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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124개의 낱말로 만든 보름달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124개의 낱말로 만든 보름달
ⓒ 김슬옹ㆍ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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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후반기에 방영된 박바라 극본, 김형식·박건호 연출의 <슈룹>이란 드라마 인기가 대단했다. 내용도 기존 사극과 다른 흥미 요소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뛰어다니는 중전 임화령 역을 맡은 김혜수의 남다른 연기도 큰 몫을 했다.

더불어 흥미를 끈 건 우산을 뜻하는 '슈룹'이라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낱말을 불러낸 것이었다. 이는 훈민정음 전문학자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참에 김혜수 국민배우를 세계기록유산이자 한겨레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건 어떨까?

'슈룹'은 세종대왕이 1446년 한글을 반포하면서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에 나오는 낱말이다. 한자어 우산(雨傘)을 뜻하는 토박이말(순우리말)로 당연히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인데 드라마 제목으로 환생한 셈이다. 우산 대신 슈룹을 다시 쓰자는 말이 아니다. 슈룹에 담긴 말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보자는 것이다.

해례본에는 한글 표기 낱말이 124개(조사 포함 126)가 나오는데 모두 순우리말들이다. '콩, 별, 달' 등 대략 80여 퍼센트가 지금도 쓰고 있는 일상어들이다(다음 보름달 그림 참조). 세종이 왜 한글을 창제, 반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다. 한자로는 도저히 적을 수 없는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써온 말들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쉬운 문자로 지식과 정보와 사소한 느낌까지도 맘껏 나누라는 창제 의도를 보여주는 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해례본을 제대로 안 가르치다 보니 세종이 훈민정음을 한자음 발음기호로 만들었다는 주장(정광, 이영훈, 정다함)도 있고 중국을 섬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작가(최종규)도 있다(관련기사 :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 주장에 담긴 불순한 의도 https://omn.kr/1vqkk)

해례본은 단순한 문자 해설서가 아니다. 인류 최고의 문자학, 언어학, 철학, 과학 등이 녹아 있는 사상서이며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인류의 고전이다. 지식과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인데도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2005년에 인류의 고전 100권을 뽑으면서 해례본을 배제했고(서울대학교 누리집 참조) 전국의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과 중에서도 이 책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

해례본이 1940년에 발견된 이후에 해례본 전공자를 뽑은 대학도 예우한 대학도 없다. 교대나 사범대 교육과정에도 없다 보니 초·중·고 선생님들이 해례본을 배우지도 않고 교단에 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 13개 교육연수원에서는 온갖 교육을 다 하면서도 해례본 강의를 여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해례본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훈민정음 전공자가 매우 드문 데다가 해례본이 한문으로 되어 있다 보니 한문을 모르는 교수들이 꺼려 하기 때문이다. 40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해례본을 배운 적이 없는 상황에서는 번역본도 무용지물이라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김슬옹, <훈민정음> 해례본의 역주 방법론 정립에 관한 연구, 연세대 박사 논문 참조).

이제라도 대학들은 훈민정음 전공자를 전임 교수로 뽑고 예우하며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과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의 융합 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런 실정이니 해례본의 '슈룹'을 제목으로 삼아준 극작가와 연출자, 방송국이 고맙고 고맙다. 국민배우 김혜수를 해례본 홍보대사로 위촉하여 해례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알림과 교육을 넓혀 가야 한다.

해례본을 읽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 것은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후손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인공지능 지혜까지 담고 있는 해례본의 무궁무진한 내용을 콘텐츠로 삼는다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문자 산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김슬옹 <한글혁명> 참조.)

태그:#훈민정음, #해례본, #감혜수, #순우리말,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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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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