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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어촌계원들이 힘찬 경운기 엔진소리를 내며 일터인 갯벌로 향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어촌계원들이 힘찬 경운기 엔진소리를 내며 일터인 갯벌로 향하고 있다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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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처럼 퇴직금을 받는 어민들이 있다. 퇴직금은 1500만 원 정도다. 일반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어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충남 태안 소원면 파도리어촌계는 올해부터 퇴직금 지급을 시작했다. 어촌계원을 자동 탈퇴한 8명이 이를 받았다. 

어민들이 퇴직하는 주요 이유는 나이다. 바지락 일을 하기에 힘에 부치는 고령이 돼서다. 사망이나 지병 등으로 인한 요양시설에 입주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결국 각 어민은 생로병사 때문에 어촌계원에서 자동탈퇴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어촌계원의 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파도리어촌계의 경우 2007년 12월 태안원유유출사고 이전엔 270명을 넘었지만, 2021년에는 252명, 지난해(2022년)에는 249명이 됐다. 큰 숫자가 줄어든 건 아니지만 이들 모두 고령, 사망, 병 등의 이유로 어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파도리어촌계는 태안군 내 전체 88개 어촌계 중에서 최대 어촌계원을 보유했다. 바지락과 전복으로 수익을 올리는데 파도리어촌계의 게르마늄 바지락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7년 11월에는 특허청으로부터 국내 특허를 취득한 데 이어 이듬해 일본에 특허 출원을 신청해 3년 만인 지난 2011년 9월 특허가 승인될 정도로 품질 우수성이 인정됐다. 파도리어촌계가 황금어장을 일군 배경에는 현재의 고령 어촌계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황금기를 이뤄내고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파도리어촌계는 '퇴직금 제도'라는 신선한 정책을 도입했다. 지난 10년간 파도리어촌 계장을 맡고 있는 최장열(52) 계장이 어촌계원은 물론 마을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노인회장 등과 여러 차례 회의한 결과다.

지난 2021년에 정책 도입을 전격 결정한 이후 과정은 신속했다. 어촌계정관에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식적으로 법제화했다.

퇴직금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어촌계원에서 자동탈퇴한 어민은 억울할 만도 하지만, 퇴직금 제도 도입 취지와 시행 시기에 계원 모두 찬성했다. 그만큼 퇴직금 제도에 공감한 것이다. 

"요양원 갈 때 도움되지 않을까"
 
퇴직금 제도를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과 전복으로 특화된 어촌계다
 퇴직금 제도를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과 전복으로 특화된 어촌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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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어촌계가 계원을 위해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가야한다"는 어촌계 운영철학을 밝혀온 최 계장은 "자동탈퇴하는 계원에게 전에 없었던 퇴직금을 지급해 이들이 병원비나 장제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퇴직금을 받는 계원은 돌밭이었던 파도리의 바지락 어장을 지금의 황금어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신 분들"이라면서 "이들을 존중하며 땀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퇴직금 도입 취지를 밝혔다.

추운 날씨에 바지락작업이 어려운 휴어기를 맞이한 지난 27일, 파도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령의 파도리어촌 계원 A씨는 "몸이 허락하는 한 바지락을 더 긁은 뒤에 퇴직금을 신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계원 B씨는 "나중에 요양원이나 병원에 갈 때 퇴직금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오기에 다른 계원도 퇴직금 제도에 불만 없이 공감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비대한 어촌계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퇴직금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최장열 계장은 "한 어촌계가 관리할 수 있는 적정 계원 관리선은 70~80명 선이다. 150명을 넘게 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어촌계원의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계원 간에 파벌이 형성된다. 어느 정도 조직이 작아져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향후 10년간 100명 정도의 계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파도리어촌계원이 150명 정도 선까지 감소한다"라며 "이후에는 어촌계원 신규가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망으로 인한 자연승계도 있을 수 있는데, 승계 조건을 까다롭게 정했다"고 부연했다. 

퇴직금 1500만 원, 어떻게 마련했을까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은 특허를 취득할만큼 효능과 육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은 특허를 취득할만큼 효능과 육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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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파도리어촌계는 퇴직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파도리어촌계가 도입한 퇴직금 제도 이전에 일부 어촌계에서 연금제를 도입했다. 파도리어촌계는 연금제가 어촌의 미래 비전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현재로서는 힘에 부치는 제도라고 판단했다. 연금제를 도입했던 어촌들도 지금은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형 제도를 도입해 고령 어촌계원에게 일정 연금을 지급하려면 실제 바지락 작업에 참여하는 어촌계원들로부터 30~40%가량의 수수료를 떼어야 하는 것도 부담을 가중했다.

최 계장은 "어촌계의 미래비전이 연금 지급인 건 맞다. 다만 지금 상황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라며 "먼저 연금제도가 법제화돼야 하고 어촌에 기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파도리어촌계에서는 퇴직금 제도를 도입했고 현재 4%대의 수수료를 떼 퇴직금과 어촌계 운영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한다. 

최 계장은 "퇴직금은 어촌계 기금에서 지급되는데 어촌계 기금은 배당금과 행사료로 마련된다. 퇴직금이 예산에서 가장 우선순위"라면서 "어촌계 살림만 잘 운영하면 퇴직금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파도리어촌계에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현재 어촌계 정회원으로 본인이 스스로 어촌계 탈퇴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망한 계원은 남은 가족들에게 퇴직금이 지급된다. 

퇴직금을 1500만 원 선으로 정한 이유를 두고 최 계장은 "파도리어촌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3000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퇴직금을 가입비의 절반 수준으로 정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최 계장은 고민은 퇴직금 제도의 존속 여부다. 그는 "재원 조달 계획만 잘 세우면 퇴직금 제도는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바지락 조업이 잘 돼야 한다. 계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어촌계가 복지어촌계의 미래다"라고 강조했다. 
 
퇴직금 제도를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과 전복으로 특화된 어촌계다.
 퇴직금 제도를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파도리어촌계는 바지락과 전복으로 특화된 어촌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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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계장은 오늘날의 황금어장을 일군 어촌계원들을 위한 퇴직금 제도를 공론화했다
 최 계장은 오늘날의 황금어장을 일군 어촌계원들을 위한 퇴직금 제도를 공론화했다
ⓒ 태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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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파도리어촌계, #퇴직금제도, #바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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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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