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0 04:56최종 업데이트 23.03.20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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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형성된 전쟁의 기운이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있는 대만을 지나 한반도까지 밀려오고 있다.

지난해 8월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중국은 '대만 포위' 군사 훈련을 감행하는 등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런 긴장을 이용해 일본은 군사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2027년까지 5년간 43조 엔(약 410조 원) 규모의 막대한 방위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그리고 대만 유사 사태를 대비해 신속한 대처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위대에 적 군사 시설을 타격하는 미사일 부대를 만들고, 대만과 110㎞ 거리의 요나구니섬을 자위대 F-35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군사 거점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편을 먹고 전쟁 직전의 상황에 들어갔다. 아니, 사실상 유라시아 서편에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이미 전쟁을 감행하고 있다. 대만 주변에 작은 불꽃 하나만 일어도 큰 산불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우리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군사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전쟁에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이 대만 전쟁이나 위기에 동원될 경우 한국의 선택과 상관없이 한반도의 전역화(戰域化)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은 "핵전쟁억제력 강화로 적들에 두려움 줘야"…ICBM 참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밝혔다. 통신은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7'형은 최대 정점고도 6,045㎞까지 상승하며 거리 1,000.2㎞를 4,151s(초)간 비행하여 조선동해 공해상 목표수역에 탄착되었다"고 밝혔다. 2023.3.17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의 핵 무력 강화 및 미사일 무력 시위는 한반도의 안보 위기와 불안을 그 어느 때보다 고조시키고 있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시간(3월 16일)에도 북한은 동해상에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발사했다. 3월 14일에 KN-23 추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한 지 이틀만이다. (북한은 19일에도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1월 1일 600㎜ 초대형 방사포(KN-25) 1발 발사, 2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2월 20일 600㎜ 초대형 방사포 2발, 3월 9일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6발 발사, 3월 12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2발 발사 등 7번에 걸쳐 장·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북한과 한국 합참의 주장이 엇갈리는 2월 23일 미사일 발사는 제외).

북한의 무력 시위에 대응이라도 하듯 3월 13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를 시작했다. 이번 훈련은 11일 동안 20여 개의 실기동 연습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와 최장 기간 훈련이다.

현재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긴장은 신냉전체제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북한은 3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집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5차 확대 회의에서 "현 정세에 대처하여 나라의 전쟁 억제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행사하며 위력적으로, 공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중대한 실천적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히며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이 발언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레버리지(leverage)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말하는 "현 정세"는 남·북과 주변 4강이 군사적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여기에 북한이 대처해서 전쟁 억제력을 핵과 미사일로 갖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공포의 균형' 전략을 통한 전쟁 억제는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긴 설명이 없더라도 신냉전이 한국은 물론 세계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정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위기 관리일 것이다.

구냉전도 끝내지 못했는데 신냉전까지

유라시아를 둘러싼 전쟁과 무력 충돌 위기와 북한의 무력 도발이 만나 전략적 문제, 즉 한반도를 경계선으로 미·일·한 대 중·러·북의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국제정세가 강력하게 투사하는 이중 구조이자, 이 두 구조가 상호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신냉전 질서는 오랜 기간 북한을 압박해 온 국제사회의 제제와 고립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중국만 해도 북한 핵과 미사일에 비판적이었는데, 현재 상황이 미·일·한 대 중·러·북의 신냉전 구도로 흘러가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다.

한편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중국·러시아와 외교·군사 협력 강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신냉전 구도가 형성·강화될 것이다. 이것은 곧 한반도의 지속적인 안보 불안을 더욱 가중하고, 국방 예산과 주식 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커지는 등 우리의 일상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 EPA=연합뉴스

 
우리는 무력 충돌을 억지하기 위해서나 만약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군사안보 태세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묘수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 체제는 어느날 갑자기 소나기 내리듯 오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환경이 마련되는 만큼 평화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수반한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단계적 접근은 평화 유지(peace-keeping), 평화 만들기(peace-making), 평화의 구조화(peace- building)가 그것이다.

평화 유지는 전형적인 소극적 평화 확보의 개념으로 군사력을 통한 도발의 억제를 의미한다. 군사적 억지(deterrence)와 동맹 강화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평화 만들기는 평화 유지보다는 한 단계 위 개념이다. 신뢰 구축이 평화 만들기의 핵심 개념인데 경제·사회·정치적 신뢰 구축의 단계를 거쳐 군사적 신뢰 구축이 이루어져야 평화 만들기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평화 만들기 또한 불안정한 상황을 관리한다는 면에서 소극적 평화 유지책이라 할 수 있다.

평화의 구조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이는 분쟁의 구조적 원인을 없앤 것이다. 적대적 쌍방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거나 선린 관계가 형성되어 추구하는 목표에 충돌 여지가 없어지면 분쟁은 구조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단계적 접근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는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군비 통제, 북미·북일 관계 개선, 동북아 안보협력 등 '안보레짐'이나 북한 비핵화와 연결한 경제협력 등으로 협소하게 봤다.

그러나 평화 체제의 범위는 국가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 안보와 같이 개인과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과 평화 만들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의 개념을 단순히 전쟁의 부재라는 의미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와 수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폭력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차별·불평등의 해소와 함께 전염병·기후위기·재해·생물권 보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안보레짐에만 매몰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 있는 한국의 운신의 폭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 참여 주체도 국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평화 만들기는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접근이어야만 한다.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평화 만들기는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그리고 시민의 힘과 참여로 만드는 평화는 국제 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자율성과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정부는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와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이다.

성공의 열쇠는 신뢰, 시작은 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나 우리의 안녕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평화 만들기다. 그러나 평화 만들기는 남·북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데 현재 남·북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남·북 간에 신뢰 구축이 어려운 이유는 북한의 마음이 안심되어야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 만들기는 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대북정책과 한반도 평화 관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적극적인 평화의 출발점은 대화이며 대화는 상호 신뢰형성뿐만 아니라 당면해서 한반도 위기 관리를 위한 총체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적극적인 평화가 좋은 것은 현재와 같이 정부와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을 때에 다양한 주제와 영역, 주체들의 만남과 대화, 협력과 협업을 통해 여론과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경제 협력마저도 현재 세계 정세와 구도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코로나, 휴전선 지역 공동 방역, 기후 변화 공동 대응 등 인도적 측면이나 민간 협력을 위한 대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대화를 시작하는 자세로는 다양성의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결국 남한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분단, 정신적 갈등과 적대감의 해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통일과 평화를 대비하는 마음의 근간은 바로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철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는 가치,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풍요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한반도 전쟁 반대,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 해결, 군비 경쟁 악순환 종식과 시민 안전을 위한 중단 없는 평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평화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평화 행동을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실천에 옮기며 민간을 지원하는 것이 현재 정부가 해야할 첫 번째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시민들 역시 현재 첨예한 정세와 상황이 우리와 나의 일임을 자각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는 긴장은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CNN의 보도가 아니다. 영구적인 평화가 오지 않았기에 한반도의 운명은 세찬 바람 속의 촛불이 아닐 때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긴장과 전쟁 위기의 기로에서 늘 평화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은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은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난경에 들었다 하여도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고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주인된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민과 평화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정부가 절실한 오늘이다.

* 필자소개 : 서울디지털대 교수, 코리아연구원 이사, 민주평통 상임 위원으로 2001년 첫 평양 방문과 이어진 40여 차례의 방북 이후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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