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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1 07:56최종 업데이트 25.09.01 07:56

"파자마 파티에 초대받고 싶어" 딸의 말에 외향인으로 변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내향인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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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성격과 기질에 따라 감정 표현이 다르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감정 표현이 서툰 내향적인 엄마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활발한 외향적인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부모의 장점만 닮기를 원하지만 부모의 욕심이다.

쇼핑을 가면 점원이 다가오기 전에 한번 쓱 둘러보고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조용히 나온다. 식당에서 추가 반찬을 시키는 것도 친구들 몫이었다. 요즘처럼 셀프 반찬 가게, 무인 옷 가게가 편한 나와 달리 남편과 딸은 쇼핑을 즐긴다.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고 구경하는 재미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창백한 딸의 미소 "엄마 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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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세 살, 작은아이 두 살 그때는 하루가 멀다고 아이들이 아팠다. 미열이 있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침에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급한 업무만 처리하고 아이를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꾸 일은 꼬여가고 생각처럼 업무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때 유치원에서 아이가 열이 내리지 않으니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급한 업무만 처리하고 데리러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작성하던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설상가상 오후 보고까지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다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해열제를 먹였지만 열은 내리지 않고 활동도 못 하는 상황이라 원장실 소파에 누워 있으니,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했다.

마음은 아이에게 달려갔지만, 보고를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조금만 더 보살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초조하게 시작한 보고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곧바로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 나를 팀장이 붙잡았다. "왜 자꾸 애가 아파, 엄마 일 좀 하게 그만 아프라고 해." 팀장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가방을 챙겨 아이에게 향했다.

원장실 소파에 힘겹게 누워있는 아이는 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창백한 아이를 부둥켜안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오히려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 괜찮아, 엄마 이제 급한 일 끝났어?"

가슴에 메아리처럼 새겨진 아이의 말이었다. 그날 이후 회사와 육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야근은 마감 일정이 정해진 날에만 했고, 퇴근 시간이 되면 눈치 보지 않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하루이틀 하고 그만둘 일도, 육아도 아니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은 학교에서 걸려 온 "아이가 아파요, 데려가세요" 전화보다 "엄마 나 학원 안 갈래" 아이들 전화에 놀라곤 한다. 단호하게 학원 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돌 전부터 우리 부부 출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으로 출근했고 퇴근 시간에 맞춰 하원했다. 둘째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학원
가기 싫다는 핑계를 대면 모른 척 넘어가 주고 싶다.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하고 퇴근 하면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것만 보였던 외골수적인 성격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매일 같이 등교하는 남매 서로를 의지하는 아이들
매일 같이 등교하는 남매서로를 의지하는 아이들 ⓒ 김지호
학교 가는 길 등교는 같이해야지 천사 같은 아이들
학교 가는 길등교는 같이해야지 천사 같은 아이들 ⓒ 김지호

가끔은 외향인 엄마로 스위치 ON

아이들 세상에 엄마가 전부일 때가 있다. 모든 선택과 결정이 엄마에게서 정해지고 이루어지는 시기, 엄마의 영향력이 필요한 시기, 엄마의 인맥으로 아이들 친분이 달라지는 시기. 너무도 당연하게 딸의 그 시기를 모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 나도 파자마 파티에 초대받고 싶어."

큰아이가 친구들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속상하다고 했다. 활발한 성격이고 교유관계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딸에게 듣게 된 뜻밖의 말이었다. 딸은 엄마들과 소통 없는 나로 인해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로서 나서야 할 때가 왔다.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딸 생일 파티에 반 친구 전부를 초대할 계획을 세웠다. 딸이 다니던 댄스학원 원장님이 상황을 듣고 장소를 대여해 주셨다.

직접 준비한 초대장, 남편이 준비한 이벤트 풍선과 여러 곳에서 공수한 테이블, 하루 전부터 정성껏 만든 음식, 유일무이 초대형 생일 파티였다. 사전에 보낸 초대장 덕분에 몇몇 학부모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동안 몰랐던 딸의 학교생활을 전해 들었다. 몇 주 후 딸아이를 파자마 파티에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다.

모든 걸 직접 준비했기에 힘들었지만, 덕분에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얼굴도 몰랐던 학부모님들과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직접 만든 간식
직접 만든 간식 ⓒ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의 탄탄한 내면이 이제야 보인다

얼마 전 있었던 8월 중순 여름휴가 때 일이다. 고깃집에서 먹던 김치가 떨어져 조용히 김치를 달라고 했지만 목소리가 작아 묻혀버렸다. 듣고 있던 딸이 "아저씨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큰 소리로 주문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기요" 다시 조용히 알바생을 불렀지만, 이번에도 목소리가 묻혔다. 옆에 있던 아들이 된장찌개 주문을 도와줬다.

생각과 행동이 일체형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엄마 모습이 때로는 답답한 거북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반대로 아이들의 즉흥적인 요구사항과 일하는 엄마가 싫다고, 당장 일 그만두고 옆에 있어 달라던 아이들 응석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부족한 엄마 같았다. 척척 알아서 학용품 챙기고 숙제하는 큰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중학생인 지금도 엄마 같은 딸이다. 항상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운동을 좋아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는 지금처럼 맘껏 장난칠 수 있는 말썽꾸러기 엄마이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친구 중에 엄마랑 성격이 비슷한 친구가 있는데, 만나면 주문도 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는데 그게 밉지가 않다고 그냥 성격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이해되고 그래서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런 딸에게 이렇게 답해줬다. 그 친구는 타이밍을 보는 거야, 주문할 타이밍, 말할 타이밍 그게 배려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이 양육이라는 외향적 활동에 잠시 켜졌던 적극적인 성향이 아이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차츰 내향적인 본성을 찾아가고 있다. 밑바닥 열정까지 끌어올려 살았다면, 이제는 내재해 있던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찾고 있는 여정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에 지녔던 내향적 성향과 지금의 내향적 성향은 분명 차이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열정은 언제나 스위치 ON 상태다.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라다오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라다오 ⓒ 김지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내향인#엄마#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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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금씩 친해지는 중입니다. 보고 느끼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년 차 직장인에서 나로 변해가는 오늘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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