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립서울현충원의 상징인 현충문 모습.
 국립서울현충원의 상징인 현충문 모습.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지난 21일 저녁이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한창 자리가 무르익어갈 때 병원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물었다.

"종훈아, 너는 인생의 목표가 뭐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내 목표? 애국지사 머리 위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가 더 많이 알려져 현충원의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바뀌는 거."

답을 들은 친구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뭔가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좀 더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그런 답을 기대한 거 같은데 기자 생활 10년 한 친구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나온 거다.

당황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현충원에 가서 보면 알아.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현실인지.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목숨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 무덤 머리 위에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들이 잠들어 있어. 그 모습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대로 느껴지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현충원의 불편한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국가공인 친일파, 독립운동가 머리 위에 잠들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 있었지만 이토록 뜨겁진 않았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지금의 목표가 완성됐다. 2018년 중순 <오마이뉴스>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나는 프로젝트의 제안자이자 진행자로 로드다큐 <임정>과 임시정부 투어 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를 완성했다.

그리고 봤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이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 아래 잠들어 있는 현실을.

2005년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4년 반에 걸친 조사 끝에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09년 이완용, 민영휘, 송병준, 김성수(동아일보 창업주), 방응모(조선일보 사주) 등 천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들 중 12명이 서울과 대전 두 곳의 현충원 양지바른 땅에 잠들어 있다.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백선엽이다.

이들 12인의 무덤 중 신태영과 이응준이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장군2묘역이 가장 논란이 되는 장소다. 직선으로 40m 거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묘역과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이 자리해 있다.

"내 목표는 야스쿠니" 외친 신태영이 잠든 곳

1993년 눈을 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 조경한 지사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백범과 윤봉길, 이봉창, 차리석 등이 안장된 효창공원은 당시 용산구에서 관리하는 근린시설이었다. 애국지사를 효창공원에 모실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 지사는 국립묘지법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과 친일파 묘역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75m에 불과하다.

조경한 지사가 현충원을 기피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애국지사 머리 위에 신태영과 같은 친일파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
 국가공인 친일파 신태영.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신태영, 일본군으로 30여 년을 복무한 인물이다. 총과 칼을 들고 일제가 일으킨 전선의 최선봉에 서기도 했고, 수탈의 상징인 용산정차장의 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백미는 1943년 11월 신태영이 <경성일보>에 남긴 글 하나. 신태영은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며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라고 말했다.

당시 신태영은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에 참여해 조선인의 병력 동원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대한의 청년들을 일제의 전선에 내보내는 중추 역할을 했던 거다.

그러나 1959년 4월 8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한 신태영은 야스쿠니 신사 대신 국립서울현충원 내 최고 명당으로 꼽히는 장군 2묘역에 잠들었다. 그의 묘비에는 "개화의 선구자로 호국의 간성(干城/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시었다. 강직과 청렴으로 시대의 등불이었다"라고 새겨졌다.

신태영은 국립묘지법 제5조 1항 "장성급 장교" 조항에 의거해 아무런 제지 없이 현충원에 안장됐다.

스물세 번째 현충원투어를 준비하며
    
대전현충원에 자리한 백선엽의 묘.
 대전현충원에 자리한 백선엽의 묘.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현충원투어를 시작했다. 과정에서 국가공인 친일파의 강제 이장 등을 포함하는 국회 차원의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지는 등 큰 진전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실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에 항상 끝을 맺지 못했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만 들었다.

2020년 7월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이 천수를 누리고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 555번 무덤에 안장됐을 때 특히 더 그랬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사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국가공인 친일파의 안장을 막을 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었다.

이 사건 후 3개월 뒤인 2020년 10월 10일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소개한 뒤 "일본 침략은 틀리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기득권을 잃은 양반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빨갱이에 붙지 않고 자유진영의 문명을 동경해 왔다. 당시 조선은 지금의 이북보다 더한 계급제사회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예로 살아야 했다. 민생치안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그냥 넘겼다. 목적이 어떠하든 일본은 조선을 해방시켜 민초들은 처음으로 자유와 문명 그리고 현대교육의 기회까지 얻었다. 일본이 미국에 지는 바람에 남한은 어부지리로 자유진영에 살고 있다. 조선에 현대 법치를 적용한 친일이 과연 욕먹을 일인가?"
  
  
시민들과 함께 현충원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
 시민들과 함께 현충원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
ⓒ 김종훈

관련사진보기



이 글을 보고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진행하는 현충원 투어 때마다 꺼내 읽고 또 꺼내 읽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 밝힌 그에게 진짜 역사를 말해주고 싶어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는 1919년 발발한 2천만 민중의 3.1운동을 바탕으로 애국지사들의 뜻이 모여 세워졌다. 이들은 헌법을 제정해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마련했다. 이후엔 총과 칼을 들고 일제에 맞섰다. 1945년 8월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참모습이다."

오는 3월 4일 3.1절 104주년을 맞아 스물세 번째 현충원 투어를 진행한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윤옥의 말처럼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현충원투어를 통해 계속 알리고 알리기 위함이다. 걸음을 잇다 보면 언젠가는 현충원의 부당한 현실이 바뀌지 않을까 희망한다. 부디 많은 이들이 함께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1혁명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4주년 기념 현충원 투어 안내>

일시 : 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2시(현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
장소 : 국립서울현충원 '만남의 집' 앞 (10시 20분까지 집합)
비용 : 무료 공익행사 (물과 간식 개인 지참 편한 신발 필수)
가이드 : 김종훈 (임정로드, 약산로드, 한국사로드 저자)
문의 : 010-6324-8062 (문자나 카톡으로 문의 요망)
현충원투어 신청하기 – https://naver.me/xtHLkwID
※ 현충원투어 종료 후 가능하신 분에 한해 2부 효창원 투어 바로 진행

태그:#3.1절, #현충원, #친일파, #투어, #역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