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7 10:15최종 업데이트 23.02.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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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남서부의 고원 마토 그로소에서 놀고 있는 남비콰라족 아이들 ⓒ 위키미디어 공용

 
쓰고 싶지 않은 주제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1937년에서 38년까지 남비콰라족을 관찰했다. 남비콰라족은 수만 년 전부터 브라질 열대 오지에 거주해 오던 원시 부족이다. 그가 본 바에 따르면 남비콰라족은 정치권력을 세습하지 않고 족장이 후계자를 지명했다. 이쯤 되면 족장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절대적 존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상상컨대,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자신의 퇴임 후를 보장해 줄 측근을 후계자로 지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곳의 족장은 오히려 부족의 내부 여론을 살펴 가장 호감을 사고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 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선임한 것이다. 공정할 뿐 아니라 민의에 귀를 열어 두었다.


족장이 되면 자기 뜻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맘에 안 드는 자도 공공의 이름으로 괴롭힐 수 있다. 그뿐이랴? 아내도 여러 명 거느릴 수 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족장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지명된 사람 중 족장 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왜 그럴까? 남비콰라의 족장은 특권도 많지만 많은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며 매우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년 정도 건기가 지속되면 부족의 생활은 매우 궁핍해진다. 별다른 기술 없이 완전히 자연조건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이때 족장은 집단 전체의 생활을 책임졌다.

가령, 빈곤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 족장은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을 자신의 통제 아래 뒀다. 어떤 것이 부족하거나 필요할 때 부족원은 그걸 가지고 있는 족장에게 문의하였다. 족장은 긴급한 자들에게 그것을 내주었다. 공적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 없이 공공의 수호자로서 그는 그것을 책임 있게 관리하였다. 그는 공동체의 곳간 열쇠를 안심하고 맡겨도 되는 '신뢰의 아이콘'이었다.

절제와 공익, 공동선의 수호자

족장은 아내를 여러 명 거느릴 수 있었다. 그가 처리해야 할 공적 업무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족장의 아내는 '공무원'에 해당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랑'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나 방문객들에게 아내를 빌려주기도 했다. 가끔 남의 아내를 탐하는 일반부족원과 달랐다. 그는 따뜻하고 넉넉했으며 절제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방문 기념이나 연구 협조에 대한 감사로 족장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부족원에게 분배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방문으로 인해 부족원은 호기심을 충족시켰을 뿐 아니라 부유해졌다.

반면 족장들은 물질적인 면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빈곤했다. 권력은 지배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 행사되지 않았고,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해 악용되지 않았다. 오로지 부족과 부족원의 행복을 위해 행사되었다. 족장은 철저히 이타적이었으며, 실로 '공익의 수호자'였다.

레비스트로스가 남비콰라족과 함께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때 식량이 모자라는 일이 일어났다. 배고프고 춥거나, 하는 일이 잘 안되면 국민들은 보통 지도자를 비난한다. 이명박, 박근혜, 최근에는 윤석열처럼 정치를 완전히 망가뜨리거나 희화화하기 때문에 비난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분풀이 삼아 막무가내로 비난한다. 욕받이인 셈이다.

그 경우는 후자였던 것 같다. 같이 가던 부족원들은 족장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배고파 죽겠다. 그런데 넌 뭐하냐?" 이때 자격도 없으면서 권력만 행사하려는 지배자(ruler)는 어떻게 행동할까? 부족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먹을 것을 구해 오도록 명령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기랄 왜 나한테 불만이냐? 너나 나나 똑같은 놈이야. 나 족장 안 할래. 너나 가져가라"고 투덜거리며 권좌에서 물러날 것이다. 나처럼 권력의지도 없고 개인적 삶에 안주하는 소시민들이다.

하지만 남비콰라부족의 족장은 그렇지 않았다. 부족원들의 비난과 원성을 뒤로 하고 그는 자기 아내들 가운데 한 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져 버리니 부족원들은 불안했지만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저녁때가 되었다. 족장은 아내와 함께 메뚜기를 가득 잡아 와 일행의 굶주림을 해결했다.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것이다.

