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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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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과 이웃을 잃었던 퐁니퐁넛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티탄씨)에게 3000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최초로 법원이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존재와 피해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게 된 셈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응우옌 티탄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이 자행한 퐁니퐁넛 학살의 피해자다. 학살 피해자인 티탄씨는 학살을 경험한 이후부터 오랜시간 동안 한국인들을 무서운 존재로 생각했었으며, 적어도 200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남성들을 보면 공포감을 느꼈을 정도로 학살의 트라우마가 몸에 각인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부터 응우옌 티탄씨는 구수정 박사의 제안에 따라 한국에 와서 증인으로 여러 발언 및 활동을 했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 여러번 각인시켰다. 티탄씨는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한국 정부와 한국군이 인정해야 한다고 여러번 역설했다.

응우옌 티탄씨는 2018년 4월 국회 기자회견에서 하미마을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동명이인)씨와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응우옌 티탄씨는 성명에서 한국 정부의 민간인 학살 책임과 더불어 학살 가해 주체인 한국군에 대해서 분명하게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물었다. 퐁니퐁넛 학살을 자행한 한국군에게 피해자가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없는 일을 어떻게 있는 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2022년에도 응우옌 티탄씨는 학살 당시 남베트남군으로써 한국군의 학살을 목격한 목격자이자 그녀의 사촌오빠인 응우옌 득쩌이씨와 더불어 한국에 와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법적 소송을 했다. 이와 더불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민들과의 좌담회도 가졌었는데, 이 기사의 글쓴이 또한 그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응우옌 티탄씨와 응우옌 득쩌이씨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이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글쓴이의 질문에, "그들이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학살의 사실을 살펴보고, 학살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보라는 말을 전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만약에 제 증언 내용을 부정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라!' 제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찾아온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없는 일을 어떻게 있는 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저 스스로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들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남겼다.

그 이후로도 한국군 민간인 학살 관련 국내 기사들이 종종 나왔고, 작년 10월에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확산을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한국일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응우옌 티탄씨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응우옌 티탄씨는 "뛸 듯이 기쁘다.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74명의 영혼들에게 오늘 기쁜 소식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응우옌 티탄씨는 2020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만100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고, 이에 대해 대한민국 법정이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티탄씨)에게 3000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으니,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 당시 자행된 연합군 측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이것 뿐만이 아니며,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또한 무수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이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해 최소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1990년대 베트남에서 학위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구수정 박사의 경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의한 희생자가 대략 9000명 정도 된다고 추산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주로 꽝남성과 꽝응아이성 그리고 빈딘성에서 일어났고, 꽝남성에서만 4000여 명의 민간인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이 사살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숫자가 4만1000명 정도인데, 한국군 민간인 학살 9000명 희생자 수치를 고려해보자면, 이 중에 1/4이 무고한 민간인이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기 위한 '시작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에는 여전히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위령비와 한국군 증오비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외면하거나, 더 나아가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1968년 3월 16일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미라이 학살만 하더라도 미군이 철저히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이 미국 내에서 벌어지던 반전운동과 더불어 폭로됐는데, 미라이 학살과 같은 천인공노할 학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일이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플래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문 역할을 했던, 군사전문가이자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인 데일 다이 또한, "만약에 베트남 전쟁 당시 전투에 관여했던 참전용사 중에 그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고, 영화 <플래툰>에서 묘사된 그런 민간인에 대한 미군의 폭력은 "베트남 전쟁 시기를 통틀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투 병력을 보낸 한국 또한 베트남에서 그러한 일을 자행했다. 앞에서 언급한 9000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에 법원에서 인정한 퐁니퐁넛 학살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최소 9000명 이상의 베트남 민간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앞으로도 필요하다. 적어도 미래가 없는 이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이번에 법원에서 응우옌 티탄씨의 소송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며, 베트남 전쟁 침략 가해국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반성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은 한국 사회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면서, 동시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태그:#한국군 민간인 학살,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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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전공자입니다. 사회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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