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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코로나 19 팬데믹과 더불어 기후 문제가 부각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쓰고 버린 폐기물로 지구가 파괴되었고 당연시 여겼던 자연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고 여기 저기서 경고한다. 그런데 위기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만 해당하는 것처럼 들린다.   

SF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인간만 남는 설정이 대부분이다. 폐기물로 뒤덮여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어딘가 첨단 기술로 세워진 매끈하고 인공적인 도시에서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

거기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만은 살아남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럴까, 환경 오염으로 다른 생명체가 사라지더라도 인간 종(種)은 홀로 생존할 수 있을까.

지구 생명체의 근본 원리는 '공생'

이러한 사고를 인간 중심의 '오만한 생각'이라며 일침을 가한 과학자가 있다. 공생(共生, symbiosis) 이론을 발달시킨 린 마굴리스(1935~2011)다.

그녀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첫 번째 아내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뛰어난 생물학자로 그녀 이론 중 일부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받았다. 린 마굴리스의 이론이 담긴 <공생자 행성>(사이언스 북스, 이한음 옮김)은 2007년 1쇄 발간 이후 2022년 6쇄까지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린 마굴리스
▲ 공생자 행성  린 마굴리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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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마굴리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세균과 원생생물, 곰팡이, 동물, 식물, 다섯 개의 체계로 나뉘며, 이들은 크게 원핵 생물(세균)과 진핵 생물(원생생물, 곰팡이, 동물, 식물)로 분류된다. 

그녀는 세균이 다른 세균의 몸에 붙어 함께 생활하면서 원생생물이 탄생했고 원생생물이 다른 세균이나 원생생물과 결합되면서 곰팡이나 동물, 식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진화의 비밀은 '공생'이라고. 공생이란 "서로 다른 종이 물리적으로 접촉하며 살아가는 방식"(21쪽)을 말한다.
 
"우리의 소화관과 눈썹에는 세균과 동물 공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며, 눈앞에 보이는 마당이나 공원에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생자들이 널려 있다. 흔히 잡초인 토끼풀과 갈퀴나물의 뿌리에는 작은 구슬들이 달려 있다. 이 구슬들 안에는 질소가 부족한 토양에서도 식물들을 잘 자라게 해 주는 질소 고정균들이 들어 있다. (…) 우리는 공생자 행성에 살고 있는 공생자들이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디에서든 공생을 볼 수 있다. 또한 물리적 접촉이 생존의 필수 조건인 생물들도 많다."
- 21~22쪽, <공생자 행성>, 린 마굴리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생을 통해 발생, 진화한 '공생자'들로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린 마굴리스는 인간 뿐만 아니라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지구라는 생태계 시스템 안에서 서로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폐기물을 처리해 주며 공생한다고 말한다. 

이 시스템은 지나치게 팽창한 집단을 붕괴시키면서 지구 차원의 순환을 조절한다. 또한 지구라는 생태계는 인간과 같지 않으며 인간에게 속한 것도 아니라고 린 마굴리스는 강조한다.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생명체를 움직이는 것(동물)과 움직이지 않는 것(식물)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분류가 터무니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새롭거나 파격적인 발견이 아니라 린 마굴리스를 포함한 생물학계에서 오래전부터 확정적으로 받아들인 사실이다.

그런데도 익숙하고 친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이것 밖에 모른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세상을 단순히 두 개의 틀로 나누어 바라본다. 거기에는 이런 환상까지 덧씌워져 있지 않은가. 인간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와 별개인 어떤 상위 클래스에 속한다거나, 모든 세균은 박멸해야하는 위험한 대상이라는 환상 말이다.  
 
"현대인들은 보통 생물을 세 종류로 구분한다. 식물(식량과 정원 장식), 동물(애완동물, 해산물, 우리 자신 등), 병균(박멸되어야 할 것). (…) 식물도 동물도 세균이 적어도 20억 년 동안 화학적, 사회적 진화를 겪은 뒤에야 출현했다. 사실 동물과 식물뿐만 아니라 곰팡이도 지구 기준으로 보면 신참이다. 동물도 식물도 영구적인 분류 범주가 아니다. (…) 동물과 식물은 지구의 다른 모든 생물들에 비해 서로 훨씬 더 비슷하다!"
105쪽 
 
그녀는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여 '연속 세포 내 공생 이론(SET; Serial Endosymbiosis Theory)'을 정립했다. 이론의 일부 근거에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세균과 세균의 결합, 즉 공생으로 생물의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가 형성 되었다는 원칙은 통용되고 있다.  

<공생자 행성>에 실린 생물학 이론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렵더라도 그녀의 주장을 통해 배우고 생각해 볼 거리는 많다. 생명체를 구분하는 기준이나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라는 것, 진위를 따져보지 않고 관습적으로 받아들인 통념이 생각의 한계가 된다는 주장이 그렇다.

지구에 뒤늦게 도착한 손님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
▲ 거대한 자연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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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간 호주에서 캠핑을 하며 생활했다. 인간 중심의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지내는 경험은 기존의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끝없는 바다와 빽빽한 나무 숲 앞에 서면 인간이란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라는 자각이 의식할 새도 없이 찾아왔다.

해가 뜨는 새벽이면 텐트를 에워싸고 요란하게 새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여든 것 같았다. 이토록 많은 새들이 있다니. 그 소리를 들으며 인간은 지구에 가장 온 손님이거나 이방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천 년을 살아왔을 키 큰 나무들, 밀려오고 밀려 나가며 무수한 생명체를 나르는 파도, 숲 속을 메운 이끼와 이름도 알 수 없는 물풀과 조개들, 텐트 옆에서 뛰어다니는 캥거루와 이구아나, 그리고 온갖 벌레들. 오래전부터 지구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존재들에게 우리야말로 가장 뒤늦게 도착한 손님일 거라고. 그러니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저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오늘날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은 똑같이 진화를 거쳤다. 모두 공통의 세균 조상으로부터 30억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진화하여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고등한 존재'도, '하등한 동물'도, 천사도, 신도 없다. (...) 우리는 다른 생물들에게 혐오감이 아니라 경외심을 보여야 마땅하다."
15쪽

인간 홀로 살아남는 불가능한 미래상부터 폐기해야겠다. 다른 생명체 없이는 인간도 살 수 없으므로.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세했던 이곳에서 인간이야말로 손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지. '공생'을 위해 겸손해져야 할 시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공생자 행성 -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린 마굴리스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사이언스북스(2007)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태그:#공생자행성, #자연이라는미지의힘, #지구라는생태계, #인간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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