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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9 08:48최종 업데이트 24.11.29 08:51

폭설에 새로 생긴 길...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수고로 누릴 수 있는 일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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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아침의 도로 밤새 내린 눈이 반가웠으나 무섭다고도 느낀 아침이었습니다.
눈이 내린 아침의 도로밤새 내린 눈이 반가웠으나 무섭다고도 느낀 아침이었습니다. ⓒ 김경희

28일 오전 7시, 밖을 내다보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밤새 내린 눈은 영화에서나 보던 설국을 만들어냈다. 눈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기세로 내렸고 온 동네를 하얗게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눈은 앞 시야를 하얗게 가릴 정도로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강아지랑 놀이터에서 놀아야겠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출근길 도로에 차가 꼼짝을 하지 못하니 재택근무로 전환한다는 소식이다. 갑작스레 정해진 탓에 미처 재택근무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 직무가 반드시 출근을 필요로 하는 사람, 이미 출근하고 있었던 사람들과 정신없이 연락하며 수습을 하는 걸 보며 정신이 번쩍 났다. 이 상황에 철없이 놀 생각을 하고 있다니.

밖을 다시 살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는 통학로가 보이지 않는다. 쌓인 눈이 아이들 기준엔 무릎에 거의 닿을 지경이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 버스가 천천히 달리고 있다. TV 뉴스를 켰다. 임시 휴업을 하는 학교가 있다고 했다. 지각할까 봐 서둘러 일찍 길을 나섰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다행히 아이의 등교 시간이 9:20까지로 늦춰졌다. 나는 도서관에서 있는 수업을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쏟아지는 눈을 보며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황은 어딜 가기보다 집에서 안전하게 있는 것이 백 번 나을 것 같다.

"선생님, 오늘 정상 수업하나요? 저는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라고 쓰고 차마 발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지난주에도 다른 일 때문에 빠졌는데 또 빠지기가 미안했다. 9시까지만 기다려보자. 눈이 그쳤다.

재빠르게 옷을 입었다. 기모 바지와 롱패딩으로 완전히 무장했다. 정강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가야 했다. 그때 누군가 내어 놓은 작은 길이 보였다. 저 길로 가야겠구나. 길이 없는 곳은 나보다 일찍 길을 나선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곳을 밟으며 버스 정류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버스의 도착 예상 시간이 계속 미뤄졌다. 하지만 사고 나지 않고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이 어딘가 싶다. 버스 기사님은 친절하게도 다른 버스가 지나가며 생긴 길을 따라 타기 좋은 위치에 차를 정차했다.

큰 길로 나오자 눈이 제법 녹아있었다. 밤새 눈을 치우고 염화나트륨을 뿌리며 제설 작업을 한 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 길 위로 새벽부터 일을 하기 위해 달렸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도서관 앞 풍경 도서관 앞에도 길이생겼다
도서관 앞 풍경도서관 앞에도 길이생겼다 ⓒ 김경희

​버스에 내려 도서관으로 걸었다. 학교 교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나와서 통학로를 치우고 있다. 커피를 사러 들른 편의점 사장님은 눈이 와도 할 일은 해야 하니 발주를 얼른 넣고 눈을 치우러 다시 나갈 거라고 하셨다. 역시나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도 작은 길이 내어져 있다.

정오가 지날 무렵의 풍경 그새 눈이 많이 녹았다
정오가 지날 무렵의 풍경그새 눈이 많이 녹았다 ⓒ 김경희

​12시가 넘어 수업이 끝났다. 영하였던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니 빠르게 눈이 녹고 있었다. 그새 길이 더 넓어졌다. 녹은 눈에 길이 질퍽해졌다. 그 길을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분이 제설용 삽을 들고 나와 치우고 계셨다. 도로 옆 한쪽으로 쌓아놓은 눈이 보였다. 이제 도로는 거의 눈이 녹았다.

광명재래시장 입구 다시 활기를 찾은 광명 재래시장의 모습입니다
광명재래시장 입구다시 활기를 찾은 광명 재래시장의 모습입니다 ⓒ 김경희

집에 가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렀다. 시장 안은 눈이 온 것과 상관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활기가 넘친다. 시장 가방 한가득 장을 봤다.

쓰러진 소나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가 부러졌다
쓰러진 소나무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가 부러졌다 ⓒ 김경희

눈이 녹으니 밤새 치열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파트 4층 높이는 거뜬히 되었을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미처 잎을 떨어뜨리지 못한 은행잎과 단풍잎, 잔 가지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연 이틀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 수업에 가기를 참 잘했다. 내가 잠자고 있는 시간에 누군가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현장에서 삶을 일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설이 내린 상황에도 아랑곳 없이 자기의 일을 꿋꿋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안일했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첫눈은 반가웠다. 하지만 조금만 살살 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의 숨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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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대설특보#일상회복#제설작업#안보이는수고에대한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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