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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연합뉴스/AFP

언론사에서 한국 사회를 취재하는 일을 20여 년간 해오다가, 캐나다에서 박사를 하려고 떠나온 지 4년이 되어 가고 있다. 유학을 나왔지만 노부모 걱정과 아이가 살아가야 할 우리나라에서 연일 들려오는 좋지 않은 뉴스에 계속 신경이 쓰이던 상황에서 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뉴스가 날아왔다. 시차로 인해 계엄 발표 소식을 아침 식사 중에 접했는데, 그날은 학교에 어떻게 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강의 시작 전 한국의 계엄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는 말을 교수에게 꺼냈다. 교수는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The martial law? South Korea? Really?(계엄이라고? 한국에서? 정말?)"

이 교수는 다섯 번이나 되물은 끝에,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유튜브에서 군인들이 국회로 난입하는 장면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옆에 있던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서 온 조교들이, 전제주의 사회를 경험한 탓인지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 대학 수업 풍경
캐나다 대학 수업 풍경 ⓒ 김우철

'왕정' 선포한 듯한 계엄 사태에 국가 이미지 나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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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미지는 재외 동포와 유학생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중반 내가 대학생일 때 학업 목적으로 체류했던 이탈리아에서 한국 유학생은 개발도상국 학생들에게 주는 보조금을 갓 벗어난 상태였다. 그 후 20년이 채 안되서 한국은 놀랍게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2015년, 다시 학업 목적으로 거주했던 런던에서 만난 영국 교수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해 해박한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중국이나 인도 외에 인구도 국토도 작은 나라에 대해 높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이런 국가 이미지의 변화는 단지 경제력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그 문화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된 결과물이었다. 생김새가 비슷한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을 구분하는 지점은 바로 민주주의에 있었다.

하물며 지금 시점의 한국은 해외에서 만나는 대부분 사람이 인정하는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다. 캐나다의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플래그십 모델이 전시된 자리에 이제 한국 브랜드들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또, 한국 자동차는 더 이상 가격 경쟁에만 의존하는 저가 제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더 나아가서 관련 연구 자료들을 보면, 기술력이 비슷해진 오늘날에는 감성 소비를 좌우하는 국가 이미지는 기업 활동에도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는 한류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곳 캐나다의 노인들조차 한국 드라마는 물론 한국 책을 돌려보며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일제'를 보고 그랬듯이, 이제는 사람들이 팬시하고 힙한 것들을 보면 '그거 한국 거야?"라고 먼저 묻는다.

이러한 국가 이미지의 용솟음 속에서, 마치 '왕정'을 선포하는 듯한 계엄 사태는 한순간에 국가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상기해 보면, 국가브랜드 (Nation Branding)는 이전 양대 보수 정부에서 많은 돈을 들이며 공을 들여온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캐나다 대형 매장에 있는 LG 제품
캐나다 대형 매장에 있는 LG 제품 ⓒ 김우철

이러한 국가 이미지의 실추는 탄핵을 당론으로 반대하며 경제 발전과 국가 번영을 그토록 강조하는 국민의힘의 레토릭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경제 측면에서는 인구도 적고 자원도 부족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것은 먼저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과 그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과거 인도 뭄바이의 현대 공장을 취재했을 때, 중장비가 모자라서 손에 의존한 인력으로 거대한 공장을 건설하고, 험지와도 같은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버텼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구와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글로벌 팽창은 이런 노력과 희생 그리고 국민 모두의 헌신과 희생 속에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왔다. 그 많은 위기와 사회 갈등 속에서도 이는 한민족의 번영이라는 공동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화적으로도 계엄은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세계화로 글로벌 자본이 이동하고 기술력도 평준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세계 시장에서는 감성 소비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 '국가 반란 세력'이라는 명목으로 계엄을 공식 발표하는 일은 단순히 국내 문제를 넘어, 국가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반국가적 행위이며,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동포와 유학생들의 정체성과 위상에도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1979년 계엄 당시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밤에는 이동하는 차의 실내등을 반드시 켜야 했고,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차례 검문을 당했던 일이 떠오른다. 심지어 아버지를 차에서 내리게 해 취조하듯 심문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억이 강렬한 이유는 아버지가 혹시라도 변을 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 교련 선생님조차 '이제는 멸공이 아니라 지공(북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던 사회적 변화와 민주화의 기운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오늘날 한국의 이미지는 단순히 물질적 발전을 넘어선, 이러한 폭발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외국에서 살아보면, 오늘날 한국만큼 '힙'한 곳을 찾기 어렵다. 1960~70년대 서구 사회가 반전 운동과 인권 운동으로 뜨거웠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시장 만능주의와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의료와 교육 시스템은 물론, 민주주의적 기운마저 쇠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민주주의를 비교적 최근에 혁명을 통해 쟁취한 아주 드문 사례로, 그 폭발적인 민주적 파토스는 외국 지식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장구한 흐름 속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도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있다. 광주의 상흔과 교훈을 나누며 한국의 K-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힌츠페터상도 우리나라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해외 학회를 다니며 발표하다 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학자들을 마주할 때 깊은 감동을 느낀다. 이러한 흐름을 지속하는 힘은 낡은 세대가 자리를 고수하며 답습하는 관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활발하게 뛰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서 사회에 신선한 피가 공급될 때 가능하다.

옆 나라 중국은 오랜 시간 일대일로와 소프트 파워 전략에 공을 들이며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 다녀온 국제 학회에 수백 명의 중국 학자와 젊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세계는 국가 브랜드에 공을 들이며 문화적 소프트 파워를 구축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를 따라 많은 젊은이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저 멀리 아프리카까지 젊은 연구자들을 보내면서 새로운 문화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반면, 그 시기 들려온 우리나라의 이슈는 광화문 태극기 게양 탑 논란이었다. 그 돈이면 빛의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시대에 그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의 우리 청년들도 세계 곳곳에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1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비상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1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비상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 권우성
낡은 세력은 가라

그래서 세대교체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에 계엄이란 과거의 망령을 꺼내든 전제주의 세력들에 분노한다. 언론사에서 세계 곳곳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 왔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는 없고, 내 오랜 기간의 직업적 경험에도 그것들을 따라가기가 전업 박사로서도 상당히 벅차다.

21세기 생존과 번영을 위한 혁신들은 안일하게 세상을 보는 낡은 머리에서도, 낡은 관료주의와 공포적 전제주의 속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낡은 세력들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갈 수도,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그토록 자주 말하는 국가의 발전은 당신들이 없는 곳에서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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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유학생#해외반응#대한민국#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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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영상기자 현직 여행하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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