병조씨가 이번 정모의 찬조를 위해 참석한 것이다. 그는 현재 1914년에 개발된 최초의 한글 타자기인 '언문 타자기'를 복원 중에 있다고 한다. 타자기 마니아들에게는 '시흥 안 선생'으로 통하는 그다. 그런 그가 모임에 나온 것도 회원들에게는 놀라운 일인데, 그가 타자기 수리용 도구를 챙겨 와 현장에서 간단한 수리를 무료로 해 주면서 재능 기부까지 했다. 특히 초보인 회원들은 고장난 줄 알았던 타자기가 간단한 '시술'만으로 멀쩡하게 작동이 되는 것을 보고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400명은 온라인 카페 회원 수 치고는 작은 규모다. 카페 회원 수는 조금씩 증가 중이지만 미약한 수준이다. 개설한 지 8년 차에 이 정도 규모라면 국내에 타자기를 취미로 즐기는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온라인 카페는 개설 목적에 따라 규모가 중요할 수 있다. 규모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광고, 협찬 등의 부가적인 수익 구조나 사업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자기 카페의 경우는 개설 목적이 다른 경우다. 타사모 카페 개설자인 닉네임 '노모어'에게 카페 개설의 이유를 물었다.

그가 처음 카페를 개설한 이유는 타자기에 관한 정보와 자료의 수집이었다. 마니아 층이 적으니 정보도 파편적이라 제대로 된 기록 보관소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노모어'는 정보와 기록 보관소를 목적으로 카페를 개설한 것이다.

필자가 브런치스토리에서 '아무튼 타자기' 브런치북을 집필했던 이유도 타자기 입문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 그들의 입문서가 되어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타사모'에게 중요한 것은 회원 수보다 회원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타자기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으면

대부분의 회원들이 보통 1~3대 정도의 타자기를 보유한 경우가 많지만, 수집량이 많은 '고인물' 수집가 회원들의 경우 수십 대부터 백 대 이상의 타자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더 놀라운 부분은 이들이 보유한 컬렉션들이다.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타자기를 보유한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고인물 수집가들의 타자기 애장품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은다면 박물관 하나를 만들고도 남을 것이라 예상된다.

정모에 모인 16명의 타자기만 모아도 약 400대는 족히 되었다. 언제가 이 특별한 교류는 단순한 정모가 아니라, 이제는 사려져 가는 근현대 한글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 감성과 감각을 지키고 이어가는 사람들이 온라인 상의 교류를 넘어, 타자기를 매개로 앞으로도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최근 '텍스트힙과 '라이팅힙' 트렌드를 통해 MZ세대처럼 타자기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세대들이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타자기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 매거진 <타자기 이야기>에도 실립니다.


#타자기#덕후#타자기사용자모임#카페정모#타이프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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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이 생업인 노동자를 꿈꾸었으나, 문화 행정영역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다. 노동 외에 타자기 연구하는 덕후이자 수집가로 한글문화와 '육아' 까지 3가지 영역에서 각각의 페르소나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 현재 브런치 스토리에서 브런치 북「아무튼, 타자기」 「Ai시대니까, 다시 타자기」 외 타자기와 관련한 글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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