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sir!"

밴드 연주를 뒤로 하고, 박재범이 무대로 향하면서 외친 첫마디였다. 15년 전 어색한 한국말을 들려주었던 아이돌 가수가 한국 힙합신의 거장으로 올라섰고, 지상파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게 되었다. 지난 2월 5일, KBS 2TV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 첫 회가 방송되었다.

2022년 7월, 국내 최장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예기치 못한 사건 이후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 지 7개월 만에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 돌아왔다. '노영심의 작은음악회'에서 시작해 '이문세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35년 간 이어진 KBS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명맥이 새롭게 이어진다.

'스케치북'의 후속 프로그램이 한동안 편성되지 않으면서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대가 끊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형식과 함께 돌아왔다. 심야 음악 프로그램 중 최초로 시즌제를 도입해, 2023년 한해 동안 네 명의 MC가 다른 이름의 프로그램을 나누어 진행할 예정이다. 방송 시간 역시 금요일 밤에서 일요일 밤으로 바뀌었다.

"뮤직 토크쇼의 MC를 맡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고백한 박재범은 몸소 첫 공연자로 나섰다. '좋아', '가나다라', 'On Air', 'All I Wanna Do', '몸매' 등 히트곡의 메들리를 밴드 연주와 함께 선보였고, 노래와 랩, 춤 등 자신의 역량을 6분의 시간에 응축했다.

베테랑 가수, 그리고 신예 MC
 
 KBS 2TV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 한 장면.

KBS 2TV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 한 장면. ⓒ KBS 2TV

 
지난해 인상적인 솔로 앨범 'ERROR'를 발표한 이찬혁이 그의 뒤를 이어 등장했다. 이찬혁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은 '목격담'과 '파노라마'를 선보였다. 밴드 라이브가 곡의 감도를 더욱 높였다. 박재범과 손을 잡고 최근 쇼미더머니 11에서 우승한 이영지, 방탄소년단의 제이홉과 'Rush Hour'를 협업한 크러쉬, 개성있는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얼터너티브 힙합 그룹 바밍 타이거도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
 
 KBS 2TV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 한 장면.

KBS 2TV의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재범의 드라이브> 한 장면. ⓒ KBS2

 
전체적으로 2030세대가 선호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출연진의 주를 이뤘지만, 포크의 거장 양희은처럼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아티스트도 출연했다. 양희은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박재범의 '좋아(JOAH)'를 부르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박재범은 진행 도중 시청자의 예상을 깨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 주었다. 이영지의 랩을 듣고 직접 프리스타일 랩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크러쉬의 '잊어버리지 마'를 원곡자 옆에서 부르기도 했으며 의자 위에서 비보이 동작을 보여주는 등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노래로 아티스트들을 소개했던 앨리샤 키스가 그랬듯, 자신의 아티스트적 면모를 진행에 녹여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흥미로운 만남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찬혁이 쇼미더머니 10에서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불협화음 중)라는 가사를 부르자, 그다음 해 쇼미더머니 11에서 박재범은 '찬혁아 형은 계속 멋있었어'(Bluecheck 중)라고 받아쳤다. 디스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힙합의 대표자를 자임한 박재범이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힙합과 화해하자"며 악수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위트가 빛났다.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뽑는다고 할 때, 박재범은 첫번째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재범의 드라이브'의 이륙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수십 년의 전통을 계승하되, 트렌디한 멋을 입혔다.

오는 2월 12일에는 2회가 방송된다. 전작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이돌 그룹부터 인디 록 밴드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섭외했던만큼, '박재범의 드라이브' 역시 다양한 음악이 호흡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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