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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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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날이 돌아왔습니다. 산 자들은 그동안 통곡과 분노와 답답함을 풀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어정거리다 세월만 흘려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죽은 건지, 살아남은 우리들이 죽은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넋을 흘리니 무념무상이란 말도 덧없었습니다. 시간이 가는 건지 오는 건지, 아니면 멈춘 건지 도무지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4월이 왜 그토록 잔인하고 혹독해야만 하는가, 정부나 사회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봄날, 마침내 꽃잎이 한 잎 한 잎 눈꽃이 되어 떨어지던 어느 하루, 무수한 사람들이 오가며 연분홍빛 웃음을 휘날리고 시끌벅적한 발걸음을 도처에 남기던 날. 4월의 뜻밖의 이별, 4월의 느닷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들은 지은 죄 없이 주변 사람들 시선을 피해 바다를 찾습니다. 팽목항을 찾습니다.   
 팽목항.(사진=뉴스사천 자료사진)
 팽목항.(사진=뉴스사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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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텅 빈 바다는 더 넓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바다 예전과 같지 않은 바다에 홀로 서면 이젠 그만 포기해야 하는가, 언제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에 가슴은 더욱 처절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입술을 깨물며 무던히 참으려 애썼지만 다시금 미어지고 혼미해지는 영혼을 어찌해야 하는지요. 

바다를 남겨 두고 돌아오는 심정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쓸쓸하고 허허롭습니다. 어깨너머로 들리는 묵묵부답의 파도소리만 거칠 뿐 나아지거나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들어 하며 우울하고 나약해 보이는 생각들, 표정들을 떨치려 해도 맘과 같지 않습니다. 피치 못할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그렇구나 자위해 봅니다. 

바람에 힘없이 쓸린 연분홍 벚꽃잎이 머리로 가슴으로 부대낍니다. 슬며시 벚꽃의 꽃말을 헤아립니다. 무수한 꽃잎만큼이나 꽃말 또한 무수합니다. '내면의 아름다움, 정신미情神美, 아름다운 삶의 덧없음, 순수함, 새로운 시작과 희망, 우아한 여성, 재생, 순결, 희망, 덧없음, 고귀한 자태…' 학생들은 때가 겹쳐서인지 꽃말을 '중간고사'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합니다. 

아이들의 삶
 
 바닥에 떨어진 벚꽃. (사진=뉴스사천 자료사진)
 바닥에 떨어진 벚꽃. (사진=뉴스사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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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잠시 머무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지는 벚꽃을 받아들이는 직관이 놀랍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 열여덟의 삶은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대책 없이 보내 버린 그 시간들이 허망하고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열여덟의 삶은 어느 것도 내칠 수 없는 아름답고 고맙고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순간들이 새삼 위안이 되고 일어설 용기를 싹틔웁니다.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고대하고, 누군가 힘이 되어 줄 것이라 희망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고통을 꿰맨 바늘자국이 아물지 못한 채 딱딱하게 굳습니다. 눈물이 말라 돌이 될 때까지 울어 본 자만이 세상에는 어떤 말로도 위로 받지 못할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안다, 고 토로한 어느 시인의 절규를 기억합니다. 이러한 절규마저 감내하며 주저앉은 자리에서 새 순과 같은 열정을 품습니다. 

햇살이 고마운 날, 미래를 바라보며 나무 한 그루를 가꿉니다. 새롭게 만나게 될 아이들을 위한 그리움입니다. 상처 입은 심장을 어루만지며 나무를 가꿉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너를 기다린다'는 꽃말을 지닌 우유 빛깔 목피의 자작나무도 있습니다. 더 이상 고개 떨궈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더는 나약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허송하며 무기력한 엄마 아빠로 살지는 않겠습니다. 힘을 내어 못다 한 아이들 삶의 몫까지 아우르겠습니다. 아이들 껴안 듯 나무와 함께 뒹굴며 다시 태어날 아이들 이름을 힘차게 부르겠습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잊지 않고 기다릴게." 
 
 힘을 내어 못다 한 아이들 삶의 몫까지 아우르겠습니다. 아이들 껴안 듯 나무와 함께 뒹굴며 다시 태어날 아이들 이름을 힘차게 부르겠습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잊지 않고 기다릴게.”  (사진=뉴스사천 자료 사진) 
 힘을 내어 못다 한 아이들 삶의 몫까지 아우르겠습니다. 아이들 껴안 듯 나무와 함께 뒹굴며 다시 태어날 아이들 이름을 힘차게 부르겠습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잊지 않고 기다릴게.”  (사진=뉴스사천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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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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