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호 신임 대한컬링연맹 회장이 8일 열린 선거에서 당선증을 교부받고 있다.

한상호 신임 대한컬링연맹 회장이 8일 열린 선거에서 당선증을 교부받고 있다. ⓒ 대한컬링연맹 제공

 
일평생 환자들을 치료했던 정형외과 의사가 '한국 컬링'이라는 이름의 중환자를 수술해야 한다. 온갖 병이란 병은 다 앓고 있는 '한국 컬링' 환자는 어느 때보다도 집도하기 까다로운 환자다. 심지어 이 환자, 빠른 시일 안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단다.

지난 2월 8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대한컬링연맹의 새로운 수장이 된 한상호 회장 이야기이다. 인천 대찬병원의 대표원장인 한 회장은 지난 2021년 대찬병원이 대한컬링연맹의 공식 지정병원이 되면서 연맹 부회장에 선임, 컬링과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2년 새 상황이 급변했다. 전임 회장이 회장사의 경영 악화로 퇴장하면서 연맹 안에 곪아 터진 상처가 함께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갑작스럽게 한상호 부회장이 회장 후보에 추대되기도 했다. 결국 '연맹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치료하겠다'고 나섰던 그가 한국 컬링을 살릴 집도의가 되었다.

후원자에서 '집도의'로

한상호 신임 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한 회장은 스포츠 분야 봉사와 후원을 통해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전담 주치의로 나서기도 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팀 닥터로 임명되기도 했다.

특히 한 회장 자신이 대표원장으로 근무하는 대찬병원은 컬링 종목을 비롯해 카누·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단체의 공식 지정병원이 되기도 했다. 여러 종목단체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의료 부문의 후원을 통해 비인기 종목들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후원자' 역할을 했던 종목단체 중 한 곳에 큰 위기가 발생했다. 대한컬링연맹이 갑작스러운 전임 회장의 사퇴, 그리고 외형을 치장하는 동안 감추어졌던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여러 국제 행사의 유치를 바탕으로 과시한 '컬링의 정상화' 뒤에는 연맹 직원들에게조차 급여를 빌려서 지급할 정도의 '속병'이 있었다.

결국 겉만 멀쩡하고 속은 텅 빈 고사목 같은 연맹의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지난 달 전임 회장 사임 이후 열린 연맹 대의원총회에서는 전임 회장이 유치한 국제행사를 모두 반납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껏 유치한 행사를 '수장 공백'이라는 이유로 버리는 것도 마땅한 처사는 아니었다.

결국 얼핏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외양도, 이미 썩어 문드러진 내실도 모두 새로이 다져야 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국제행사도 그런 개편 없이는 불가능했다. 당시 대의원 총회에서 장고를 거친 끝에 추대된 후보가 한상호 신임 회장이었다.

물론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출신의 이승우 전 대한컬링연맹 이사가 '깜짝 경쟁'에 나서면서 선거가 백중세로 흘러갔지만, 선거인단의 선택은 망가진 연맹에 칼을 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상호 신임 회장은 그렇게 '키다리 아저씨'에서, 위기의 대한컬링연맹을 고쳐내야 하는 집도의가 되었다.

'약속'보다 내실 기대해... 컬링계 협치도 필요하다
 
 한상호 신임회장이 대표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찬병원에는 평창 올림픽 당시 한 신임회장 등 의사들이 봉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제는 그런 '봉사'에서 '집도'로 역할이 바뀐 셈이다.

한상호 신임회장이 대표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찬병원에는 평창 올림픽 당시 한 신임회장 등 의사들이 봉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제는 그런 '봉사'에서 '집도'로 역할이 바뀐 셈이다. ⓒ 박장식

 
한국 컬링이 빠른 회복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대회'다. 당장 4월 강릉 세계 믹스더블·시니어 선수권이, 9월 서울 세계컬링연맹 총회가 대한컬링연맹이 '안주인'으로서 맞이할 대회고, 내년 1월에는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서 지원을 이어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한상호 신임 회장은 향후 한국에서 치러질 국제 행사가 원활히 개최될 수 있도록 약속했다. 결국 2년이라는 짧은 임기, 그중에서도 12분의 1 남짓한 기간을 연맹 정상화와 성공적인 행사 개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한 회장에게도 단순히 '대한컬링연맹과 위기의 대회를 살려야 한다' 이상의 과제가 남아 있다. 완화되지 않고 있는 컬링 내 파벌 경쟁, 아쉬움이 남는 연맹 내부의 쇄신도 필요하다는 과제다. 결국 '드러내는 일'보다 '조용한 지원'이 필요하다.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처리해나가야 할 일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한 회장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양방향의 소통을 강조했다. 전임 회장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 중 가장 큰 것이 "대외적인 행사 등을 잘 치러냄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일방적인 탓에 현장에서의 의견 등을 내보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상호 신임 회장은 "입보다 귀를 열겠다"라고 단언했다. 당장 한 회장의 공약에는 '컬링인과 함께하는 메신저 단체방 개설'도 있었다. 단순히 공수표가 될 수 있는 발언과 약속 남발보다는 귀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겠다는 의지 표현인 셈이다.

최근 10년간 한국 컬링은 '수장의 무덤'으로 불려 왔다. 단 한 명의 회장도 임기를 제때 채우지 못한 데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회장 없이 대회를 치르는 등 한국 컬링은 구설수 위에 오르는 일만 왕왕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이번 회장의 임기는 2년 남짓이다.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이겠지만, 한국 컬링의 수장으로서는 그마저도 못 채운 이들이 워낙 많기에 긴 시간이다.

한상호 신임 회장, 아니 '집도의'는 2년이라는 재활 기간동안 한국 컬링을 번쩍 일으켜 세우고, 자신도 명예롭게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아마 이는 모든 컬링계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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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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