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1)씨는 지난 2016년 9월 한 유명 중소기업(B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A씨는 인사·총무 업무를 총괄하는 경영기획팀 차장으로 근무를 시작해 1년 4개월 만인 2018년 1월 상무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지난 2022년 4월 갑자기 퇴사했고, 2023년 9월에는 업무방해와 사문서 위조 행사 혐의가 인정돼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차장에서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B사의 입사요청서와 인사기록카드, 연봉계약서, A씨의 이력서 등에 따르면, 1974년생인 A씨는 대원외고 독일어과와 연세대 건축공학과(신촌캠퍼스)를 졸업하고 건축기사1급 자격증을 보유한 유능한 특목고-명문대 졸업생이었다. 지난 1997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한국토지공사, 아메토(공동게임포털기업), TG삼보(컴퓨터 제조사), 신화아이푸드(외식기업인 신화푸드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했다. 특히 아메토의 경우에는 공동창업했다고 적었다.
A씨가 근무한 부서는 대학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인사처와 경영기획실(경영기획팀)이었다. 한국토지공사에서는 인사처 대리(주임연구원), 아메토에서는 경영지원팀 과장(선임연구원), TG삼보에서는 경영기획실 차장(수석연구원), 신화아이푸드에서는 경영관리실 부장(연구소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네 곳의 근무경력을 모두 인정받아 B사에서 받을 연봉은 5000만 원으로 확정됐다.
한편 가족사항과 관련해서는 모친, 부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지난 1998년 3월에 결혼했으며, 병역은 면제받았다고 적었다.
A씨는 자기소개서에서 자신의 성격을 "대체적으로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이다"라며 "남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업무분야는 기획, 인사, 총무 및 ISO(국제표준화기구) 관련 업무를 주로 해왔다"라며 "물론 관리분야 전반을 두루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국노동교육원 노동법 실무과장, 국민생명보험의 신인사정보시스템 과정, 서울상공회의소의 임금 및 단체교섭 전략세미나, 한국경영법무연구소의 채권관리기본교육과정, 한국능률협회의 노동법 실무과정과 채용부터 퇴직까지 종업원관리과정, 삼성에버랜드 서비스아카데미의 CS기본예절과정 등의 직무관련 교육을 이수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경력과 업무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기술하고, 소개한 데는 B사가 자신의 경력을 믿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이후 B사에 채용된 뒤 경영기획팀 차장으로 근무를 시작해 1년 4개월 만에 상무까지 올랐다. 이와 함께 B사가 별도로 설립한 C사의 상무와 등기감사까지 겸임했다. 이러한 초고속 승진에는 '대원외고-연세대', '한국토지공사-TG삼보' 등의 학력과 경력, B사의 경영권을 행사하던 D이사의 신임이 큰 영향을 미쳤다.
A씨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B사의 인사·회계·발주 등 주영역의 중간관리자"이자 "C사 내 인사·회계·공장관리 등 대부분 영역의 중간관리자"라고 A씨의 지위를 평가했다.
A씨의 초고속 승진과 관련, B사의 임원은 "저희 같은 중소기업에는 고급인력이 오기 힘든데, 대원외고와 연세대 건축학과를 나오고 (여러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고 해서 (이력서에 기재한 학력과 경력을 그대로) 믿었다"라고 설명했다.
고교 졸업 A씨, 2004년 PC방에서 '연세대 졸업증명서' 등 위조
하지만 앞서 서술한 A씨의 학력, 경력, 가족사항 등은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이는 B사가 A씨를 업무상 횡령·배임 의혹과 함께 업무방해, 사문서 위조 행사 혐의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도 A씨의 업무방해와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를 인정해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2023년 9월 21일)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993년 2월 서울 소재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지난 1996년부터 2016년 7월까지 11개 기업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학력(대원외고-연세대 건축공학과)과 건축기사1급 자격증 보유도 허위였고, 한국토지공사, TG삼보 등에서 근무했다는 경력도 대부분 허위였다.
