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공예 주간을 맞아 공주를 다녀왔다. 공주의 공예주간은 제민천 인근 대통로의 원도심을 중심으로, 5월 15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 간 열린다. 그간 나는 공주의 공산성을 비롯한 백제 시대의 유적을 주로 방문했는데, 이번에 갤러리 수리치의 전시에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공예주간은 공예의 즐거움을 알리고 나누고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주관으로 시작한 공예 행사입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공예주간은 '공생공락(共生工樂, Living Together Craft Together)'을 슬로건으로 정하고 거점도시 강원 고성·전북 부안·전북 전주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공예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2025공예주간 홈페이지 설명 중)
나는 이번 기회에 공주의 여러 갤러리를 방문하였으며, 공주에 이렇게 여러 갤러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참고로, 공예주간에 참여하지 않은 갤러리도 있다).
갤러리마다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었으며, 특히 원도심의 주택을 리모델링한 갤러리를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도자 회화를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 쉬갈의 '구운 그림', 실용적인 공예의 대표 격인 재료인 가죽으로 표현한 가죽그림을 전시하는 대통길 작은 미술관의 '자연의 공명:연속의 존재들'을 비롯한 여섯 개의 갤러리를 방문했으며, 실용적인 공예와 순수 미술의 간극이 점차 사라지는 최근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 풍경갤러리 수리치의 전시장 풍경 ⓒ 김경희
5월 15일부터 5월 25일 갤러리마주안, 5월 20일부터 5월 25일까지, 이미정갤러리, 갤러리수리치, 갤러리쉬갈, 대통길갤러리, 민갤러리의 여섯 개의 전시장에서 도자기, 박공예, 가죽공예 등의 다양한 주제와 소재의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이 글은 그중 갤러리 수리치의 전시를 관람하고 작성했다.
농부 이윤하씨의 바가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다
세상에 공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공예의 재료는 그보다 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공예 재료를 누가 만들었는지, 그가 어떤 사람일 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을까? 곧이 알려고 한다면 전혀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다양한 공예 재료를 파는 여러 곳을 알고 있고, 필요한 재료를 구하거나 만들 수 있는 정보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충남 공주시 봉황동 갤러리 수리치의 전시회 <농부 이윤하씨로부터 시작된 공예 '고마씨'(이하 고마씨)>가 흥미로운 것은 이 지점이다. 이 전시는 바가지를 주제로 열린 전시회인데, 11명의 참여 작가들이 작품에 사용한 바가지는 모두 한 곳에서 왔다. 그리고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다.

▲박공예작자 미상의 박공예 ⓒ 김경희
심지어 이 전시의 기획이 '그'로부터 시작된다. 혹시 같은 쇼핑몰에서 구입했냐고? 그럴 리가. 이쯤 되면 짐작했듯이 이 바가지들은 전시 제목에 언급된 '농부 이윤하씨'가 농사지은 바가지이다.
'고마씨'의 전시 참여 작가들은 이윤하씨가 농사짓고 직접 삶아 만든 여러 개의 바가지를 받았으며, 바가지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더해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장 풍경바가지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다. ⓒ 김경희
그런데, 단지 농부가 직접 농사지었다는 것만으로 전시회의 제목에 등장하는 일이 가능할까?
먼저 박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박은 덩굴성 한 해 살이 풀로, 그 열매는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전에는 그릇으로, 바가지로, 때로 컵으로, 국자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던 전통적인 재료다. 깨진 바가지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명주실로 꿰매 다시 썼을 만큼 일상에서 소중하게 사용했다. 박나물이라는 요리가 있고, 흥부전에도 박을 타서 속은 긁어먹고 바가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박을 사용한 역사는 꽤 오래되는 것 같다.
충남 서산에는 '박첨지 놀이'라는 바가지로 만든 인형극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다양한 문화 도구로도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옛날의 기능을 잃고 관광 상품이나 공예 재료로 가끔 쓰일 뿐 일상의 용도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러니 박 농사짓는 사람 또한 귀할 수밖에.
1951년 태어나, 박농사를 여전히 짓고 있는 몇 안 되는 농부
농부 이윤하씨의 이름이 전시 제목에 등장한 데는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윤하씨는 누구도 쓰지 않고 먹을 수도 없는 박농사를 여전히 짓고 있는 몇 안 되는 농부 중 한 명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는 종자(씨앗)를 농자재상에서 구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윤하씨의 박 종자는 그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토종 말박'이다.
공예가 일상의 필요에서 시작한 미술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이윤하씨의 바가지는 일상의 필요에 의해 농사짓고 그 결실이 생활 문화가 되는 순환을 보여주는, 공예의 본질 가까이에 있는 바가지가 아닐까? 그러니 전시 제목이 1951년 충남 공주시 두만리에서 태어나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농부 이윤하씨로부터 시작된 공예'일 수밖에.
그러면, 고마씨는 무슨 뜻일까? 공주에 가면 유명한 곰나루가 있다. 곰이란 단어는 공주의 옛 지명이며, 수리치 관장 이기수씨의 설명에 의하면 '고맙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농부의 살핌으로 농작물이 자라고 그것이 삶의 문화가 되는 순환 과정의 시작이니 그 의미가 바로 와 닿았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갤러리수리치 관장 이기수씨관장님에게 전시 기획의도와 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김경희
전시장을 방문한 아침, 수리치의 앞마당에는 아직 바가지가 되지 못한 박들과 표주막으로 쓸만한 작은 바가지들이 광주리에 가득 담겨있었다. 아침 일찍 농부 이윤하씨가 수확하지 못하고 밭에 남겨두었던 박들을 트럭에 싣고 와서 내려놓고 간 것이라고 했다.
전시장 이곳 저곳에는 정겨운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또한 이윤하씨가 앞마당과 마을 뒷산에서 꺾어온 것이라고 했다. 짧지만, 아직 전시 기간이 남아있으니 수리치를 방문하여 바가지들의 향연을 함께 감상해보면 어떨까?

▲국보1호(보물) 전좌빈 2025작가는 화려한 금은보석 자기들 보다 귀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 김경희

▲두만리주민_2025_두만리두만리 주민들의 작품. 박 표면에 칠을 하여 마치 도자기처럼 보인다. ⓒ 김경희

▲꽃 피고, 새울고 제비가 돌아오고 씨뿌리고(가변크기) 이종국_2025생태의 순환을 표현했다. ⓒ 김경희

▲미술하기 (바가지, 가변크기) 임재광 2025임재광 작가의 작품 ⓒ 김경희

▲박 속에서 발견된 벌집수확하지 않고 밭에 남겨둔 박 속에 벌이 집을 지었다. ⓒ 김경희

▲함사시오 김경희 2025혼인식 전날 함을 지고 처갓집에 들어갈 때 바가지를 깨는 풍습을 표현했다. ⓒ 김경희

▲전시장 풍경바가지를 활용한 설치. 바가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 김경희
*전시정보
전시제목:농부 이윤하씨로부터 시작되는 공예 '고마씨'
전시기간:2025년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전시장소:갤러리 수리치(충남 공주시 효심1길 7)
: 갤러리 수리치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오래된 골목길에 숨어 있는 작은 갤러리다. 그럴싸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이 아니라 1943년에 지어진 낡은 주택으로, 한때 하숙집이었던 공간을 관장인 이기수씨가 리모델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다양한 미술 프로젝트와 전시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