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럴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다는 건. 현상이다. 그 시기를 잘 넘기면 된다. 엄마는 요즘 우울해 보인다. 갱년기가 늦게 찾아온 것도 아닐 텐데 예민하다. 과거를 생각하면 화도 좀 끓어오르는 것 같고, 이래저래 속상한 듯하다.   
   
CCTV를 통해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의 적극 반대에도 설치한 CCTV. 요긴하게 사용 중이다. 설치 전에는 엄마에게 전화 걸기를 망설였다.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부전화일 뿐인데 허겁지겁 달려올까. 손님이 계실까. 외출 중일까. 사정을 고려해 늦은 밤 짧은 통화만 간단히 했었다.  

이젠 실시간 확인되니 편한 통화가 가능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다. 손님 없이 혼자 계시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일상을 공유했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끊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일과를 얘기하다 보니 어떨 땐 '음... 그래가지고 말이야'만 반복되었다. 한참을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다 끊기도 했다.

어쩌다 흘러간 얘기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지만 통화는 늘 이어졌다. 좋은 날은 다 지나간 듯 말하는 엄마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뭔가 새로운 소식으로 활력을 드리고 싶었다. 옛날처럼.       

공모전에 당선돼 백만 원 받을 때는 긴가 민가 하더니, 방송국에서 대형 TV와 오디오가 집으로 배달됐을 때 비로소 나를 믿었다. 세상에 공짜 없다던 엄마가 TV와 오디오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그 후론 살짝 거짓말을 보태기도 했다. 바우처 관광권을 제주도 여행상품권 당첨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제주 여행을 함께 했었다.

그 후 몇 번의 여행도 그런 식이다. 끊임없는 이벤트로 힘든 엄마를 즐겁게 해 드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살아가는 게 사라지는 것들만 많아지는 삶이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 굳어진 세월만큼 표정도 굳어진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때가 그리운 건 그 안에 행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이 있었다. 눈물겹도록 그리운 시간이 있었다. 그래, 그 시간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오마이뉴스에 실린 엄마 기사.
 오마이뉴스에 실린 엄마 기사.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엄마, 내가 기쁜 소식 하나 전할게. 엄마가 뉴스에 나왔어. TV 말고 인터넷. 휴대폰으로 볼 수 있는 것. 엄마 얘기를 내가 썼거든. 기사로." 이런저런 눈높이 설명을 한참 했다. "내 얘기래 봐야 사람들 공짜로 줘서 너한테 욕먹은 거밖에 없는데?" "응. 그 얘기 썼어. 공짜로 주는 거. 엄마 사진도 나왔어. 미안해, 허락 안 받고 실어서. 근데 늙고 못생긴 거 아니야. 다행히 예쁘게 나온 게 있더라고(거짓말 좀 했다). 아주 예쁘게 잘나왔어" "오 그래?" 맞장구치는 엄마 목소리가 기분 좋은 데시벨이다.

[관련기사]
공짜로 주는 게 더 많은 가게, 우리 엄마가 주인입니다
한글 못 읽는 엄마와 가끔 영상통화를 합니다

사실, 엄마에게 전달할 생각은 없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TV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볼 때, 엄마도 저런데 나갈까 하면, 늙고 무지한 엄마 불쌍하게 보는 거 싫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 기사를 쓰고, 내가 가장 듣고 싶고, 가장 좋아하는 말을 들었다. 한 번도 듣지 못했고, 평생 듣지 못할 줄 알았던 말. 멋지다.

평소 날 놀리던 중 2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백수라서 맨날 노는 줄만 알았는데 기사를 쓰네... 멋지다. 이모 멋져!"라고 했다. "꼼꼼히 읽었니? 대충본 거 아니지?"라고 묻자. 다 읽었다며 틀린 낱말까지 지적했다. 전에 쓴 글은 악플이 많았는데 이번 글은 전부 선플이네 하면서 기사 너무 좋다고 했다.

평소, 주먹맛이 필요한 녀석 입에서 나온 진심이라 좋았다. 여러 사람 호응에 힘입어 엄마에게도 말할 용기가 났던 것. 엄마도 분명 좋아하실 거라는. 아니, 엄마에게 소소한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다. 사는 게 별거 있나. 별일 아닌 하루도 공유하는 것인데.

기사로 실려 기분이 좋아 용돈도 보내드린 거라 하자 그제야 편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뜬금없이 용돈을 보내오자, 백수가 돈도 없을 텐데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보태 더 돌려주려 했는데, 내가 돈의 출처를 설명하자 흔쾌히 기쁘게 받으셨다. 물론, 고료에 훨씬 더 보태서 드렸다. 내친김에 다 고백했다. 엄마, 내가 글 쓰면서 반성 많이 하게 됐어. 깨닫는 바가 있더라. 왜 그랬는지. 정말 반성 많이 했어 엄마, 미안해.        

그 말에 엄마는 너무 반갑게 기뻐하셨다. 건조하고 우울해 있던 목소리에 활기가 찼다. "나는 네가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 훗날 죽으면 퍼주다 돈이 하나도 없다 할까 걱정했다. 딸 마음 아프게 한 게 늘 맘에 걸렸는데 글쓰기로 반성했다니 이제 내가 한시름 놨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시는데, 죽어도 여한 없다는 말에 만감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그런 게 있다. 잘못했음에도 스스로 알지 못해 상대방을 원망할까, 되려 상대방이 마음 아파하는 것. 엄마는 자신을 이해 못 하는 딸이 늘 마음에 걸렸나 보다. 벅찬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진심 무거운 돌 하나를 치운 엄마를 느꼈다.

돌고 돌아 서로의 마음속에 걸리던 것을 말끔하게 제거한 날이었다. 그날 엄마와 나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진심 온마음으로. 서로를 놓아주었다. 나 역시 깃털처럼 가벼워진 마음을 비로소 느꼈다. 쓸데없이 무거웠던 짐 하나. 그 짐을 늦지 않게 치웠다. 다행이었다.   

사실, 언변 없는 엄마 입에서 '글쓰기'라는 말이 언급되어서 좀 놀랐다. 엄마는 글 쓰는 사람, 즉 작가를 '절망하는 직업'이라 했었다. 이유를 다 알 순 없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 입에서 '글쓰기로 반성했다니'라는 말씀을 하셔서 기분이 묘했다.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서. 글쓰기가 절망하는 직업이 아닌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삶을 꿈꿔본다. 엄마를 생각하며, 그리고 나를 위해.  

정체된 삶이 아닌 즐거운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 쓸쓸한 황혼이 찬란히 빛날 수 있게. 좋아하는 일일 드라마처럼 우리의 연속극을 멋지게 써내려 가는 것. 생각해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궁금할 엄마를 위해 기사의 [본문 읽기]를 들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행복이 별 건가. 신기하면 즐거운 거지. 기사를 본문 읽기로 들으시며 신기해하실 엄마가 몹시 기대된다.

태그:#나아가는 삶, #글쓰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