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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내용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내용
ⓒ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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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지난 26일 '비동의 강간죄(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추진한다고 했습니다. 비동의 강간죄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정책입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곧바로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 뒤이어 여가부도 8시간 만에 철회해 논란이 됐습니다. 그 일사불란함이 마치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를 연상케 하네요. 그 탓에 야근했을 공무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1년 제47차 UN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보고서는 피해자가 강간의 과정에 있어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거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였던 경우에만 처벌하는 대한민국 형법을 개정하라 권고합니다. 보고서는 "강간은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라고 정의하며, 여기서 "동의는 주변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여 판단했을 때 개인이 자유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고 씁니다. 

즉,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이라는 지극한 상식을, 이제는 법으로 규정하라는 거죠. 말하자면 '동의' 여부가 핵심인 건데, 현재 형법상엔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제는 국제표준이 된 이 제도의 도입을,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말하면 위험합니다.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면, 무고한 남성의 인생을 망치는 '꽃뱀'이 늘어난다는 일부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그 판타지를 믿는 일부 남성들의 키보드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달라지게 하겠다"던 법무부 장관님, 왜 지금은 말이 다릅니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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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저와의 대정부질문에서 젠더폭력 범죄 예방을 위한 정부의 조치가 '신당역 사건'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나뉠 수 있도록 하겠다 약속했습니다.

당시 제가 했던 '신당역(사고현장)에 다녀오신 게 스토킹 범죄 근절에 대한 장관의 의지로 보면 되느냐'라는 질문에 장관님은 "신당역 사건 이전과 이후를 분명히 나눌 수 있다고 나중에 말할 수 있도록 저희 입장에서 파격적인 조치를 준비하겠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있을 때 (...) 이 기회로 달라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하신 바 있습니다(관련 기사: 한동훈 "신당역 사건 전과 후, 분명히 나뉘도록 파격 조치" https://omn.kr/20tqz ).

한 장관님은 당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이 사안은 본질적으로 극악한 스토킹범죄, 보복범죄"라며 "이런 류의 범죄가 여성에게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점을 감안해서 정부가 피해자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사고 현장에도 다녀온 장관님의 이런 발언은, 스토킹 살인 포함 젠더폭력이 여성에 더 많이 벌어진다는 점을 인지한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젠더기반폭력의 대표적 유형인 강간, 이를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하자는 '비동의 강간죄' 논의는 왜 여기서 빠지는 걸까요? 법무부는 왜 "개정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는 겁니까?

이준석 전 대표는 비동의 강간죄 철회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뭐? 비동간?('비동의강간죄'의 준말)'이라 페이스북에 올렸네요. 이 전 대표를 따르는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자~ 드가자!' 선동을 시작하신 것 같군요. 이 전 대표님, 꼭 이 건만 가지고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제발 남의 얘기도 좀 들어봅시다. 현행 형법상 강간죄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좌절케 하고,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지 한 번만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다음 타자는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안그래도 페이스북 들어가보니 숟가락을 얹으셨더군요. "청년최고위원이 되어 제2의 비동간 사태를 막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맞아야만 강간으로 인정해주는 낡은 현실, 이제는 바꿔야 
 
지난해 9월 2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역무원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과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지난해 9월 2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역무원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과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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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비동의 강간죄'의 대표발의자입니다. 제21대 국회, 정의당의 5대 입법과제 중 하나인 비동의 강간죄의 담당 국회의원입니다. 흠씬 두들겨 맞아야만 강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낡은 형법이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 합니다. '적당히' 맞으면 "왜 더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쉽게들 말하니까요.

그러나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았을 때 관계를 강제 당한,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합니다. 뛰어난 상상력인데요.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전제로 해야만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가능하다면, 좋네요. 그것까지 포함해 권성동과 류호정이 토론합시다. 다만 한 가지, 비동의 강간죄 입법은 지난 20대 국회, 미래통합당 나경원·홍철호·송희경 전 의원도 대표발의했던 바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저도 오늘부터 여러분의 '꽃뱀론'을 열심히 공부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동훈·이준석·장예찬·권성동, 이 '네 남자'에게도 공부 자료 하나 드리겠습니다. 20년 넘게 강간죄 개정 운동을 하고 있는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2021년 통과된 <강간에 관한 UN 특별보고서>를 해설한 자료입니다. 전문은 제 블로그(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역 없이 열어놓고 토론합시다. 합의할 수 있는 데까지 의견을 좁혀봅시다.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몸만 가벼이 오시기 바랍니다.

토론회 준비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태그:#비동의간음죄, #비동의강간죄, #무고죄, #정의당, #류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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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국회의원 류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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