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1월 7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을 든 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 80보도사진연감 <한겨레21>
[기사 보강: 19일 오후 3시 41분]
10.26 사건으로 사형 당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이 결정됐다. 사형 집행 45년만이자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지 5년만이다.
19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고문 등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는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폭행 및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형법 제125조의 폭행, 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라고 재심 결정 이유를 밝혔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4월 17일, 6월 12일, 7월 12일 세차례 기일을 진행한 뒤 이날 재심 결정을 내렸다. 심문에선 아래와 같은 김 전 부장의 최후진술 녹음 일부가 재생되기도 했다.
"10.26 혁명은 이 나라 건국이념이요,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6.25를 통하여 수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바쳐 지켜온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찌하여 내란죄로 심판받아야 합니까. 10.26 혁명은 순수한 것입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총으로 살해했다.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 보안사령부(사령관 전두환)에 의해 체포됐고, 한 달 만인 11월 26일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같은 해 12월 4일 첫 재판이 열렸고, 재판 개시 보름여 만인 12월 20일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다음해인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고, 나흘 후인 5월 24일 김 전 부장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무덤은 현재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 한쪽에 자리해 있다.
40년이 흐른 지난 2020년 5월 유족들은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10.26을 내란 목적의 살인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공개된 재판 육성 기록에 따르면 재판 과정에서 김 전 부장의 발언은 재판장에 의해 끊임없이 제지당했다. 관련된 공판 조서 역시 삭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