특히 연세대 졸업증명서는 B사에 입사하기 12년 전인 2004년에 이미 위조했고, 그 이후 위조 졸업증명서 이미지 파일을 자신의 USB에 저장해왔다. 이는 연세대 위조 졸업증명서를 다른 회사 입사 과정에서도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피고인은 2004. 불상경 서울 광진구 소재 PC방에서 당시 알고 지내던 성명불상 직원에게 포토샵 작업을 통해 연세대 졸업증명서를 위조할 것을 부탁한 뒤, 같은 직원으로부터 피고인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자, 추후 취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같은 위조 졸업증명서 이미지 파일을 피고인 소유 USB에 저장하는 방법으로 보관하였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 2쪽
실제로 A씨는 지난 2010년 구인·구직 인터넷 플래폼인 '잡코리아'에서 축전지 제조기업인 E사의 공개 채용 공고를 보고 잡코리아에서 제공하는 이력서 양식에 '연세대 졸업', 'TG삼보 근무', '건축기사 자격증 소유' 등 허위학력과 경력을 기재해 E사에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TG삼보의 경력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원천징수영수증)까지 추가로 위조해 제출했고, 이후 총무로 채용돼 1년 6개월 정도 근무했다.
피고인은 E사에서 퇴직한 뒤에도 위조한 졸업증명서와 경력증명서를 이용하면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공개채용 광고 중인 다른 회사에 손쉽게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잡코리아에 공개채용 광고를 게재하는 불특정 회사들에 입사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 2쪽
원천징수영수증과 대표이사 인감까지 위조
허위학력과 경력으로도 손쉽게 채용되자 같은 허위학력과 경력으로 B사의 공개채용에 응시해 정식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6년 8월 서울 광진구 소재 한 PC방에서 B사의 공개채용 공고를 본 뒤 잡코리아를 통해 허위학력과 경력을 적은 이력서를 B사에 제출했다. 이후 이사와 전무가 면접관으로 참여한 채용 면접을 거쳐 합격을 통지받았고, 경리담장 직원으로부터 졸업증명서, 직전 직장 경력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을 입사요청일로부터 2주 안에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A씨는 졸업증명서와 경력증명서 등 자격증명서류는 근로계약체결 이후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PC방에서 신화아이푸드 경력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을 위조했다. 그런데 연세대 졸업증명서와 신화아이푸드 경력증명서는 제출하지 않고, 신화아이푸드 원천징수영수증만 자신의 인사기록철에 첨부해두었다. A씨가 이렇게 한 이유를 법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신화아이푸드 경력 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을 엑셀작업을 통해 위조한 다음, 2004년경 미리 위조해두었던 연세대 졸업증명서와 함께 출력하였으나, 피고인이 2016년 9월 19일경 입사일로부터 B사 인사담당으로 출근하게 되었기에 피고인의 자격증명에 관한 서류도 다른 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접수 및 관리하게 되는 사정을 이용하여, 출력한 연세대 졸업증명서와 신화아이푸드 경력증명서는 제출하지 아니한 채로 폐기하고,
위조한 신화아이푸드 원천징수영수증은 B사 연봉 협상에 사용할 목적으로, 2016년 10월 16일경 B사 1층 피고인의 사무실에서 관리하는 B사 임직원 인사기록 보관함에 보관된 피고인의 인사기록철에 첨부하여 비치해두는 방법으로 사실증명에 관한 사문서인 신화아이푸드 원천징수영수증 1매를 그 점을 모르는 B사에 행사한 다음, 경영기획 부서 상무 김아무개에게 피고인의 자격증명 서류 일부가 제출되지 않거나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음으로써 B사의 입사에 따른 인사검증 절차를 마쳤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 4쪽
인사·총무 업무를 총괄하는 경영기획팀 차장으로 근무한다는 점을 이용해 일부 자격증명 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위조했다는 것이다. 또한 A씨는 신화아이푸드에서 약 3년을 근무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약 2개월만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화아이푸드에서 받은 월급을 연봉으로 환산할 경우 2700만 원에 불과했지만, 유리한 연봉 협상을 위해 소득을 4500만 원으로 허위기재한 원천징수영수증을 만들었고, 그것을 정식으로 제출한 것처럼 인사기록철에 첨부해 두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화아이푸드 대표이사 인감까지도 허위로 만들었다.
