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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코로나가 2년 동안 유행이었지?"
"무슨 소리야? 3년이지. 우리 아이 3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니까, 3, 4, 5. 3년 동안이지."
"그러네. 우아, 길었다."
"그럼, 길었지."


얼마 전 나눴던 남편과의 대화다. 누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거리두기 단계가 확진자 수에 따라 높게 또는 낮게 조절되고 가게는 영업시간을 변경하다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재난의 시절을 정리하는 책
 
아이가 <리보와 앤>을 읽은 후 직접 책 사진을 찍어 주었다.
▲ <리보와 앤> 아이가 <리보와 앤>을 읽은 후 직접 책 사진을 찍어 주었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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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도 벗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코로나 이전의 패턴을 찾아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그 재난의 시절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리보와 앤>이라는 어린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도서관에는 안내 로봇 리보와 이야기 로봇 앤이 있다. 어느 날 도서관이 있는 도시에 '플루비아'라는 바이러스가 퍼진다. 플루비아 바이러스 확진자가 도서관에 방문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황급히 도서관에서 빠져나간다. 폐쇄된 도서관에는 영문을 모르는 리보와 앤만 남겨졌다.

문 닫힌 도서관에 방역 요원이 들어와 후다닥 방역을 하고 쫓기듯 나간다. 리보는 이 상황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재난 매뉴얼에 접속하려고 한다. 그러나 화재 위험도 아니고 지진이나 건물 붕괴도 아니고 침입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항목에 '아니오'를 선택하니 재난 상황이 아니라는 진단 결과가 나온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코로나19 유행 초기를 생각하게 됐다. 이런 재난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똘똘 뭉쳐 극복하는 재난이 아니라 모두 흩어져야 극복할 수 있는 재난. 처음엔 확진자의 동선이 모두 공개되고 그 사람이 다녀간 공간에 방역이 진행됐다. 동네에 확진자가 한 명 나오면 웅성웅성 뒷말이 많았다.

"확진자가 그 카페도 가고 그 식당도 갔대."
"동선 보니까 ○○학교 학부모 같더라."


가끔은 마녀사냥 같았다. 전염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른 생각을 압도했다.

처음 겪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더 지혜로운지 알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정책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스크 대란 때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마스크 구매가 어려웠고 등교가 금지됐을 때는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결식 아동들의 피해가 늘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한부모 가정에서도, 돌봄 서비스가 중단된 중증장애인이 있는 가정에서도 돌봄 공백이 나타났다.

이틀만에 도서관을 방문한 사서는 후다닥 도서관 점검을 끝내고 밖에 공지문을 붙인다. 공지문은 도서관에 오는 사람을 위해 밖에 붙여졌다. 도서관 안에 있는 리보는 어떤 내용이 붙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리보를 그리워하던 한 소년이 도서관을 방문한다. 소년은 도서관 유리문 밖에서 휴대폰에 글자를 입력해 리보에게 어떤 상황인지 알려준다.

그날 이후 리보는 '픽톡'이라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년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리보의 시스템은 그 소년과만 연락을 주고받는 걸 이상 현상이라 감지하고 시스템을 초기화하려고 한다. 리보는 소년을 만나고 싶어하고 그리워한다. 사랑을 느낀다. 단지 그뿐이었다. 우리가 코로나 시기 때 느꼈던 그 감정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인과의 소통과 접촉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다면

올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딸이 코로나에 재감염되었다. 아이를 화장실이 딸린 방에 격리했다. 난 식사 때가 되면 손에는 장갑, 얼굴에는 마스크를 끼고 식사를 배달했다. 작년 가을에도 딸이 먼저 코로나19에 걸리고 내가 옮은 전적이 있어 이번에는 더 엄격히 격리 수칙을 지켰다.

격리 첫날엔 방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가 이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졌다. 배가 고픈지, 식사는 언제 할 건지, 혹시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등 식사 관련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아이의 기침이 심해지면 나는 방문 밖에서 맘을 졸이며 '아이쿠, 아이쿠' 혼잣말을 했다. 가족이 함께 격리할 때와 아이 혼자 방에서 격리하게 할 때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

6학년인 아이는 내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핸드폰을 볼 수 있는 격리된 시간이 좋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격리 후 안방에서 나오더니 날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리보가 도서관에서 격리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야기 로봇 앤에 대한 애정과 소년에 대한 사랑이듯 우리가 그 시기를 넘어올 수 있었던 것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아닐까.

얼마 전 코로나를 지난 후 소득이 양극화됐다는 기사를 봤다. 코로나의 유행은 끝이 난 듯 보이지만 그로 입은 상흔은 각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남았다. 많은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 코로나 시기에 학교에 입학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 "서울시 교육청은 이번 1학기를 포스트 코로나 일상회복을 위한 '디딤돌 학기'로 운영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동안 벌어진 교육 격차와 정서 공백, 신체 활동 감소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경향신문, [여적] '디딤돌 학기').

재난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 재난을 극복해 온 인간의 지혜를 다시 한번 믿어본다. 이기심이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 지혜라면 아주 튼튼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착한 임대인 운동과 마스크 대란 시기에 개발됐던 약국별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 개수를 알려주던 앱, 도서관 휴관 시기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을 예약하고 바로 찾아갈 수 있게 했던 워킹스루 시스템 등 그 상황 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던 여러 사례를 생각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해 보면 어떨까.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보며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겠다.

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어윤정 (지은이), 해마 (그림), 문학동네(2023)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태그:#리보와앤, #코로나19, #제23회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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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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