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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진국 순위 10위이지만 10~30대 자살율 1위, 행복도 순위는 OECD 37개국 중 35위인 대한민국.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다양한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위 순위가 몇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큰 효과가 없는 것 같다.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제대로 된 대안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이유로 한 외국인이 쓴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책 제목에 눈길이 간다. 이방인 시각에서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떨까? 책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나 다른 관점 또는 새로운 대안을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라파엘 라시드(지은이)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라파엘 라시드(지은이)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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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라시드의 에세이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민음사, 2022)은 영국 출신의 기자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2년 동안 <엘르 코리아> 잡지에 기고한 저자의 50편의 칼럼을 재구성한 글이다.

그는 한국에서 경험한 에피소드와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행복을 쫓지만 노력, 꿈, 스펙을 위해 밤낮없이 자신을 갈아 넣는 모습, 위계 질서와 야근을 강조하는 직장 문화, 무책임한 태도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언론, 흑백 논리로 싸우고 진영끼리 편을 나누는 사람들,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 된 현실 등을 보여준다. 

저자 라파엘 라시드는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영국 출신 기자로서 11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렸을 때 한국 도시락과 영화를 경험한 뒤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와서 석사 과정을 공부한다.

서울에 정착하여 3년 동안 홍보 회사에 근무한 뒤,현재는 한국 관련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류 미디어에서 한국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역할을 하는 외국인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적인 의견을 피력"(p.19)하여 기존의 외국인과 다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함께 좀 더 나은 한국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의지의 발로로 보인다. 

저자의 직업이 저널리스트인 만큼, 그는 한국의 언론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본인이 직접 겪은 미디어 피해 사례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언론은 진실을 존중하지 않고,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는 데다 사실무근의 정보를 전달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보도 대상의 사생활을 수시로 침해"(p.90)한다고 비판한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미디어 폭력 앞에 그는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타협점을 찾는 데에 익숙"(p.76)하다고 말한다. 조회수 장사꾼으로 전락한 기자에게 수정기사를 요구하는 일이 얼마나 무질없는 일인지 저자의 경험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언론의 행태는 심각할 정도를 넘어서서 '사회악'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한국인이 가진 성공방정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라파엘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꿈이 뭐예요?"(p.26)였다고 한다. 이 질문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방정식 중에 당신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저자는 일류 대학 입학, 대기업 입사, 서울에 있는 아파트 구입 등 "천편일률적이고 허무맹랑한 목표를 '꿈'이라는 허망한 수식어"(p.30)로 포장하는 모습이라고 비판한다. '꿈'이 더이상 한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채찍질하는 수단"(p.31)으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의 불만족과 불행을 잊기 위해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주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삶의 목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인만의 자질을 발견하고 배움을 통해 이를 구체화시켜 직업 세계에서 실현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p.30)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는 위의 꿈보다 더 이루기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강하게 비판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다. 그는 혐오 세력 시위자들이 성소수자에게 휘둘렸던 폭력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꼈던 경험을 사례로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 안에서 소수자를 대하는 자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p.121)을 깨닫는다. 다루기 까다롭고 악플 테러가 예상되는 이슈임에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지고 수정되는 상황을 두고 누구보다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또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도 소수자가 자신의 이웃이 될 경우 태도가 달라지는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적한다. 부끄러운 자화상 중에 하나이며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은 우리가 잘 알지만 듣고 싶지 않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처럼 라파엘 라시드는 "친밀한 외국인이자 낯선 내국인" 입장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불편하기보다 문제를 더 명확하게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 새로운 시각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를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비판은 대안의 시작일 수 있다. 더 나은 한국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라파엘 라시드 (지은이), 허원민 (옮긴이), 민음사(2022)


태그:#우리가보지못한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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