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3 11:47최종 업데이트 23.05.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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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무역수지 적자가 472억 3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다. 최대 흑자국이었던 중국은 31년 만에 적자국으로 돌아섰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장면 ⓒ 연합뉴스

 
'쇼크', '충격'이라는 제목을 단 삼성전자 1/4분기 반도체 4조 6천억 원 대규모 적자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살림살이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삼성의 실적을 국가 경제와 수출의 바로미터로 취급하는 현실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국민에게 공포에 가까운 위기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불안감의 확산은 내수 경기를 더 위축시킬 것이고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영세 자영업자나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내수와 수출 모두 초비상

"코로나 끝나면 나아진다고 하지 않았나요? 더해요, 더. 바닥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물가는 오르지, 사람들은 밥조차 안 먹나 봐요."


점심을 위해 찾은 식당에서 주인은 인사가 아니라 푸념부터 늘어놓는다. 재룟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밥값을 올렸는데 손님마다 한소리씩 하는 통에 가시방석이란다.

"점심 때면 저쪽 편의점에 줄을 서요. 여기에 밥 먹으러 오던 손님들인데..."

주인의 하소연에 마음이 무겁다. 옆자리 손님들이 "오늘은 밥값 벌이라도 할 수 있을까"라며 주고받는 대화도 남의 일 같지 않다. 후보 시절 "삶의 질을 높이는 행복 경제로 혁신하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도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물론 우리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미국발 금리 인상과 세계 경기 침체를 떼놓고 말할 수는 없다. 물가고의 이유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가스 등 원자재 가격 인상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대외적 요인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물가 폭등이라도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내수 경기를 살리고 물가 폭등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줄 대책이나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금리에 돈 빌릴 길도 돈 갚을 길도 막혀 버린 서민들의 구제책 마련에 정부는 아예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기껏 저신용자에게 최대 100만 원 15.9% 고금리 이자 소액 생계 대출을 내놓은 게 그나마 눈에 띄는 정책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 대출이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색 내지만, 없어서 양잿물이라도 마셔야 하는 서민들 때문에 대출 창구가 북새통이 된 걸 자랑할 일인지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중심은 가계보다는 기업, 서민보다는 부자에게 맞춰져 있다. 증명된 적 없는 낙수 효과에 기대어 수출과 대기업을 위해 온갖 규제를 풀고 법인세 인하를 단행했다. 주 52시간 노동제를 69시간제로 바꾸려 한 것이나 최저임금을 동결하려 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이 경제 정책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을 위해서 수도권에 대학 정원까지 증원하려는 정부. 수출과 대기업과 반도체 산업이 국가의 미래라는 맹신에서 비롯된 경제 정책은 단순하고도 거침이 없다. 그러나 수출과 기업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22년 무역수지 적자가 472억 3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다. 최대 흑자국이었던 중국은 31년 만에 적자국으로 돌아섰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귀에 박힌 구호를 생각한다면 무역수지가 최대 적자이고, 중국마저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바뀌고, 국가 경제의 기둥이라는 삼성마저 대규모 적자를 낸 지금이 기업 경제, 국가 경제에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마치고 귀국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서 내려 영접 나온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김대기 비서실장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2023.4.30 ⓒ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의 위기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반도체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한국에서 대만으로 수입 시장을 옮기고 있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오히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그저 수용하고,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이 러시아까지 자극했다. 세계 경제 침체라는 위기에서 정부가 공공연하게 미·중, 미·러 갈등의 최전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니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가 단지 세계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편향된 외교와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있냐는 말이다.

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할 때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지원법을 잘 해결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정부 사절단은 미국에 약 1000억 달러(약 133조 원)의 투자를 안겨줬다. 그러나 윤 정부가 얻어낸 건 자동차 수출이나 반도체 수출 규제의 전향적 조치가 아닌 북한의 위협에 한·미가 공동 대응한다는 정도였다.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것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던 워싱턴 선언조차도 한·미·일과 북·중·러 갈등의 최전선에 서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보여준 무모함이나 다름없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과거 한 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기대를 우려로 바꿔 놓았다. 미국과 실질적 핵 공유를 완성했다 자찬하지만 대화보다는 힘의 우위로, 자주 국방보다는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어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워싱턴 선언은 평화와 통일, 국민의 생명 그 어떤 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중국·러시아와 갈등을 빚으면서 이들 나라에서 우리 기업들이 배척당하고,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항의도 못 하고 133조 투자를 약속하고, 일본의 소부장(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유치해 반도체 강국을 만들겠다고 하고(관련기사: 윤석열 대통령님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https://omn.kr/23cln)... 윤 정부의 경제 정책이 이렇게 위태롭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을 찾아 의관을 차려입은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1.12.29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29일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경북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놨다"라며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되짚어 보면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을 내놓자 당시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이런 대책으로 쓰러져 가는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경제를 포기했다고 솔직히 선언하라"라고 말했다. 추경호 의원은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로 경제수장이 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경제 지휘봉을 잡은 윤석열 정부 2023년 봄은 내수도 수출도 모든 것이 엉망이다. '차라리 경제를 포기했다고 선언하라.' 이 말을 윤석열 정부에 되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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