남비콰라족장은 실로 공명정대했으며 따뜻하기 조차했다. 게다가 그는 탐욕과는 거리가 먼 이타적 존재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는 공익과 공동선의 수호자였다. 그는 부족을 폭력과 권모술수로 지배하지 않고 지도하였다. 그는 지배자가 아니라 진정한 '지도자'(leader)였다. 부족 구성원들은 그의 지도를 신뢰하며 따랐다. 그가 보여 준 품성과 공익 및 공동선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현대인은 이를 '도덕'이라고 부른다.

슬픈 열대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UNESCO/Michel Ravassard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55년 출간한 <슬픈 열대>(1998, 한길사)에 수록된 내용의 일부다. 이 책은 본래 한 민족의 생활을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는 서구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한 명저로 평가받는 책이다.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열대지역 원시 부족이 부족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탁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가 전혀 야만스럽지 않은 고매한 도덕성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역설했다. '원시의 야만'은 어찌 보면 '근대의 문명'보다 더 훌륭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는 '근대'의 이름으로 이 사회를 가차 없이 파괴해 버렸다. 나아가 '문명'을 내세워 이 사회를 무능하며 열등한 것으로 폄하하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근대와 문명의 이름 아래 남비콰라의 도덕적 가치마저 능멸당하고 만 것이다. '슬픈 열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남비콰라족장들

한국의 진보는 대체로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4·19혁명이 그랬고,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이 그랬다. 지식인과 학생들이 나서면 노동운동이 뒤를 따랐다. 지식인집단은 노동자가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부르주아 출신들이다.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진보의 깃발을 들거나 노동운동에 참여할 '객관적 토대'는 없다.

그들이 기꺼이 진보의 깃발을 든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 불타는 정의감, 그리고 공익과 공동선에 대한 열정, 곧 '도덕적 의무'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았고, 영달을 도모하지 않았다.

나는 20세기 말 이 땅에서 수많은 남비콰라족장들을 목격했다. 이 땅의 '족장'들도 헌신하고 희생했다. 대한민국 보수는 그 도덕적 자세를 두려워했고, 중도는 그 헌신적 삶에 존경을 표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민주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이 와중에 정계, 학계, 언론계로 진출해 명함을 만들었지만, 다른 이는 아무런 명함 없이 지금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 도덕적 존재들은 대한민국 진보의 주춧돌이자 버팀목이다. 나는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 문재인의 등을 떠밀어 기꺼이 이 도덕적 그룹에 밀어 넣고 싶다. 이 시대는 진보의 시대였고, 그 진보는 도덕성에 의해 지지받았다.

21세기 슬픈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장. 자료사진. ⓒ 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2022년 대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진보진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변하고 있다. 지지자들에 의해 도덕은 폄하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타주의는 노예의 도덕으로 폄하되며, 정의는 무능한 자들의 몽환으로 조롱당하고 있다. 공익과 공동선은 개인주의자의 권리 앞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보수는 더 이상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도는 진보로부터 존경을 거두어버렸다. 이거야말로 야만이다. 민주당 열혈 지지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살리기 위해 이런 태도를 기꺼이 취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슬픈 민주당이다!

남비콰라족이 수만 년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도자의 '도덕성'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 민주주의의 향연을 마음껏 벌일 수 있고, '노동이 그나마 당당'해지게 된 것도 20세기 말 대한민국 '남비콰라족장'(!)들의 훌륭한 도덕적 감성 때문이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도덕은 노예의 태도가 아니다. 도덕은 무력하지 않다. 도덕은 진보를 자라게 하는 샘물이다. 도덕은 강하다. 도덕 없이 진보는 이길 수 없다! 나아가 도덕이 거세된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니어서 추구될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제도경제학, 케인지언경제학 등 진보적 비주류경제학은 도덕적 판단에 굳건히 서 있다. 거추장스럽다고 이들은 도덕을 주류경제학에 쉽게 넘겨주지 않는다.

도덕을 조롱하며 도덕적 지도자들을 상실한 민주당은 슬픈 민주당이다. 던지는 진보적 언어와 제안된 진보적 경제정책에 감동이 없다. 도덕적 영혼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야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못 이기면, 진보도, 노동도, 정의도, 생태도, 여성도 없다! 그리고 정의도 없다. 쓰고 싶지 않았지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글이었다.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은이), 박옥줄 (옮긴이), 한길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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