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 JTBC

 
사랑은 왜 아플까? 사랑은 왜 어려운 걸까? 대중문화 콘텐츠는 언제나 사랑에 대해 다뤄 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고찰해왔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역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사랑의 이해>는 뭔가 좀 다르다. 이 작품에서는 계급적인 문제와 그로 인해 가해지는 차별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고,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매사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소경필(문태유 분)의 "사랑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는 말. 사람들은 사랑이, 정확히 말하면 나의 사랑이 대단하고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사랑을 하는 이들도 그들의 사랑이 대단한 감정이었으면 싶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계급적인 문제가 생겨나면서 사랑이란 참 대단치 않고 하찮은 감정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지. 

자본주의 사회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리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 JTBC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사랑을 감정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소위 '낭만적 사랑'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매력에 기반을 둔 관계이고, 이는 사랑이 평등한 위치에 기반하고 있는 민주적인 관계임을 전제로 한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언뜻 그러한 민주적 관계로서의 사랑을 모두가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일루즈는 오히려 사랑이 시장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기는커녕 "자본주의와 긴밀히 공모하고 있는 하나의 관행"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품으로 돌아가 보면, 일루즈의 분석처럼 사랑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권리는 아니다. 그것은 은행이라는, 자본주의 도시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점의 실적만큼 개인의 실적이 중요한 은행 특성상, 결국 개인의 위치를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사람들을 분류한다. 은행원이 아닌 청경이자 고시생인 정종현(정가람 분)은 그 선에 들어올 수 없고, 은행원이지만 고졸 사원이라서 텔러로 시작한 안수영(문가영 분) 역시 그 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일루즈는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혼시장에서 계산적이고 도구적으로 평가되는 자원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기회를 극대화하려는 의식" 즉 '합리화'의 경향이 낭만적 사랑에 침투했다고 분석하는데, 4년을 만난 애인을 버리고 금감원 부원장의 딸과 결혼하기로 한 양석현(오동민 분)의 케이스가 곧바로 생각날 것이다. 죄책감이 들면서도 무를 수도 없는 그의 선택은 사랑에 경제적인 기회의 문제가 개입되면서 딜레마가 되어버린다.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중에 누굴 골라야 하는가'라는 아주 고전적인(?) 밸런스 게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질문에 정답 혹은 오답이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을 골라도 그렇게 하기로 한 마음을 탓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하필이면 극중 내내 계급적인 문제가 이 질문에 개입되어 있어 등장인물들은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고 번민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도 최선의 결론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선택들을 지켜보며 마음이 더 답답해지는, 소위 '고구마'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도 당연하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입체적인 드라마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 JTBC

 
박미경(금새록 분)이 사랑을 표출하는 방식을 보면 그 답답함이 배가 된다. 미경은 모자랄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하상수(유연석 분)에게 물질적인 헌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상수가 부담스럽게 여겨도 '어차피 가지게 될 것을 내가 더 빨리 주는 것'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의 티 없이 해맑은 모습 역시 그가 가진 여유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을 '부잣집 딸내미의 철없음'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더 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고, 누군가는 마음만 있을 뿐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반면 미경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능력이 있으니까. '지폐 한 장이나 더 쥐어주자'고 생각한 아버지 박대성(박성근 분)을 닮았지만, 각자가 그것이 마음을 표출하는 최대한의 방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답답하면서도 누군가를 탓하기란 힘든 일이다. 

앞서 설명한 '합리화' 역시 쉽게 가치판단을 내기 어렵다. 석현의 경우 금감원 부원장의 딸과 결혼하기로 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주변 어른들의 닦달이 있었는지 극중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얼마든지 추정해볼 수 있다. 자기 딸이 자신의(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계급적 위치보다 못 한 사람과 교제하는 걸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윤미선(윤유선 분) 역시 그렇다. 그렇게 자신의 계급인식을 드러내는 말들은 들을 때마다 불쾌하지만, 그가 그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거나 접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사랑의 이해>에는 이해되지 않는 이해관계로 가득 차 있지만, 굳이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소비자본주의가 낳은 사랑의 새로운 방식을 드러낼 뿐이고, 그것이 작품 바깥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기존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윤리적, 도덕적 판단의 문제로 다뤄왔던 주제들에 대해 <사랑의 이해>는 그저 보여주고, 드러내고, 질문한다. 일루즈가 자신의 분석에 덧대어 '그러니까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낭만적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수영이 결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선택을 했던 것처럼. 

재지 않고 사랑만 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진 시대, 그러기에는 감당할 것들이 많다는 걸 이제는 알아버린 청춘들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사랑의 이해>는 그래서 수작이다. 
사랑의이해 자본주의 사랑 에바 일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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