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4 04:46최종 업데이트 23.05.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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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전 영역에서 윤석열 정부를 집중진단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세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세 번째로 권력기관 개혁(하)입니다. [편집자말]

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장단이 2022년 7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대국민 홍보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문재인 정부 이전 경찰은 검찰에 늘상 치이기는 했으나, 수사권 조정 정책으로 검찰과 대립하고, 검사 비리에 대한 수사를 통하여 검찰 견제역할을 미미하게나마 수행했다. 2012년 김광준 검사에 대한 경찰 수사가 대표적이다.

모욕과 수치심에 비틀거리는 '경찰'

문재인 정부 시절 개혁 성과에 따라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의 대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불송치결정권을 보유하고 국가수사본부 설치, 자치경찰 출범 등으로 경찰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경찰 문제에 있어서 '검찰 정권의 경찰 모욕주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가령, 윤석열 정부 출범 초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와 행안부 장관의 중요 경찰수사 지휘 언동이 터져 나온 사례가 그 중 하나다. 하지만 1991년 5월 31일 법 개정 이래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사무에 경찰 사무 관련 규정은 없다. 따라서 행안부에 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국을 둘 법적 근거가 없다. 경찰 수사를 행안부 장관이 지휘하는 것도 불가하다.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국을 설치하고, 경찰 수사를 지휘하겠다는 언동은 법무부 내 인사검증단 설치와 함께 위헌·위법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이 특정 사건에 대해 시시콜콜 철저 수사 지시를 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하고는(2021.10.13.), 틈만 나면 범죄 수사를 입에 올린다. 지난해 경찰의 날 축사에서 아동 범죄, 스토킹 범죄 수사와 함께 "마약과의 전쟁에서 성공해 달라"고 한다. 사실상 경찰에 대한 하명수사 지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경찰 수사의 사령탑인 국수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실제로 임명까지 한 이 정부의 인사 행태는 경찰 조직에 깊은 모욕감을 주었다. 수사권 독립 문제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대립해 온 것이 30년을 넘는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떠나 국정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올라갔으면, 검-경간 갈등을 중화하여 두 기관이 서로 협력하면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한 책무다. 그런데 경찰 수사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검사 출신을 대놓고 임명한다. 경찰이 그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입장 바꾸어 검찰총장에 혹은 대검 감찰본부장에 법조인 자격을 가진 경찰 출신을 임명하면 검찰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국정원'의 초라한 몸부림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4일 국가정보원 청사를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전 김규현 국정원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뒤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쓰인 원훈석이 보인다. ⓒ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국정원이 처음 한 일은 원훈석의 교체였다(2022.6.24.).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고 쓰인 원훈석을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 김종필 초대 부장이 만든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고 쓰인 원훈석으로 바꾼 것이다. 정치에 개입하고, 사람들을 잡아들여 고문하던 중앙정보부의 원훈을 되살린 데서 윤석열 정부 국정원 담당자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국정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정원의 새로운 담당자들이 아는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 수하로 여겼던 검찰은 이제 권력 자체로 변모해 있었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기능이 살아 있을 때 검찰의 주요 수사는 국정원의 "기획조정" 대상이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여부에 관한 원세훈 국정원의 간섭이 대표적이다. 대공 수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검찰이 권력 자체인 지금 국정원이 과거처럼 검찰의 처분에 관여할 수 있을까? 보수 정부에서 국정원이 정권 수호 첨병역의 수단이 되었던 상시적인 정치정보수집과 민간인 사찰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조치로 못하게 되었다.

국내정보 수집을 살려 보려고 이것저것 궁리를 하겠지만, 국정원법 개정시 삽입된 "정치관여의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을 수집·분석하기 위한 조직을 설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바뀐지 모르고 어떻게든 정치에 개입해 예전 국정원을 살려보고자 기껏 벌이는 행태가 검찰 고발을 통하여 안보 사안을 정치현안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서해, 동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직 국정원장 두 분(서훈, 박지원)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정권보위기관으로서의 위상 회복은 고사하고 수사를 통한 전임 정부 보복이라는 검찰 권력의 빅픽처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 조직의 현실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국정원은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사건을 통하여 대공수사권 복원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약발은 신통치 않다. 과거 대형 공안 사건과 같은 파급력은커녕 여론이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공수사권 존치를 대내외에 천명하지만, 2020년 국회 입법을 통해 결정한 사항이라 이를 되돌리려 해도 국회 입법이 필요한데, 현재 국회 상황에서는 무망한 일이다.

