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사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의 주거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대책은 언제나 땜질에 그치고 있고, 책임 있는 대책을 논의해야 할 고용노동부 담당자들은 여전히 이 자리에 없다."

▲'이주노동자 주거권 현주소를 묻다'토론회 ⓒ 이건희
지난 15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 이주노동자 주거권 현주소를 묻다' 토론회는 시작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경기이주평등연대와 유호준 경기도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농업과 제조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주거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경기도와 고용노동부의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대책마련을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10년째 현장에서 외치고 있어

▲김이찬 대표는 "우리는 2014년부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10년이 지난 2025년에도 여전히 비닐하우스 속에서 캄보디아, 미얀마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사진, 경기이주평등연대 제공) ⓒ 이건희
이날 1부 사례발표에서는 김이찬 대표(지구인의정류장)와 정영섭 활동가(이주노동자노동조합)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 실태를 고발했다.
김이찬 대표는 "우리는 2014년부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10년이 지난 2025년에도 여전히 비닐하우스 속에서 캄보디아, 미얀마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며 "고용주들은 표준 근로계약서에는 숙소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숙소를 이용하도록 하면서 부당하게 숙소비를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섭 활동가는 제조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이 비닐하우스 못지않게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사진, 경기이주평등연대 제공) ⓒ 이건희
정영섭 활동가는 제조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이 비닐하우스 못지않게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의 조사조차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가설 건축물에서 숙식하는 비율이 50% 이상인데, 제조업에서도 컨테이너 안에서 4~5명이 한 방에 몰려 사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노동자들이 열악한 숙소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경우, 고용주가 협조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오히려 쫓겨나거나 해고당한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없다..."
2부에서는 최정규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인권팀장)가 발제를 맡아 고용노동부 대책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는 2018년 1월에 "비닐하우스 기숙사 불허용, 다만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은 허용"을 대책으로 내세우더니, 2020년 속헹 씨 사망 이후에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 불허용, 다만 비닐하우스 외 가설건축물은 허용"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며, 여전히 '가설건축물'이 기숙사 활용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숙소문제를 비닐하우스 외부에 컨테이너만 설치하면 합법인 것처럼 편법을 고수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설 건축물은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국토교통부 유권해석과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닐하우스 숙소(사진, 김이찬 대표 제공) ⓒ 이건희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사회연구소장은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는 노동권과 건강권 문제"라며 "주거와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과 고립이 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진우 소장은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는 곧 생명과 직결된 공간으로 단지 주거의 문제가 아닌 인권을 전제한 삶의 공간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이민사회국 김원규 국장은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노동에 대한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로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공식적인 결정에 이르지 않았고 개인 의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체류형 쉼터' 같은 임시 대안을 거쳐 장기적으로 공공형 기숙사로의 전환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이찬 대표는 "농막이나 쉼터 등을 주거로 합법화하는 식의 임시방편은 또 다른 꼼수일 뿐"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주거 기준을 보장 받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우리는 왜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해야 하나, 더 이상 '임시'말고 근본적 해법을"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은 "속헹 씨 사망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왜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은 더 이상 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생명, 노동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영섭 활동가는 "사업장 변경조차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사업주가 숙소를 개선할 이유나 동기가 없다"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 공공이 책임지는 숙소 제공 없이는 어떤 대책도 또 다른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계절근로자 제도의 확대안은 관리와 편의를 위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어,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이 전제되지 않는 제도 확대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이찬 대표 역시 "농촌에서 이주노동자 없이 농업이 지속될 수 없는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이들을 임시 숙소에 가둬놓고 통제하려 한다"며 "이제는 공공이 책임지고 농업 노동력과 주거 문제를 지역사회와 함께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선 여전히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행정도 사업주도 답이 없다"고 한다며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더 이상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전환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경기도가 보다 전향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고용노동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유호준 의원은 "경기도의회에서도 뒤늦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의회 차원의 정책 제안과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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