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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초록의 융단이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금호강 초록의 융단이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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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반야월습지 초입에 도착한 것은 27일 아침 7시 정각이었다. 막 해는 떠올라 붉은 기운이 금호강 온누리에 펴졌고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연초록빛 융단으로 뒤덮인 강은 햇볕을 받아 서서히 그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 건너편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잉어 몸짓보다는 큰 움직임으로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 무엇일까? 

수달의 놀라운 사랑놀음

수달이었다. 수달이 물속에서 이리저리 재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달 두 마리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움직임이 심상찮다.
 
한참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녀석들이 갑자기 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고선 서로 잡기 놀이를 하며 논다.
 한참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녀석들이 갑자기 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고선 서로 잡기 놀이를 하며 논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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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 전문가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박사에 따르면 수달은 보통 단독생활을 한다. 물론 가족을 이뤄 육아기 동안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일은 있지만 암수 두 마리가 함께 출몰하는 경우는 딱 한 시기, 바로 번식기뿐이란 것이다.

지금이 딱 그때인 것이다. 봄철 번식기를 맞아 수달 암수 두 마리가 지금 한창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물속에서 한참을 이리저리 서로를 탐하던 녀석들은 난데없이 물 밖으로 튀어나와 막 내달리기 시작했다. 
 
암수 두 마리가 내달리며 논다. 마치 "나 잡아 봐라" 하는 것 같다.
 암수 두 마리가 내달리며 논다. 마치 "나 잡아 봐라" 하는 것 같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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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도 엄청 빠르다. 본능의 힘은 저토록 강하구나 새삼 느낀다. 두 녀석은 서로를 탐하며 놀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번식기 사랑에 빠진 녀석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다시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한참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아쉬움을 남기고 길을 재촉했다. 날은 쌀쌀했다. 꽃샘추위라 해가 떴지만 바람은 차다. 그렇지만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가 참 맑다. 이런 날이야말로 강을 탐방하기 제격인 날이다.

아침 햇살에 비친 하천숲이 주는 매력이 이곳 금호강 반야월습지에 있다. 반야월습지는 특히 하천숲이 잘 발달해 있어서 각종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조류와 고라니, 너구리, 삵이 함께 살아간다.

비밀의 정원 금호강 반야월습지

반야월습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버드나무 군락지로 들어서니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무척 반갑다.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하모니를 이뤄 하천숲을 가득 메웠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아가다 보면 갑자기 불쑥 꿩이 날고, 고라니가 내달린다.
 
고라니가 노니는 이곳은 금호강 비밀의 정원이다.
 고라니가 노니는 이곳은 금호강 비밀의 정원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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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녀석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이곳은 사실 그들 야생의 땅이다. 이 하천숲에 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간혹 제물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가끔 이 숲을 스쳐지나가지만 필자처럼 하천숲을 목적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없기에 이들 야생의 친구들이 갑자기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은 이방인의 미안함을 동반하게 한다.

미안했지만 이 신비로운 숲의 탐색을 멈출 수는 없다.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이맘때 하천숲의 매력은 다른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연초록빛으로 물든 숲속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저 멀리 고라니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가 평화요, 힐링이다.
  
금호강 비밀의 정원 하천숲의 아름다움
 금호강 비밀의 정원 하천숲의 아름다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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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강 비밀의 정원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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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롭고 신비로운 숲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 무한한 기쁨이며 행복이다. 이곳은 '금호강 비밀의 정원'이다. 이곳을 반야월습지로 명명하고 정기적으로 답사를 행하는 필자만의 '생태 보물'인 것이다.

보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천숲이 끝나는 곳은 여울과 만나고 그 여울에는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물닭이 등이 논다. 운이 좋으면 천연기념물 원앙 무리를 만날 수도 있다. 이날도 운이 좋았다.

천연기념물 원앙의 아름다움과 야생의 질서

천연기념물 원앙 수놈 8마리와 암놈 1마리로 이뤄진 원앙 무리가 저 앞 여울 옆 작은 자갈밭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화려한 깃을 뽐내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원앙 수놈은 드세고 사납다. 그 아름다운 자태와는 사뭇 다르게 서로를 향해 마치 삿대질을 하는 듯한 모습을 왕왕 선보인다.
 
