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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목록을 살펴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은장도·강아지 모델비·추수감사절 선물 등으로 기재된 사용내역이다. 국회의원이 정치활동을 위해 후원받은 돈이 '공적인 경비'로 판단될 경우, 정치자금 사용의 폭이 비교적 넓게 해석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 국회의원 정치자금 사용내역에서 확인된 '이색' 정치자금 사용내역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박성민은 이준석에게 왜?... 빛바랜 은장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등이 2021년 12월 3일 울산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소위 울산회동)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 가장 위에 박성민 의원도 함께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직후 직접 박 의원에게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등이 2021년 12월 3일 울산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소위 울산회동)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 가장 위에 박성민 의원도 함께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직후 직접 박 의원에게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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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을 무렵인 2021년 10월 29일. 당시 이준석 당대표가 지역방송사 대담 및 간담회 등을 위해 울산을 찾았다. 박성민 의원(울산 중구)은 울산시당 위원장 자격으로 이 대표와 아침부터 함께 했다. 박 의원은 당시 울산시당 당원·당직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공항에서 이준석 대표님을 마중하면서 종일 대표님을 모시고 있다. 정말 대표님의 탁월한 리더십, 지도력을 몸소 느끼고 있다."

그리고 박 의원은 이 대표에게 선물을 하나 증정했다. 바로 '은장도'였다. 그는 2021년 11월 1일, '당내 현안 관련 간담회 기념품(이준석 당대표 방문 기념 은장도)' 명목으로 정치자금 22만 원을 지출했다. 

박 의원은 대체 왜 '충절'의 상징인 은장도를 이 대표에게 선물했을까. 박 의원 측은 "은장도는 울산 무형문화재이자 울산 중구의 상징적인 기념품"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준석 당대표의 울산방문을 기념하고자 선물했으며, 이와 관련 울산시 선관위로부터 유권해석도 받아 정치자금으로 구입했다"는 게 설명의 요지였다. 특히 조선시대부터 울산 중구 일대를 중심으로 '병영은장도'가 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지역 기념품을 선물했을 뿐, 별다른 뜻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다만, 박 의원의 '은장도 서사'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대선이 끝난 직후,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됨에도 이준석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아 윤석열 대통령 및 친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대표와 친윤계의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비서실장직을 3개월여 만에 내려놓게 됐다. 은장도의 빛이 바래진 순간이었다. 

미 상원의원에게 '한글 넥타이' 선물한 박진, 추수감사절 챙긴 신원식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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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국민의힘 의원(외교부장관, 서울강남을)은 2021년 5월 11일 18만 6000원, 13만1000원, 74만7000원을 각각 '선물'에 썼다. 사용내역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선물'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과연 누구에게 준 선물일까. 

박진 의원실 측은 <오마이뉴스>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 박 의원과 같은 당 최형두 의원(창원마산합포구)이 '백신 외교 사절단'으로 출국하면서 외국 유력 인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는 것.

가장 고액이었던 1건(총 9개 구매, 74만7000원)의 품목은 넥타이로, 한글 문양을 디자인에 넣고 있는 패션잡화기업에서, 나머지 2건은 국회 내 기념품 가게에서 지출했다고 밝혔다. 이 '한글 문양 넥타이'에 대한 설명은 최형두 의원의 블로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쿤스 의원(미국 델라웨이주 상원의원)이 서울 방문 기간 내내 매고 있던 넥타이가 바로 야당 방미대표단이 선물했던 한글자음글자 디자인 넥타이였습니다 (...)  미국 의원들도 저희들에게 작은 기념품과 감사 서한을 보내왔습니다. 이번 방미 의원 외교에서 박진 의원님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최 의원에 따르면, 박 의원 등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상원 외교위원장 때 선임 보좌관을 지냈던 프랭크 자누치 맨스필드재단 이사에게도 한글 문양 넥타이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프랭크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1년 자신이 매고 있던 녹색 넥타이를 조 바이든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에게 선물'한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자금으로 선물을 구입한 사람은 또 있다. 신원식 의원(비례대표)은 2020년 11월 23일에 백화점에서 정치자금 26만 원을 '미국 추수감사절 축하 기념 선물' 명목으로 지출했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에서는 명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용내역 역시 생소하다. 

이에 대해 신 의원 측은 "(신 의원이) 국방위원이다보니 한미동맹 강화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미국 주요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주한 미국 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우호를 증진하고 향후 긍정적인 신뢰관계를 맺기 위해 선물을 했다"라고 밝혔다. 

강아지 모델비 50만 원의 정체
 
김남국 민주당 의원의 의정보고서 표지
 김남국 민주당 의원의 의정보고서 표지
ⓒ 김남국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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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산단원을)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에는 '강아지 모델비'가 있다. 김 의원은 2021년 11월 25일 의정보고서 사진 사용 관련 강아지 모델비로 50만 원을 지불했고, 실제로 그 다음달에 발간된 의정보고서에는 김 의원이 한 삽살개와 함께 찍은 사진이 표지 사진으로 등장한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의정보고서의 모델이 된 강아지는 안산 단원을 지역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한 당원의 반려견이다. 지역 행사 등에서 자주 만나면서 김 의원과도 친분을 쌓았다. 김 의원 측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요구도 높아진 것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강아지를 의정보고서 모델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 측은 또 "강아지를 키우는 당원이 '모델비' 제공을 한사코 거절했지만 정치인들의 의정보고서에 포함되는 사진에 대한 초상권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어서 의원실 논의를 거쳐 '모델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소방, 소방, 소방'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지난 2022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대한민국공무원노동종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공노총 소방노조) 고진영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 소방노조 회견 지켜보는 소방관 출신 오영환 의원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지난 2022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대한민국공무원노동종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공노총 소방노조) 고진영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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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민주당 의원(경기의정부갑)의 정치자금 내역은 '소방, 소방, 소방'이었다. 소방 관련 정치자금 지출 내역만 최소 29건, 약 553만 원을 썼다. 

'부상소방관 위로금' 90만 원(2021년 3월 23일), '전국의용대소방대연합회 정기총회 축하 난' 10만 원(2021년 4월 9일), '수도권 119특수구조대 항공팀 개소식 괘종시계구입' 46만 원(2021년 9월 24일), '몸짱소방관 희망나눔달력 구입(화상환자 지원)' 5만9500원 (2021년 12월 21일) 등 내역도 다양하다. 소방관 개인 혹은 단체의 경조사뿐 아니라 후원이나 소방관 간담회 개최 등에도 정치자금을 꼼꼼하게 사용했다.

오 의원 측은 "아무래도 소방관 출신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정치자금을) 소방 쪽에 관련해서 지출하게 됐다. 내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교토국제고 후원은 왜?

그밖에도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구 야구팀인 NC다이노스 티셔츠·모자를 구입하는 데 2021년 4월에 각각 14만 9000원·17만 200원의 정치자금을 사용했고, 점퍼 번호와 이름을 마킹하는 데는 2만 5000원의 정치자금을 지출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2020년 12월 8일에 국회사무처 관리국 관리과(의원회관 환경미화원) 물품 장갑 100켤레 기부에 21만 300원을 사용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충남서산·태안)은 2021년 3월 19일 재일교포들이 재학 중인 교토국제고 야구부에 50만 원을 후원했다. 성 의원이 속해 있던 한일의원연맹이 교토국제고의 고시엔(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출전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후원을 하자, 이에 동참한 것이다.

당시 전혜숙 민주당 의원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도 각각 100만 원, 김한정 민주당 의원도 30만 원의 정치자금을 교토국제부 야구부에 후원하는 데 썼다.  

태그:#국회의원 정치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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