신화아이푸드 대표이사 인감 날인란에 인터넷에서 선별한 상호불상 법인 대표이사 인감 날인 이미지 파일을 첨부한 엑셀파일을 같은 PC방에서 출력하고, 2010년경 위조하였던 'TG삼보컴퓨터 경력증명서' 엑셀파일을 같은 컴퓨터에서 복제한 다음, 신화아이푸드를 입력한 다음 상호불상 법인 대표이사 인감 날인 이미지 파일을 첨부한 엑셀파일을 같은 PC방에서 출력하고... -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약식명령 4~5쪽
A씨는 지난달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왜 B사에 입사할 때 학력과 경력을 모두 허위로 기재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 말 없다, 전화를 끊겠다"라고만 답변했다.
"결혼했다는 것도, 부인과 아들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또한 A씨가 이력서에 기재한 가족관계도 대부분 거짓이었다. B사의 한 간부는 "결혼했다는 것도, 부인과 아들이 있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다"라고 전했다. 또다른 간부는 "A씨가 'B사는 우리 엄마 회사다'라고 말하고 다녔고, 자기 부인은 이화여대를 나와 대원외고 수학 선생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라며 "나중에 보니 가족관계도, 경력들도 거짓말이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A씨가 주변에 자신의 부인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자신을 B사에서 설립한 C사의 대표이사를 사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여성 F씨는 지난 2018년 6월 26일자 <패션비즈> 기사에서도 C사 대표 이사로 스스로를 지칭했다.
B사는 공사대금 리베이트 수수 의혹과 관련해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A씨를 고소했는데, A씨가 건설사로부터 총 5억 원의 리베이트 중 3억 원의 현금을 두 차례에 걸쳐 받았을 때 'B사의 대표'라고 사칭한 여성이 바로 F씨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서(2024년 3월 18일)를 보면 "성명불상 여성을 B사 대표라고 믿은 (건설사 임원)으로부터 현금 1억 원, 2억 원을 돌려받고"라고 적시된 대목이 나오는데 '성명불상의 여성'이 F라는 것이다.
F씨는 <오마이뉴스>가 A씨를 취재한 직후 SNS에 올린 글에서 "2021년 초부터 3년여간 근무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이제 떠나려 한다"라며 상무자리에서 물러났음을 알렸다.
1210만 원어치 상품권 임의사용해 기소유예 처분
한편 B사는 발주단가 부풀리기, 공사대금 리베이트 수수, 상품권 임의사용 등 다양한 업무상 횡령·배임 의혹으로 A씨를 두 차례 고소했다. 먼저 공사대금 리베이트 수수와 상품권 횡령·배임, 발주단가 부풀리기를 통한 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포함된 1차 고소 사건 관련, 경찰과 검찰(서울동부지검)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대부분 불송치하거나 불기소하는 처분을 내렸다(3월과 7월). 이에 최근 B사는 무혐의 처분된 1차 고소 사건에 대해 항고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다만 A씨의 상품권 임의사용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경찰과 검찰은 A씨가 B사 법인카드를 이용해 신세계 상품권을 구매한 뒤 사용처를 허위로 기재하고 1210만 원을 임의로 사용한 점은 횡령으로 인정했다. 이는 B사가 고소한 횡령액 2억 6000여만 원에서 극히 일부만 인정한 것이었다. 기소유예란 범죄혐의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범죄의 경중, 피해 정도, 피의자의 반성 여부 등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