천연기념물 원앙을 무리로 만났다. 수놈 8개체에 암놈 한 개체다. 원앙 수놈은 우아한 자태와 달리 드세다.
 천연기념물 원앙을 무리로 만났다. 수놈 8개체에 암놈 한 개체다. 원앙 수놈은 우아한 자태와 달리 드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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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자태는 싹 달아나고 무한한 에너지를 간직한 씩씩한 싸움꾼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수놈끼리의 원앙은 그래서 드세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으르렁대며 놀더니 이내 함께 날아가버린다.

덩그러니 빈 여울만 남은 공간에 물소리만 가득하다. 아쉬운 여운을 달래고 이제 습지를 한바퀴 돌아나갈 시간이다. 강 건너 반대편 하천숲을 탐사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는데 들개 두 마리가 지척에서 지나간다. 20여 미터의 물길이 가로놓였을 뿐인데 녀석들을 흘낏 필자를 보더니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필자 또한 녀석들에게 눈길을 거두고 다시 비밀의 정원으로 들었다. 반대편 하천숲은 더 좋았다. 연초록빛이 더 풍부하달까. 더 빽빽한 버드나무 숲 사이로 연초록의 향연을 받으며 나아간다. 여기저기서 고라니가 뛴다. 고라니가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고라니 소리다. 번식기에 수놈이 암놈을 부르는 구애의 소리보다는 날카로운 소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숲길을 달려갔더니 고라니 한 마리가 당했다.
 
저 아름다운 녀석들 중 한 녀석이 들개에게 당했다.
 저 아름다운 녀석들 중 한 녀석이 들개에게 당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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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봤던 들개 두 마리가 고라니 한 마리를 사냥해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 고라니는 죽어가면서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던 것. 이미 심하게 물어뜯겨 목숨이 끊어진 듯했다. 더 이상은 비명을 들려오지 않았다.

들개들은 맹렬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들개를 내쫓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것도 하나의 야생의 질서라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먹고 먹히는 야생의 질서가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아침 하천숲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놀라움 그 자체다. 신비와 놀라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인간 오물이 비밀의 정원 속으로

돌아나오는데 갑자기 악취가 풍겨온다. 좁은 물길에 하수가 고여 있는 것이 목격됐다. 그 원인을 찾아봤더니 금호강 제방에 붙어있는 우수관로 앞으로 이어진다. 우수관로에서 하수가 쏟아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흘러넘친 하수가 이 아름다운 금호강의 비밀의 정원을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악취가 풍기는 오수가 가득한 웅덩이. 비밀의 정원을 망치는 주범이다.
 악취가 풍기는 오수가 가득한 웅덩이. 비밀의 정원을 망치는 주범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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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안심도서관 앞 우수관로로 보이는 이 관로에서 오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관로 앞에 오수 슬러지가 엉겨붙어 있다. 철저한 실태파악이 요구된다.
 반야월 안심도서관 앞 우수관로로 보이는 이 관로에서 오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관로 앞에 오수 슬러지가 엉겨붙어 있다. 철저한 실태파악이 요구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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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가 가득 담긴 웅덩이에서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가 지난밤 그곳에서 잠자리를 청했는지 필자의 기척에 놀라 날아간다. 녀석들에게 참 미안했다. 이 아름다운 정원에 인간의 오물로 악취가 펑펑 풍기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대구 동구청에 즉시 제보해서 사태 파악 후 원인 제거를 요청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이처럼 아침 반야월습지는 다양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 안에는 수달의 사랑놀음이 있었고, 원앙의 우아한 자태가 있었고, 고라니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그랬다. 그것이 반야월습지 그 비밀의 정원이 주는 매력이었다. 야생의 질서였다. 연초록빛 비밀의 정원 반야월습지에는 이런 비밀이 존재한다. 이것이 반야월습지인 것이고 금호강인 것이다. 강은 이렇듯 야생의 영역이고 그들의 집이다. 야생의 집으로서의 금호강의 온전한 평화가 지켜지길 희망하면서 그렇게 반야월습지를 벗어났다. 
 
비밀의 정원 금호강 반야월습지. 무척 아름답다.
 비밀의 정원 금호강 반야월습지. 무척 아름답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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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반야월습지 하천숲이 햇살을 받아 무척 아름답다.
 금호강 반야월습지 하천숲이 햇살을 받아 무척 아름답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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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우리강이 아름다움을 전하고, 우리강의 자연성 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다.


태그:#금호강, #하천숲, #반야월습지, #수달, #천연기념물 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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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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