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실패작일까. 수치만 놓고 보면, 시청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는 잠에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낮은 시청률에도 높은 화제성을 뽐냈던 예외적인 드라마도 있었다. JTBC '멜로가 체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시청률과 화제성은 비례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ENA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처럼 말이다. 

2022년 11월 21일부터 2022년 12월 27일까지 방송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12부작)'는 주영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첫 회 시청률은 0.633%(닐슨코리아 기준)로 처참했다. 하지만 7회에서 1.2%까지 상승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도권 기준으로 1.413%까지 올랐던 걸 보면 일정한, 소수의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사실조차 몰랐다. 지상파부터 종편, 케이블 등 워낙 다양한 채널에서 드라마를 제작하고, 심지어 여러 OTT에서 경쟁적으로 오리지널 드리마를 쏟아내는 통에 웬만큼 기대작이 아니면 챙겨볼 여력이 없다. 만약 OTT가 없었다면 0%와 1%를 오갔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드라마를 볼 기회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다가 '제목'에 꽂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니! 이보다 내 마음을 더 적확히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주저할 이유는 많았다. 0% 시청률의 드라마가 재미있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설현과 임시완, 두 젊은 배우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 설현은 매 작품마다 연기력 이슈가 따라붙는 배우이지 않은가. 
 
 ENA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포스터.

ENA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포스터. ⓒ ENA

 
제목이 준 강렬한 궁금증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강렬한 궁금증과 "인생 파업을 선언한 자발적 백수 '여름'과 삶이 물음표인 도서관 사서 '대범'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 줄 두 청춘의 쉼표 찾기 프로젝트"라는 설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위로가 필요했던 걸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극적으로 덧칠하지 않은 진솔함이 느껴졌다. 그거만 됐다 싶었다. 

"서울과 반대편으로 가는 평일 오전의 지하철은 같은 세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어쩌면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남들과 다른 반대쪽을 향해 가면 좀 더 한산하고 좀 더 조용하고 평화롭지 않을까?"

여름(설현)은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손해보고 사는 게 편하다는 엄마의 말을 좌우명 삼아 살아가다보니, 이리저리 치이는 게 일이다. 회사에서는 상사와 동료에게 휘둘리기 십상이고, 남자친구는 소심한 여름을 답답해 한다. 갑갑한 일상이 이어지던 여름의 삶이 요동친다. 남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하고, 엄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다. 

출근길, 어김없이 지옥철. 여름은 우연한 일로 회사로 가는 지하철을 놓치게 된다.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순간,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과 찬란히 만개한 벚꽃이 눈에 들어 왔다. 여름은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서울 반대편으로 향했다. 눈앞에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자연스레 다른 삶을 상상해 본다. 남들과 다른 반대편으로 가면 어떨까.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 파업이다."

마침내, 여름은 '인생 파업'을 선언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기로 선택했다. 자신에게 갑질했던 무개념 상사에서 시원하게 한방 먹이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최소한의 짐만 배낭에 챙긴 다음 과감히 서울을 떠난다. 집을 떠나며 여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내가 뭘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여름은 그 답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여름은 바닷가에 인접한 작은 마을 '안곡'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곳의 비어있는 '당구장'에 살게 된다. 숨가쁘게 흘러가는 도심의 삶에서 벗어난 여름은 안곡에서 침잠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되고, 보고 싶은 영화를 밤새도록 봐도 되고, 듣고 싶으면 듣고, 걷고 싶으면 걸"을 수 있다. 시간에 쫓겨 살았던 여름은 "시간 부자"가 됐다. 안분지족의 삶이다. 

하지만 안곡에서의 생활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안곡 사람들에게 여름은 '외부인'이자 배척의 대상이다. 만만치 않은 텃세에 여름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 와중에 각자의 이해관계가 결부되며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그런 여름의 숨통을 트여주는 인물이 안곡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대범(임시완)이다. 또, 까칠한 고등학생 봄(신은수)과 친해지며 조금씩 안곡에 적응하게 된다. 

여름과 대범의 성장기

이렇듯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여름의 안곡 적응기이자, 여름과 대범의 성장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안곡을 찾은 여름과 내면에 숨겨진 상처와 아픔을 안고 있는 대범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중반까지 성장 드라마로 진행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갑자기 살인범을 찾는 스릴러로 전환된다. 이 전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그럼에도 '청춘 세대를 위한 힐링'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담히 들려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는 그 자체로 희귀하다. 온통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요즘, 더욱 고마운 작품이다. 마음 주민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데다 설현과 임시완도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듯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동안 연기력 이슈에 시달렸던 설현도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웠다. 

여름은 역사 밖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고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꿨다. 평생 유지했던 문법을 깼다. 그리고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여름은 안곡에서 그 답을 찾았을까. '아무것도 하기 싫어'는 나긋나긋한 봄을 맞아 몰아보기 좋은 드라마다. 여름이 그러했듯, 우리도 우리만의 안곡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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