대체 왜 저럴까 싶은 '감사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2년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있다. 오른쪽 앞은 최재해 감사원장. ⓒ 남소연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감사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다. 헌법상 독립기관의 위상과 품격을 저버리고 스스로 검찰의 하수인 역을 자임한다. 그 한가운데 감사원 사무총장이 있다.

전임 정부에서 추진된 정책 현안을 모조리 위법시하면서 감사를 개시하고, 검찰에 고발하고 수사참고자료로 대검에 송부한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변호인 입회를 거부하기도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은 2021년 7월 변호인 입회 제도를 신설했지만, 피조사자가 감사원으로부터 변호인 입회를 거절당했을 경우 이에 이의를 제기할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서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고, 그 상황을 대통령실과 공유하다 언론에 포착됐다. 국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어설프게 맞대응하다 위증의 결정적 꼬리를 밟히기도 했다. 감사원은 기관의 장인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감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권력교체기 감사원의 독립성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정권의 하수인역, 검찰 수사의 전 단계 보조자 역을 이처럼 철저하게 자임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국군방첩사령부의 부활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장성 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황유성 국군방첩사령관 삼정검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령 검토 등의 온갖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이 드러난 기무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다시 태어났다. 오직 군 내부 정보기관, 수사기관으로만 직무를 한정하고 과거의 온갖 전횡과 갑질을 근절할 제도적 장치를 두었다.

그러나 국정원과 달리, 기관의 근거가 되는 규범이 대통령령인지라(국정원은 국회 입법),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바로 이름부터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로 바꾸었고, 직무범위 등도 과거로 회귀했다. 방첩사가 또 다시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 등을 일삼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두 가지 장면은 유심히 곱씹어볼 대목이다.

첫째는 윤석열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무속인 '천공'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자택과 국방부 재직 시절 사용한 개인용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한 일이다(관련기사 : [단독] 군 방첩사, '천공 의혹' 부승찬 전 대변인 집 압수수색 https://omn.kr/22uiy). 관련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는 와중에 민간인 신분이 된 부 전 대변인에 대하여 군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일이다.

둘째는, 지난 3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첩사를 방문한 일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31년 만의 부대방문이라고 하는데, 31년 전이면 1992년 노태우 대통령 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보안사령관 출신이었고, 당시 보안사는 국정원과 정권 보위의 첨병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이 폭로된 것도 그 즈음의 일이다. 노태우 이후 민주당과 보수정당을 불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방첩사 전신 부대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여러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4년간 방첩사가 어떻게 변모할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더는 권력기관이 망가지지 않기를

권력기관들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만 직무에 전념하고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문재인 정부의 지침은 여전히 유효한가? 심히 회의적이다. 검찰이야 권력 그 자체가 되어 수사와 기소 자체가 정치행위로 전락했고, 입법으로 직무범위를 정하고 정치불개입 조항을 정해둔 국정원은 그 지침의 유효성이 제한적이나마 기능하고 있다. 그마저도 호시탐탐 전복을 꾀한다.

대통령령이 모 규범인 방첩사도 구시대로의 회귀를 강렬하게 소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정원과 방첩사 방문으로 그 꿈을 부채질한다. 윤석열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경찰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모호하다. 경찰 수사 역량 및 전문성을 더욱 높이고, 자치경찰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만, 이 정부가 여기에 어떤 의지를 보였다는 징후는 포착된 바 없다.

남은 4년, 기대는 고사하고 우려와 걱정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더 역진되지 않으려면 국민들의 감시가 절실하다. 내년 총선도 관건이다. 총선에서 집권당이 다수당이 되면 바로 국정원·방첩사부터 과거로 회귀시키고, 공수처 폐지, 경찰수사에 대한 검찰 지휘권 회복부터 추진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관련기사] 
[기획①] 1년간의 추락... 윤석열 정부의 국가시스템 붕괴와 국정혼돈 https://omn.kr/23ruk
[기획②] 스스로 '서열 1위'가 된 검찰... 그 위험한 징후들 https://omn.kr/23s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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